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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마커

Neon Fossel 2021. 10. 6. 22:30

어제는 여름 이후 처음으로 밖에 나갈때 겉옷을 걸쳐야 할만큼 쌀쌀한 날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게 또한번 실감되는 날이다.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확실히 싫어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 시간이 가는 것. 몇달간 판단을 유보했지만, 이미 확실하게 싫어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는 것. 그렇다고 지금이 그렇게 좋고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닌데.

어떤 날 달을 봤던 게 떠올랐다. 정말 음력 보름엔 달이 꽉 차는구나. 하루만 모자라거나 넘쳐도 조금씩 찌그러지는 게 저렇게 보이는구나. 그게 보일만큼 가깝구나. 모양은 참 잘도 자주 바뀐다. 굳이 하루마다 하루가 가는 걸 그렇게 꼬박꼬박 팩폭을 해야겠나.

판단을 유보한 정도가 아니라, 인정을 하지 않았을 뿐 되게 싫어했구나. 시간이 가는 거.

출근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묻는다.

‘나 요즘 어때보였어?’

[ 깔끔? / Stable / 무미건조하게 잘 굴러가는 / 그냥 별일 없는 ]

그렇군. 적어도 직업의 세계에서는 아마추어처럼 내 안 좋은 무드를 남에게 쏟아내지는 않았구나. 스스로 기특하네.

나를 잘 알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물었다. 나 요즘 어땠어?

그걸
이제야
묻는거냐

라면서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점심시간은 다 박살났구나. 물어봐놓고 미안하지만, 요즘은 재미없는 종류의 긴 얘기는 듣는게 좀 힘들어서. 듣는 동시에 머리에서 동어반복적인 중복은 다 소거시켰다.

‘왜이렇게 짜증내?’

‘나한테 짜증내는 건 아닌데, 밖으로 짜증도 안 내는데, 분명히 짜증이 나있다는걸 아니까 답답해 죽을뻔했다’



뭐 이런 얘기였다. 나머지는 약 12가지의 예제였다. 예시라던가 구연동화 비슷하게 상황을 재현하는 데에는 정말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굳이 그렇게 말 안해도 알아들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수십번을 말했건만. 못하는 걸 저렇게 해요 자꾸. 매우 적극적으로 안 들으면서 매우 열심히 듣는 연기를 했다. 신경써서 의미 센서를 켜고 들으면 역으로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게 되니까. 이게 우리 사이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내가 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참 별로인 인간이었다.

며칠전에 별것도 아닌 참신한 표현을 찾아내서 온오프라인으로 사람들에게 말해봤다.

‘무려 4분기의 첫날이네!’

다들 월,일을 표현하는 방법 중 가장 사무적이고 토나오는 방법이라면서 역시나 나의 표현력을 저주받은 재능이라고(…) 비난했다. 각자의 어떤 마감을, 어떤 허탈감을, 어떤 치열할 연말을 불러일으키는 트라우마틱한 말.

4분기의 첫 날이네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