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타기
칼을 물로 닦을 땐, 손을 날과 순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쓸어내리면서 날을 닦으면 안 베고 잘 닦인다. 겉에서 보면 저러다 손 그어먹기 딱 좋게 보여도 안전하다.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하게 날을 닦을 수 있다.
칼질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그냥 절단기처럼 전체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며 썰기. 근데 이건 셰프들 칼처럼 날이 잘 갈려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잘리지도 않고 재료가 으깨진다. 두부처럼 무른걸 이렇게 썰면 상황에 따라 여자친구, 와이프, 엄마, 할매 넷중 하나한테 등짝 맞기 딱 좋다. 내비게이션 누나 포함, 남자가 세상에서 말을 가장 잘 들어야 하는 여자 다섯 명 중 네 명의 원성을 사는 거다. 그래서 비추.
둘째는 칼 앞부분이 고리같은 것에 걸려있다고 생각하고 고정한 뒤, 절반 뒷부분만 들어서 작두처럼 써는 방법이다. 들었다가 내릴때는 살짝 앞으로 둥글게 밀면서 썰면 잘 썰린다. 칼을 고정하고 재료를 밀어넣는 방식이라 좀 안전하다. 대신 멍잡으면 재료와 함께 손을 추가로 넣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
칼질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잠시의 무아지경이 치열하고 평온하다. 칼질의 속도와 잘린 재료의 균일함이, 뇌파감지기처럼 감정을 감정한다. 그렇게 서걱,서걱,서걱 썰다보니 대파랑 부추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저걸 다 뭐해서 먹지. 파전? 잘게 썬 파를 무슨수로. 부추전? 그래 부추전이나. 옆에 있던 큰이모가 한소리 한다.
“야, 은란아, 양은란, 집에서 애를 얼마나 굴리면, 얘는 무슨 칼질을 아줌마들보다 잘하니?”
(마음이 어지러워서요)
“요즘 애들 맞벌이하느라 바빠서, 살림하면 둘 다 할 줄 모른다잖어. 둘 중 하나라도 할 줄 알아야지. 가르쳐 놓으면, 칼질 안 시키고도 데려다 살고 싶을만큼 지가 좋은 애랑 알아서 잘 살겠지 뭐.”
“독해, 독해 하여튼.”
생각을 안 하려고 칼질을 자처했는데, 칼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있는 그 산더미만큼의 결과물이, 소용없는 저항의 결과를 처량하게 보여준다.
아직, 모든 게 다 별거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