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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스크랩_충정로2호선6-3번칸

Neon Fossel 2020. 5. 28. 10:01

스크린도어와 눈싸움을 하다가 도착한 열차에 굴러들어가듯 밀려들어갔다. 습관적으로 반대편 입구 옆 손잡이에 기대서 멍때릴 각을 잰다.

커플이 탈듯 하더니 여자만 타고 남자는 문 앞에서 연신 손을 흔든다. 열차가 조금 더 머무르고, 문이 예상보다 오래 열려있었다. 서로 바싹 올려쓴 마스크 위로 상대를 뚫어질듯 바라본다. 눈으로 말한다. 손을 흔들다가, 손을 귀에 갖다대고는 전화하라는 듯 수화같은 모션을 취하다가. 그러다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여자가 들고 있던 비닐 피크닉 백을 문이 무심한듯 스치며 닫힌다. 문과 스크린도어가 닫히고도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잠시 마주할 텀이 생겼다. 상대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창문에 붙어서 손으로 위를 가리고 서로 앞을 본다.

그렇게 아쉬우면 집에 좀 데려다주지. 벌써부터 되게 보고싶어하네. ‘사랑해. 보고싶어.’를 재정의하는 수많은 말을 고민하거나 표현했지만, 그걸 마치 마임 같은 행동으로 바꿔서 출력하는 걸 본 느낌이다. 벌써 2주는 훨씬 더 전에 본 장면이다. 왜 기억에 남았을까. 남이 굳이 말 안해도, 이놈의 머리는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외의 것을 잘 안 까먹는다. 어제도 ‘별걸 다 기억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망각이라는 축복을 누리는 건 이번 생에는 글렀다. 그 말이 나온다는 드래곤 라자를 볼까. 이름만 알고 내용은 읽어보지 않은 소설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