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0. 9. 6. 21:18

[연필]

 

연필을 칼이 아니라 연필깎이로 깎을 때의 일이다. 편하게 깎인다고 너무 날카롭게 깎으면, 처음엔 끝이 날카로워서 바스러지거나 부러진다. 진하고 날카롭게 표현되지만 유리몸이나 다름없다. 어쩔수없이 연필이 그렇게 깎였으면, 처음엔 힘을 빼고 달래듯 써야 이내 적당히 뭉툭해진다. 그러다 힘조절을 할 필요도 없이 편하게 쓰는 정도에 이르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뭉툭해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오밀조밀한 선들은 뭉개지고, 뭘 말하고 싶었는지 희미해진다. 내가, 연필이라면.

 

나는 나를 어디까지 깎아서 날을 세워야 할까. 어느 지점부터는 내가 그리는 선들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걸까. 이게 적절한지는, 왜 항상 너무도 늦게 알게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