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핸드 & 수고했다

다가오는 가장 빠른 평일에, 새로운 차를 계약하기로 했다. 무쏘는 올해까지 햇수로 17년째이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젠 차의 수리비가 잔존가치를 몇 배나 넘어갈 게 뻔히 예상된다. 그래서 바꾸기로 했다. 아빠 친구가 하는 카센터에서 말하기를, 그나마 차 주무를 줄 아는 우리 둘이 썼으니까 15년이 넘고도 뻥뻥 잘나갔던 거지, 안 그랬으면 이미 2-3년 전에 퍼지고도 남았을 차였다고. 사실 지금까지도 아빠랑 둘이 푼돈 차곡차곡 모아서 재미삼아 바꾼 부품이 원래 부품보다 더 많다(...). 근데 이제 3-6개월 내에 바꿔야 할 파츠들은 핵심인데다가 구하기도 어려워서, 그런 푼돈 모아 하는 취미생활로는 막을 수가 없을 거라고. 슬프다.
이 무쏘보다 더 각지게 생긴 이전 버전의 무쏘는 엔진이 영 별로다. 이 모델부터는 기본으로 90년대 벤츠의 엔진이 얹혀 있다. 그래서 관리만 잘 하면 사실 요즘 굴러다니는 웬만한 차보다도 토크빨이나 최고속력이 괜찮은 편. RPM 2300에서 2초간 머무르면 기어가 올라가고, 혹시 거기서 더 세게 밟으면 '드라이버가 힘이 더 필요한가보군'이라며 기다려주는 듯, 3000까지 돌아가다가 기어가 올라간다. 차 자체의 무게가 좀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나랑 아빠가 브레이크랑 악셀 페달과 회로를 건드려서(...) 이 차는 페달을 밟을 때 경박하게 툭, 툭, 튀지 않는다. 적당히 살살 밟으면 폭신폭신하게 가고 선다. 대신 빠르게 가고 설 일이 있을 때 확실하게 세게 밟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확실하게 치고 나가거나, 확실하게 선다. 마치 '진심이냐?, 진심이라면 ㄱㄱ'를 감지하거나 기다려주는 듯 한 댐핑감이다.
내가 운전을 처음 배운 차. 중간에, 돈이 없는 게 아니면 제발 우리도 세단이나 많이 안 비싼 외제차로 좀 바꾸자고 엄청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아직도 카센터쪽 인맥이 한 다리 걸치면 다 닿으니, 아빠에겐 차 싸게 판다는 영업사원들의 꿀정보가 한 달이 멀다하고 들어온다. 그 카탈로그들을 뻔히 보면서도 안 사는 건 정말 약이 올랐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 직접 들은 얘기기도 하고, 스스로 느껴지기도 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아빠는 기술공이라서 딱히 차로 위신을 세우거나 허세부릴 자리가 없긴 하다(그래도 하다못해 친척들 보러 가기에도 이 차가 너무하긴 했다). 그래서 아빠는 이 차가 덩치가 크니 어떤 차를 끌어도 적응하기 쉽게끔 연습이 될 거고, 점점 오래 될수록 여기저기 고치고 손 볼 데가 많으니 그런 것도 직접 경험해 보고 그러라고 내가 차를 사기 전에 그런 경험을 충분히 하도록 그냥 쭉 쓴거란다. 그래서 지금은 오토바이, ATV, 경운기, 트랙터, 승용차, 화물차, 봉고차(무쏘는 웬만한 9인승 봉고차랑 길이가 같다, 제길...)까지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그냥 앉으면 끌 수 있다.
아빠의 지론은 '남자가 탈 줄 모르는 탈 것이 있으면 안 되며, 차에 문제가 있으면 SOS를 부르기 전에 최소한 대충 무엇 때문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거다. 거기에 굳이 왜 '남자는'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나랑 나이차이가 얼마 안 나도 적당히 옛날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할련다. 살면서 애초에 나한테 뭘 요구하거나 하는 게 거의 없는 사람인데, 딱 두 가지만 해주면 앞으로 사는 데 신경 안쓰겠다는 게 있었다. 하나가 해병대이고, 하나가 모든 탈것에 익숙해지는 것. 둘을 조합하면 나를 무슨 몽골 병사로 키우고 싶은 거였나. 마치 운동할 때 일부러 찬 모래주머니처럼, 혹은 어떻게 연습해 봐도 좋은 연습상대처럼, 그런 차다. 베이스를 11년 만에 바꿀 때랑 비슷하거나 더 심히 아쉬운 느낌이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운전을 할 때, 고속도로에서 1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가 아니면 항상 한 손을 기어스틱에 올리고 운전을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오토가 아닌 수동을 운전할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처음부터 습관을 저렇게 들였다. 물론 아빠의 강력한 권유(...)였다. 실제로 가끔 친족들의 이러저러한 차들을 대리뛰다보면, 연비절감 때문이더라도, 아님 습관 때문이더라도 그냥 수동 차를 뽑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예 반대편 극단에는, 아예 성능이 완전 좋은 외제차여서 그냥 수동인 경우도 있다. 덤으로 트랙터나 경운기 등 다른 유사 운송수단도 다 수동이고. 그래서 막상 습관을 이렇게 들여 놓으니 기어를 빈번하게 바꿀 일이 있어도 편하긴 하다. 물론 지금 무쏘처럼 그냥 드라이브에 놓고서는 밟으면 가고 밟으면 서는 차의 경우에는 사실 딱히 이럴 필요가 없기도 한데. 대신 저렇게 빈 손은 간식을 받아먹거나, 여자친구 손을 잡는 예상 외의 꿀용도로 쓰인다. 애초에 이걸 염두에 두고 가르친 건가. 그렇다면 로맨티스트 한 당신은 리스펙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