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0. 2. 12. 13:41

열 평 남짓, 작은 밥집 겸 술집이다. 조명은 어둑하면서도 아늑하다. 테이블도 세 개 밖에 없는데, 이미 문 쪽의 두 테이블은 다 차서 할 수 없이 제일 안쪽의 둥근 4인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놨다. 작은 가게에 혼자 와서는 굳이 이런 큰 테이블을 차지한다는 게 못내 미안하고 불편하지만, 별 수 있나. 검은색 굵은 실로 짠 니트 소재의 겉옷을 벗느라 잠시 뒤로 돌았다. 그사이에 내 테이블이 비었는 줄 알고 웬 여자 둘이 반대편에 주춤주춤 자리를 잡는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냥 하던대로 옷을 의자에 걸고 다시 앉았다. 앉자마자 언제 시켰는지 모를 소주와 잔이 있었다. 그리고 같이 앉으려던 다른 친구 하나는 온데간데 없다. 술집에서 스끼다시도 안 나왔는데 깡소주를 먼저 까는 건, 남자가 하면 너무 조선아재특이라서 좀 별로고 여자가 하면 굉장히 슬픈일이 있거나 끝내주도록 멋지게 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잠시 눈싸움을 하다가, 내심 ‘이게 무슨짓인가’ 싶어 가방과 옷을 들고 일어난다. 엄지, 검지, 중지 딱 세 손가락만으로 내 손을 살짝 콕 집듯 잡더니 그대로 다시 앉아있던 자리에 끌어 앉힌다. “그냥 있어요.”

여자가 한참을 혼자 얘기하다가 대뜸 말한다. “참 재밌어. 우리 어쩌다 이렇게 마주하게 됐지?”. 어쩌다는 무슨. 니가 있으라며. 그러다 또 신나게 떠들면서 술을 마시더니, 취해서 흐트러진 것과는 다르게 멀쩡하고 꼿꼿하게 앉아서는 자는 듯 눈을 감는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직전, 역시나 이유를 모르게 멈췄다. 그랬더니 일부러 놀란 척을 하듯 눈을 펄쩍 뜨면서 여자가 말한다. “아잇, 뽀뽀를 당할뻔했잖아?!”. 그 다음 순간, 내 아래에 손을 대며, 충분히 따뜻하게 굳어졌는지 확인을 하듯 잠시 가만히 있더니 대뜸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이런 건 내가 먼저 하는 건데, 치사하게 선수치기 있기없기?”.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비밀작전을 명령하듯 속삭였다. “지금부터 고개 흔들고 취한 척 해”. 그러고는 여자를 등에 업고 술집을 나왔다.

기억에 없다.

다음날 아침, 어디선가 혼자 깼다. 혼란스럽지 않은 걸 보니 집인가보다. 대뜸 어제 설마 그 사람은 귀신이었나 싶어 흔적을 찾는다. 내 핸드폰 옆에 처음 보는 핸드폰이 놓여있다. 검은색에 오렌지색 하이라이트가 들어간, 옛날 모토로라 같은 디자인. 당연히 예상했지만 요즘 핸드폰은 줏어도 이래저래 무조건 잠겨있어서 반대쪽에서 연락오기 전까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멍을 타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큰이모’. “진아야, 전진아, 저번에 얘기해준 그거 사러 왔는데, 이름이 뭐였지?? 뭐라고 직원한테 물어봐야되나??”.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 핸드폰 줏은 사람인데요, 주인 이름이 전진아 씨 인가요?” 등등주절주절. 생각해보니 이름도 몰랐었네.

Note.

저러다 새벽에 덥다고 난방을 끈 방이 추워서 깼다. 역시나 꿈답게 점프와 갑툭튀가 심하면서도, 꿈인데 뭐 저리 쓸데없는 디테일까지 살아있는지 모를 일이다. 전진영, 김진아 등의 이름은 있었으나 전진아 라는 이름은 생에 근처라도 지나친 적이 없는데. 물론 저 두 이름도 딱히 저런 상황과는 그닥 관련이 없기도 하고. 흥미로운 디테일이 살아있는 꿈이라 오전 일이 끝나면 기억에 얼마나 남아있을지 지켜보자는 심산으로 그냥 내버려둬봤다. 근데 신기하게도 일어난 직후랑 비슷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나중에 뭔가 뒤를 이어서 써보고싶을까봐 쟁여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