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에어팟 오른쪽 소리가 엄청 작아졌다. 일에다가 귀를 쓴다면서 딱히 관리를 안 하다가 이렇게 골로 가나 싶었다. 황급히 삼염충 번들 이어폰을 어딘가 창고방 구석에서 찾았다. 아예 무선의 삶을 살다가, 유선 이어폰에다가 무려 라이트닝 젠더까지 끼려니 억장이 무너졌(?)다. 정말 귀가 맛이 간 거면 큰일이니 확인을 해봤다. 다행히 기계를 바꾸니 멀쩡하다. 구글링에 ‘에어팟 한쪽 소리 작음'이런식으로 지푸라기를 잡아 봤다. 다들 페어링만 다시 하면 행복해졌단다. 페어링을 하루에 네 번씩 해보는데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페어링 해도 안 되면 아예 센서나 배터리가 이상해진 거니까 섭센 가보라고. 팟이 없는 주말은 끔찍하다. 몇 년간 헤드폰만 써서 마샬 이어폰은 아예 배선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역시나 지푸라기라도 잡아봤지만 아예 소리가 안 난다. 그렇게 만 이틀째 울며 겨자먹기로 듣고 있다.
처음엔 굉장히 언짢았다. 확 빠져버린 베이스, 맥아리 없는 미들, 고장난 무전기나 탬버린소리처럼 오버피크가 떠서 깨져버리는 하이. 사람이나 물건이나, 상대적 저퀄을 마주하면 포커페이스는 커녕 호불호를 확실하게 표현해버리는 성격이 이럴땐 불편하다.
그러다 하루를 꽉 채워 들으니 어찌어찌 적응 됐다. 헬지가 하만카돈에 돈을 쓰는데, 샘숭은 왜 번들에 이리도 돈을 안 쓰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들을만해졌었다. 적응했다는 스스로가 기분 나빴다. 그러다 조금전 택시를 기다리며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노래를 듣는데, 한곡 반복을 안 해놔서 조금 전 노래를 다시 듣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왼쪽 이어폰을 톡톡 두드렸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작년 11월부터 든 습관이 벌써 이렇게도 깊이 박힌 건가 싶어서 스스로가 생경했다. 그리고 잠시라도 저퀄에 적응하는듯 했던 귀는, 톡톡 두 번이라는 흔적이 튀어나오는 즉시 귓속의 소리를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바꿔서 듣고 있었다.
역시는 역시. 출근과 피할 수 없는 술약속을 제외하고 별로 안 나가는 편인데, 월요일엔 아홉시 땡 하자마자 튀어나갈 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다운그레이드, 거기에 적응. 웃기고 있네. 일련의 흐름이 요즘의 나와 닮아 있다. 피치못하게 길들여진 어떤 부분들. 그건 이제 나였다. 대체가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로 확실한 호불호와 까다로운 성깔머리의 허들을 넘고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서 흠뻑 취하면, 대체가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