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dead, seeking salvation.
전신이 부분 마취되어있다.
밀려드는 일상은 시간의 결을 하나하나 무채색 하게 바꾼다.
혹은, 무채색 하게 바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취.
뜬 눈으로 손끝부터 하나하나 해체되어가는 자화상을 바라본다.
맨 정신에 온몸이 부분 마취되어 수술대에 올려진
어느 멀쩡한, 멀쩡했던 전신 장기기증자처럼.
내 선혈이 낭자한 조각들은,
누군가에겐 즐거움과
혹은 누군가에겐 동경이자 선망이 되어간다.
그렇게 장기처럼 떼어진 조각들이
주변 여기저기에 널브러지며
뭇사람들에게 탐닉되고, 음미된다.
그렇게 부지불식간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영구 임대하듯 여기저기로 실려나간
내 장기들은
내 조각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밀려드는 인출 요구에 잔고가 털리는 은행처럼
모든 걸 다 뜯기고, 뽑히고 나서
남은 내 껍데기를 바라본다.
저런 걸 다 뽑아내고 나면
내가 알던 나는, 내가 원했던 나는
남지 않는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린당하고 뺏긴 조각의 흔적이 남은 그 자리는
예전의 표정을 닮아있다.
'하는 척'이 아닌, 습관이라서, 그랬어서
내 장기이자 조각인 그것들은 항상 표적이 된다.
제 것이 아닌 것을 제 마음대로 맛보려는 그들에게
그렇게
그렇게 노리개처럼 소모당하려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닌데.
그러려고 예쁘고 소중하게 빚은 게 아닌데.
마취에서 깨어나
적출로도 비워낼 수 없던 그 즐거운 관성과
함부로 탐닉하게 방치했던 그 적출의 고통과 불쾌함을
한 결, 한 결 느낀다.
껍데기인 채로 비척비척 걸어
추적하기도 어렵게 여기저기 돌고 있는
내 조각들, 내 장기들,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습관들을
껍데기만 남은 몸속에 다시 주워 담는다.
다시 내놔, 니 꺼 아니야.
하나하나 끼워 맞추고 꿰매고 보니
프랑켄슈타인보다 차라리 못할 지경이다.
꺼억꺼억 울면서
힘들고 처절하게 주워 담았는데
혹여 더 추해진 건가 싶어
거울을 보기가 두렵다.
기름을 붓고 성냥에 불을 켜고 싶다.
이럴 거면 뭐하러 모은 건가 싶지만,
차라리 그게 깔끔한 건가.
예뻐지고 싶다.
손길로든, 불로든.
예뻐져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