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덜기

베틀

Neon Fossel 2020. 4. 24. 02:47

말과 글, 음악, 미술은 닮아있다. 자모음, 음계, 색과 구도라는 한정적인 재료로 이루어진 수많은 조합이라는 결과. 종종 생각했다. 자모음, 단어, 구, 문장이 결합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구현해놓고, 그 중에 유의미하거나 재미있는 결과만 쏙쏙 뽑아쓴다면 어떨까. 음악도 마찬가지. 12음의 8옥타브 내에서 조합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만들어 놓고, 그 중에 편하게 골라쓴다면 어떨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표현 가능한 웬만한 노래와 글은 이미 다 나온 게 아닌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정녕 없는 걸까.

 

자음과 모음, 음계라는 형형색색의 실과 바늘로 우리는, 나는 뭘 만들고 싶은 걸까. 어떤 무늬의 옷감을, 옷을 만들고 싶은 걸까. 음과 음계라는 물감으로, 어떻게 생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 왜 계속 만들어내는 걸까.

 

놀랍다. 그런 한정적인 언어와 음이라는 조합으로, 누군가를 감탄하게, 누군가의 가슴이 미어지게,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힘과 맥락이.

 

어쩌면, 언어와 음이라는 도구가 한정적일 뿐, 그것을 통해 비추려고 하는 서사는 매번 비슷하게 닮아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일 수 있다.

 

겉치레로 예쁘고 세련되고 참신한 글 말고, 그 자체로 Unique하게 빛나는 그런 글, 그런 음악. 그것이 담지하려는 그 서사와 세계를 소중하게 상세하게, 성의있게 곱씹고 보듬는다면, 겉치레가 아닌 그런 글과 음악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랜만이다. 궁금한게 뭔지, 어떻게 물어야 할지, 그래서 얻고싶은 답이 뭔지도 몰랐는데, 그냥 쓰다보니 알아서 질문하고 알아서 답의 '실마리'쯤엔 근접한 게. 연에 서너번쯤 하는 경험이다. 가끔은 이래서 글이 무섭고도 재밌고, 재밌고도 무섭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글이라는 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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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된다. 막상 앞에 가면 또 스팀팩처럼 아드레날린을 빨고 하나도 긴장이 안 될 게 뻔하지만, 항상 전날이 문제다. 긴장된다. 그래서 오만가지가 다 재밌고, 안 하던 생각에, 악상에, 안 듣던 노래에 난리가 났다. MINUE(노민우)라는 가수가 갑자기 생각났다. 예전에 거실 TV앞을 지나다가, 복면가왕에서 노래를 너무 잘 하는 걸 듣고 그 자리에 뿌리박힌 것 처럼 서서 들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종종 나오고, 외모는 끔찍하게도 곱상하게 생겨서는 모든 악기를 다 다루는 사기캐다. 한국인인데 드물게도 일본에서 메인으로 활동한다. 영상 꼬리물기가 끝도 없다. 맘에 든다. 내 외모나 내 음악이 갖기 어려운 예리함과 날카로움, 우아한 선을 가진 사람이다. 난 이런 측면에서 가끔 남자 아티스트를 무한 덕질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게이코드쪽에서 '교태를 부리는' 남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내가 가지기 어려운 면을 가진 아티스트를 부러워하고, 동경하며, 대리만족한다. 역시나 끝썰인데 모든 게 재밌다보니 본문보다 더 길어질 지경이다. 불안발작증세임이 분명하다. 긴장된다. 내일 잘 해야되는데. 사랑하는 여자 생각을 조금만 덜 참고 맘껏 한 시간만 하다가 자야겠다. 당신은 잘 자고 있다. 잘 자고 있으려나. 눈 밑에 뽀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