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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육이 아닌 요리

Neon Fossel 2020. 6. 19. 03:18

쭈꾸미 볶음

시장이나 마트에서, 쭈꾸미 볶음 할 거라고 손질해달라고 하면 대강 손질을 해준다. 이런 연체동물은 빨판에 이물질이 많아서 씻어줘야 한다. 밀가루(중력분, 다목적)나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서 씻어준다. 두 방법은 Or 관계이긴 하지만, 위생과 밑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 는 웬만하면 둘 다 사용하길 권장한다. 굵은소금으로 먼저 씻고, 그 다음 밀가루다. 밀가루는 쭈꾸미 겉의 물기와 혼연일체가 돼서, 흡사 쭈꾸미한테 튀김옷을 입힌 것처럼 휘감기며 잘 안 씻긴다. 게다가 손가락에 붙어서 끈적대고 치덕대는 촉감은 덤. 그 불편함만큼 쭈꾸미는 깨끗해진다.

대강 씻고 나면, 쭈꾸미 다리가 모이는 중간부분을 뒤집어 까본다. 검고 딱딱한 게 아직 붙어있으면, 손질하는 분이 쭈꾸미의 입을 안 떼준거다. 뽑아낸다. 그리고 쭈꾸미 머리를 본다. 머리가 그냥 대롱대롱 붙어있으면, 그 반쯤만 가위로 잘라서 두피를(...) 뒤집는다. 그럼 두리안이나 거봉처럼 생긴 덩어리가 튀어나온다. 버린다.

마지막으로 쭈꾸미를 한 번 더 물로 씻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모든 다리가 말릴정도가 될때까지. 그러고 물에서 건져 놓는다.

소스를 만든다. 고추장 두큰술, 간장 두큰술, 설탕 한큰술. 살짝 먹어보고 단짠맵 중에 부족한 맛을 보충한다. 굴소스, 매실액, 올리고당 등을 첨가해도 좋다. 다만 첨가하는 재료의 향이 너무 세면 별로다.

양파, 대파, 당근, 호박을 음식점에서 본 크기로 썬다. 주로 대파를 제외하고는 반달모양으로 썰면 된다. 채소 써는 각이 영 상상이 안 되면, 종이접기를 역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에 내가 필요한 모양에서 - 원래 모양으로. 대파는 어슷썰기해둔다. 그리고 대파를 제외하고 단단한 채소 순으로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볶는다. 당근-호박-양파 순서다.

순서대로 넣은 채소가 적당히 생기를 잃어갈때쯤, 소스와 쭈꾸미를 투하해서 익히고 졸인다. 대략 10분 미만. 마지막에 다 됐다 싶을때 대파를 넣는다.

숙련되면 30분, 우왕좌왕하면 멍때리는 시간 포함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린다. 햇반을 돌리고, 곁들여 마실 맥주를 꺼내온다. 조리하느라 이리저리 휘저었던 쭈꾸미 볶음을 가운데 위주로 잘 몰아준다. 깨가 있으면 마지막에 뿌려서 플레이팅을 완성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서.

*

맛있게 먹는 상대를 관찰하며 행복을 느낀다.

*


사실 나는 해산물을 아예 손에 대지 못 하는 게 평생의, 매우 심한 컴플렉스였다. 아무리 험한 군대를 다녀오고, 평소에 마취 없이 시술 받기 등등 이상한 마초같은 특징을 다 가졌어도 절대 타협 불가능한 것이었다. 해산물에 맨 손을 대기. 내가 ‘으으 이건 저그야 진짜’라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 일부러 해산물 안주를 하나씩 시켜서 나를 겁주는 게 친구들의 꿀잼포인트일 정도로.

언젠가, 잠시라도 그것을 극복하게 됐다. 무려.

200619, 오늘의 살롱 - 주제 : 요리, 쭈꾸미 볶음, 네온(N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