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_08
술래잡기
나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 취급하는 대표가 불편하다. 그래봐야 비슷하게 들어온 또래 동료들이랑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데, 나한테만 꼬박꼬박 존대말에,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못 하는. 그리고 서로의 기대치가 마치 술래잡기하듯 요동친다. 10만큼 했어요? - 15~20이요 - 어이쿠, 좀 쉬면서 해요 - 그럴까요(라고 하지만 조바심나서 다시 30까지 지름) - 30까지나 했네, 그럼 혹시 50도 돼요? - ?? A ㅏ... 해보긴 할텐데 저도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좀 빡빡할 수도 있어요 - 에이, 괜찮아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에요 - 60을 해냄 - 되게 빠르네. 모르면 좀 물어보고, 쉬엄쉬엄 해요 - 네(쉬엄쉬엄 할 생각 없음, 근데 해내면 요구가 더욱 무리해져서 지침). 그러다 결국 이 말을 들어버렸다.
- 처음 얘기했던 기간보다 좀 많이 일찍, 프로젝트 같이 해야할 수도 있어요.
- 설마, 막 바로는 아니죠?(now, now?)
- 네. 그 바로... 일수도
왓더...
아직 재무쪽 일할 때 ERP에서 쓰던 SAP FI모듈 다시 감잡기도 벅찬데. 뭘 믿고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게다가 자체 프로덕트 런칭에 종종 손 보태려면 GIS까지 해야될 거라면서요. 그건 어느 세월에 하라고. 대표는 전형적인 nerd다. 자신과 직원에 대한 기술 욕심은 엄청 많아서, 옆에 있으면 굉장히 빠른 시간에 포폴이 예쁘게 쌓이며 몸값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는 정도. 게다가 성격상, 혹은 그 순진한 사회성 때문에 오히려 직원인 우리들이 심지어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별로 구속받지 않는 것도 편하다. 그런데, 일 / 일 외적인 부분 모두에서 항상 육하원칙이 결여된 소통이 사람을 자주 난처하게 한다.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최소한 네 개는 가이드라인을 잡아줘야 사람이 액션을 하는데, 그걸 지정하지도 않고, 상대편한테 그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굳이 되물어서 캐내야 간신히 대-충 언제까지 어떤걸 두루뭉실하게 해야하는지 정도를 매우 장황하고 두서없게 들을 수 있다. 오랜만에 강적을 만났다. 다행히 처음이 아니다. 이건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을 고치려고 시도하진 않겠지만, 내가 당신에 맞추지도 않을 거다. 매 대화마다 정보를 리퀘스트 하는 폼을 밀어넣을 거다. 아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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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후크, 후크선장
오늘도 갑자기 또 평생 한바퀴도 안 들어본 노래의 후렴이 대뜸 떠오르더니 후크에 걸렸다. 주변에 물어보고 검색해보니 무려 09년도의 아이돌 노래다. 세상에. 하루종일 한 곡을 들었다. 이를 어쩐담. 가사가 너무 치명적이잖아; I GOT YOU UNDER MY SKIN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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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
밤에 좁쌀만한 날벌레인지 모기인지 하는 것들이 드디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창틀에서 아래로 내리쬐는 펜던트 조명 하나 틀어놓고 뭘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거 했다간 스스로를 밤벌레들의 신나는 야식으로 바치는 꼴이라 껐다. 방충망이 어딘가 뚫어지거나 샤시가 찌그러져서 틈이 벌어진 건가. 매년 여름 굳이 사다리차 불러다 뜯을정도로는 심하지 않고, 방치하자니 몸이 너무 뜯기는 그 애매한 경계에 있다. 베란다를 확장한 집은 이게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