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저런 단톡에서 이상한 제목의 한줄기사가 공유됐습니다. '요즘도 저런 찌라시가 도나', '드립을 쳐도 저런 걸로 치나'. 한 10분 하던 걸 하다가 거기서도 그런 말이 나오길래 설마 싶었습니다. 한국 뉴스 포털사이트를 열었는데, 웬일인지 뉴스가 막혀있었습니다. 한 번 덜컥. 두 번째로 에이 설마. 우회해서 BBC, AP, REUTERS, WP를 쭉 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얼마전 미국 대선 때처럼 라이브 피드가 열렸습니다. 남의 나라 신문사 홈에 대문짝만하게 빨간 점이 켜진채로, 분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우리나라 얘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는 저 사진이나 단어들이 정말 맞는 건가. 영어를 점점 못해지는 요즘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정치 뉴스 단어를 내가 잘못 읽은 건가.
그러다 유튜브에서 라이브 뉴스를 틀어 봤습니다. 절차상 국회가 통보를 받아야 하고, 원한다면 해제 표결을 할수도 있는데도 이상하게 경찰은 의원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걸 막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그러는 건 이제 안타깝게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자막이 추가되며 화면이 바뀌었습니다. 전투조끼와 야간투시경, 소총을 든 군인이 국회에 보였습니다. 두 번 덜컥. 이젠 설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역사 책이랑 영화에서만 보던 그 장면.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던. 국민과 또한 국민이자 군인인 그 둘 모두에게 못할 짓.
언젠가 그 시절에 불타는 연애를 했던 부모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땐 어땠냐고. 둘 다 대학다니며 시위하던 거랑은 거리가 좀 있는 양반들이었지만,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는 있었습니다. 지금과 비슷했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버스타고 학원에서 나오다가 라디오에서, 고깃집에서 술한잔 하다가 티비에서 저런 소리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웅성거리면서도 그냥 벙찐채 실감을 못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당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헬멧과 곤봉들이 내리쳐지면서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그 화면을 보고 나도 그랬습니다. 하던거나 마저 하고, 보던거나 마저 보고 그러면서도 옆에 틀어놓은 채로 '저게 진짜라고?'. 그러다 위에서 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실감 못하고 벙쪄있다가, 어느순간 그렇게 나락으로 확 넘어가는 건 아닐까. 그 순간이 설마 지금인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멀쩡한지 꼭 알아야 될 사람들한테 어떤 식으로든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는 걸 알지만 답답하고 겁이 났습니다. '아마도 내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처럼, '왜저런대 진짜 미쳤나봐' 하면서 짜증만 조금 내고 별일 없이 있겠지', '그래도 혹시 만에 하나라도 그게 아니면'.
커피를 더블샷으로 타서 텀블러에 채우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가방에 이런저런 우선순위로 대충 몇가지를 넣어놓고, 베란다 창을 바라보며 리클라이너에서 랩탑을 켠채로 대충 남은 밤을 샜습니다. 중간에 다행히 해제는 됐지만, 애초에 법대로 할 사람들이었으면 이런 일 자체가 없었겠지. 나머지를 봐야 된다.
아침이 됐습니다. 환율은 폭등했다가 간신히 제자리를 찾고 있고, 주식시장은 출렁이고, 국외 여론은 우리나라 정치의 확실한 후퇴에 대해 날선 비판 혹은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들로부터 우리나라는 무려 여행 위험국가로 지정되었지요. 아침에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이 제 2의 미얀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했대'. 10년도 안 돼서 2연속 탄핵이라는 국민적 피로도,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등으로 방 안의 코끼리처럼 미뤄지던 대통령의 탄핵. 그나마도 확실한 트리거가 없어서 미뤄지던 그 탄핵을 본인 손으로 앞당겨 버렸고, 야당들과 여당 일부는 결국 탄핵을 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조금 뒤 모든 국무위원이 총사퇴하며 우리나라는 사실상 모든 장관과 대통령실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단톡방에서 자조섞인 드립들이 난무했습니다.
날이 밝고 한참 지나니 어제 그 난리통의 여러 면모가 발굴되었습니다. 그중 어제 국회에 진입했던 무장 병력들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국회가 해제를 결의하고 군이 철수하는 길에 국회에 있던 시민들과 기자들에게 침울하게 고개숙여 인사하던 군인. 안타까웠습니다. 그걸 소개하던 사람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1년여 전, 내가 몸담았던 군의 장교는 본인의 명예와 사명감, 절차에 의해 적법하게 진행한 일에 대해서 집단 항명의 수괴라는 끔찍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어제 또 어떤 군인 수백명은 본인이 원치 않게, 명령에 의해 또다른 국민들에게 총을 겨눠야 했습니다. 1년 전엔 더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으나, 아쉽게도 1년 뒤엔 수백명의 다른 군인들이 그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된다고 해도 그 권한대행 순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모자이거나 사퇴해서 권한대행 순위가 어디까지 내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드와 한드 모두 봤던 <지정생존자>가 떠오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광인 하나가 짓밟으려 했던 그 시스템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입니다. 2024년에도 1980년과 거의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긴 했으나, 또한 지금은 역시 2024년 입니다. 모든 일이 우리의 놀람과 분함만큼 다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정도로는 우리가 시스템을 고쳐나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괜찮기를 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