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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n Fossel 2020. 5. 7. 17:13

넷플릭스 캡처는 저작권 때문에 영상이 블라인드처리된다. 그렇다고 굳이 토렌트로 원본파일에 손을 대긴 싫으니, 어쩔수없이 카메라캡처(...).

입양한 고등학생 딸과 의사인 엄마. 딸은 마약에 중독되어 가출했고, 양부모가 분노했을 게 두려워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고를 당해 엄마의 병원에서 재회하는 장면.

상처를 입으면 속상해하고 화내는 게 당연하고, 심지어 그게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다만 그 순서는 잠시 바꾸거나 미룰 수 있다. 궁지에 몰려서였든, 잘못된 생각 때문이든 실수를 한 그 대상이 일단은 ‘돌아올’ 수 있는 둥지가 되어 줘야 한다. 놀라고 속상했을 마음을 표현하는 것과, 실수를 바로잡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돌아온’ 반가움으로 품는 것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실수를 하는 대상은 생각의 과정이나 / 반응 또는 행동의 표출이 충동적으로 잘못 연계된 경우가 많다. 별 일 없는 상태였더라면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결과인 행동까지도 정당화될 순 없는 건 당연하지만, 행위의 동기나 배경 차원에서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는가.

가족 또는 가족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지인과 연인을 제외하고는,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살가운 매너와 협력이라는 제스처를 먼저 건네는 편이긴 하다. 다만 거기에 칼을 꽂는 것으로 답을 한다면, 그건 그에 맞게 되돌려주거나, 그런 액션마저도 귀찮을 정도로 하찮은 관계라면 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과 나의 물리적/감정적 교환이라는 손익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면 그만일뿐, 그사람의 됨됨이를 개선하는 건 어디까지나 None of my business라는 생각.

다만 가족 혹은 가족만큼 소중한 인간관계라는 경계선 안쪽의 사람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때로는 내 생을 지탱하며, 때로는 나 혹은 서로가 옆으로 동행하거나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때때로 맞닥뜨리는 실수라는 환경과 순간들은, 같이 겪거나 때로는 곁을 지켜주거나, 때로는 위로가 되어줘야 할 대상이다. 조금은 모나고 흔들리고, 때로는 발톱을 꺼내어 상처를 줘도, 같이 가야 할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만든 이유가 뭔지, 그래서 앞으론 어떻게 하는 게 피차에게 좋은 일일지, 그 지난한 과정과 이야기들을 겪는다. 같이 갈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이건, ‘None’이 아니라 ‘Clearly, my business’이다.

생각해보니 친형제처럼 지내는 지인들과 많든 적든 최소 한 번씩은 남처럼 서먹서먹해질 만큼 거리를 두었던 적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저 장면을 보고 그 광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