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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

Neon Fossel 2020. 8. 13. 05:09

흐린 날의 회색을 어릴 때부터 별로 안 좋아했다. 그리고 하늘을 가린다는 것도 불편하다. 석양과 별, 달을 낮밤에 모두 가려버리니까. 그래서 요며칠은 달을 보지 못한지 꽤 되었다. 조금 전 저녁에 아득바득 일을 마치고 커피를 사러 나갔다 오다가 오랜만에 달을 발견했다. 짙게 낀 구름 사이를 어떻게든 비집고 나오는 빛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구름 뒤를 비추기만 하다가, 이내 구름이 움직이자 왼쪽으로 기운 달이 머리를 내밀었다. 하늘을 유심히, 충분히 오래 보지 않으면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는지 알지 못한다. 낮이든 밤이든, 하늘의 무언가를 뚜렷하게 오래 보다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구름은 꽤 빠르게 움직인다. 반갑다, 달. 다행히 오늘도, 아직도 거기 있었구나. 구름으로 가린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구름이 언제까지고 달을 가릴 수는 없었다. 달은 달의 본분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묵혀두었던 커피 콩 가는 기계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