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0. 6. 11. 14:59

내 스스로의 발밑이 깨지거나, 스스로 딛고 있는 줄도 몰랐던 단단한 한계라는 발밑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캐나다에 잠시 있을 때였다. LGBT들의 축제, Pride 축제와 퍼레이드. 신기한 건, 굳이 성소수자가 아닌 나 같은 ‘일반인’들도 꽤나 많이 왔다는 것. 퍼레이드는 그냥 지나가고 끝이 아니라, 길거리 문화제처럼 여기저기에 각종 컨텐츠로 무장한 부스가 빼곡하다. 그 중간중간에 옷핀처럼 끼울 수 있는 배지가 수북이 있었다. 아무나 집어 드는 것 같길래 무심결에 뭔가 하고 쳐다봤다. 게이, 레즈, 바이, MTF, FTM, None, 등등 현기증 나도록 어지러운 그 낯선 정체성들 어딘가에,

무려

‘Straight’

도 있었다.

이성애자라는게 ‘당연’하고, ‘다수’이고, ‘일반’이고, ‘정상’이고, 그래서 딱히 정체성이라고 까지 느끼지 못하던 일상에, 운석처럼 떨어진 충격이었다. 나도, 내 정체성이라는 이것도, ‘객관화될 수 있는’, ‘객체 중에 하나’ 이구나. 그리고 저들(성소수자)은 역사적으로 부지불식간에 혹은 의지적으로 폭력적이었던 나와 우리 다수를 저들의 축제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너희는 너희가 그런 나름대로, 같이 놀자는 거다.

그런 충격을 받았을 때쯤, 그 발칙하고도 신나는 행렬의 맨 앞에서 캐나다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가 그의 아내와 손을 잡고 아이를 목마태우며 신나게 떠들고 걷는 걸 봤다. 저 말은 무슨 뜻이고, 저 그림과 글은 어떤 의미인지 활짝 웃으며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옆의 수많은 이성애자 가족들도 함께.

그 날 이후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단화나 구두가 아니라 끈을 매는 신발을 사면, 꼭 마음에 드는 두 가지 이상의 색깔 신발끈을 산다. 흰색+네온그린, 네온그린+네온옐로우, 파스텔핑크+파스텔블루. 캐나다에서 많이 친했고, 도쿄대에 다닐 만큼 머리가 좋아도 영어를 더럽게 못했던 일본인 친구가 어느 날 내 신발을 보고 말했다.

‘아씌메뚜리, 아씌메뚜리’

‘What were you sayin’?’

‘It looks like 아씌메뚜리 네에 - ‘

‘하나라도 똑바로 하던가, 2개 국어를 한 문장에 하고 앉았어. 야이, 조선말로 해 이 자식아’

어느 때처럼 나한테 꿀밤을 맞다가 결국 어느 때처럼 구글 영영사전에 검색해서 보여준다.

[Asymmetry] ; lack of symmetry
대칭의 결여. 비대칭.

나중에야 알았지만 꼴 보기 싫은 힙스터의 대표적 특징이란다. 어쨌든. 나도 말로 정의하지 못했던 내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게 관찰된 결과였다.

왜 ‘대칭’이어야 하는가. 왜 OO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가. 다르면 안 되는가. 다른 두 가지가 공존하면 안 될 건 뭔가. 나는 그 단단한 바닥에 대고 통렬하게 빅엿을 먹이고 있었다.

I don’t give a S#IT.

그러다 돌아온 한국에서,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한 번, 두 번 가다 보니 혼자 짱 박히기 편해서 아지트처럼 여기는 바가 생겼다. 과외로 번 돈을 모으고 모아서, 가끔 올드패션드나 맨하탄(이름 아는 몇 안 되는 술들) 시켜놓고 글 쓰면, 그게 가장 행복하고 소소한 돈지랄이던 시절이다. 3년을 넘게 다니다가, 어느 날 가게를 나오면서 그 가게의 이름을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다.

Thinking out of The Box, T12

돋네. 돋아.

비자발적 힙스터라니 토나온다. 이 정도면 운명이 너무 가혹한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