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해요 01
오늘의 점심. 이번엔 그나마도 오던 손님들 둘 셋도 안 온대서 할머니까지 네 식구가 잡채만으로 한 끼를 때웠다.
집 가기 전에 할아버지 묘소 올라가는 길. 집 뒤엔 야트막한 우리 동산이 있다. 그 꼭대기엔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은 대나무와 밤나무가 많다. 가을에 밤 줏으면 되게 예쁘고 맛있는데. 사실 가을엔 다른 농사일이 바빠서 나뒹구는 밤을 반도 못 거둔다.
차례는 안 지내고 추도예배로 바꿨지만, 고모들은 오후에 항상 따로 할아버지 묘소에 올라가서 간단하게 과일 몇 개랑 술이라도 올려드리고 온다. 나는 그 고모들이 오기 전에 다시 일산으로 가니까, 항상 명절 당일 점심 먹기 전에 혼자 올라간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난 기독교(개신교)인이었던 적이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는 절을 하고, 그 외에 상식 선에서 수용 가능한 어떤 제례든 다 그대로 상황을 따른다. 그 때 나와 주변사람에게는 그들 방식으로의 위로와, 그 위로에 참여하는 태도가 필요할 뿐이니까. 형식이 어떻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신이 있더라도, 그렇게 속이 좁아 터졌다면 신 할 자격이 안 되는 거다. 제 이웃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굳이 형식을 지키겠다고 그 위로에 참여하지 않거나,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이웃부터 똑바로 사랑하는 게 먼저다. 나는 신의 존재는 믿을 때도 있지만, 인간이 만든 종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 둘은 엄연히 말해서 별개의 문제이다.
할아버지가 보고싶다. 어딘가에 계시다면 잘 계신가요. 한동안 당신에겐 아버지보다도 앞서서 유일한 낙이자 빛이던 저는 이렇게 자랐어요. 저번 추석과 이번 설 사이에는 조금 더 바빠지고, 가족들에게는 마음 먹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잘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귀한 사람과 사람들도 만났구요. 어릴 때부터 내가 어딜가나 가장 똑똑하고, 가장 유능하고, 모든걸 다 해결할 수 있는 슈퍼맨인 것처럼 기대하고 그렇게 취급하셨었는데. 글쎄요. 요즘은 사실 좀 빙구같습니다. 아마 옆에서 보셨다면 답답 터지셨을수도 있을 거에요. 내 아버지를 낳은, 내 구 모델의 구 모델. 당신이 나보다 먼저 왔었다고 해서 퍽이나 대단한 사람이라거나,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당신은 꽤나 열심히 살았고,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물론 필요 이상으로 똑똑한 게 본인에게는 불편이었겠지만. 그래도 당신이라는, '먼저 왔던 친구'로부터 받은 사랑과 위로가 문득 생각날 때마다, 내 스스로가 쉽게 무너지거나, 스스로를 쉽게 망치려고 하는 손을 거두게 되네요. 부디 저번 명절 때 드린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좀 편히 쉬시지요. 가끔 아버지나 제가 하는 게 맘에 안들어도 뭐 어쩌시겠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시행착오는 있을지 몰라도, 당신이 일구어 놓은 가정과 이 곳을, 더욱 행복하고 재밌게 가꾸겠습니다. 다음엔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산 아래 낙엽 쓸다가 한번 들를게요.
집 뒷산 능선을 따라 나있는 길이다. 대단할 것 없는 그냥 소박한 길. 대신 직접 사는 사람들 아니면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길. 사는 사람들도 예전에 큰 길이 없을 때나 다니던 길이라, 사실상 오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나만의 비밀정원 같은 느낌. 양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과, 그 가운데 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잠깐은 편해진다. 봄이나 여름엔 다른 느낌으로 예쁘다. 꼭 초대하고 싶은 곳.
상도동 외갓집에서 일산 집으로 가는 길. 나를 처음 낳고, 외갓집 바로 앞에 신혼방을 차렸을 때, 그리고 그무렵 아빠가 카센터를 처음 차렸을 때, 매일 통근하던 길. 숭실대입구는 당시에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벌어지는 곳이라, 이 길을 지날때마다 최루탄 냄새를 맡고 눈물 콧물을 빼면서 집에 있는 엄마와 갓난아기인 나를 보러 퇴근하곤 했단다. 이번 명절은 큰집이나 우리집이나 오던 손님들도 다 안온대서, 모처럼 더더욱 일찍 외가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