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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아웃

Neon Fossel 2020. 1. 31. 11:44

눈이 멀 듯 환하게 드리운 빛내림이 시작되면 객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과는 별개로 오롯이 나는 누구인가. 주목을 해달래서 해주었으니, 그럼 무엇을 말하고 보일텐가. 조명 뒤의 얼굴들은 환호일까 무관심일까.

빛을 담뿍 마주한 내 몸과 눈과 마음은, 긴장과 안락함이 공존한다. 다른 여럿의 입맛에 적응하고 맞춰낸 내가 아닌, 나는 무엇인지 가감없이 드러나는, 드러내야 하는 긴장. 한편으로는 그 순간에 다른 어떤 것들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솔직할 수 있도록, 그들의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반응을 시야에서 가려주는 안전함. 그리고 그 안에서 솔직하게 드러난 내가, 그 모습이 가장 밝고 아름답도록 빚어주고 비춰주는 애정어린 눈길과 손길을 닮기도 한.

“다른 사람들 일단 신경쓰지 말고, 당신 누구야? 당신 뭐야”. 살짝은 치기어리고 당돌하며 짖궂고, 그럼에도 묵직한 진지함과 섬세한 현명함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 질문 혹은 부름 같은.

정적의 긴장을 뚫으며 소리가 시작되고,
어둠 속의 기대를 지나
그 소리를 따라
내 머리 위로 빛이 내리면.

화이트아웃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