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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사람을 연금하다

Neon Fossel 2020. 9. 18. 04:58

와우에서 학원팟으로 공대를 모을 때, 특히 가장 낮은 난이도인 ‘영웅’ 학원으로 모으면 초보이거나 오랜만에 복귀한 사람들을 자주 마주한다. 너무 조심성이 많거나, 심지어 몇 번 호되게 당한(?) 이후로 자존감이 많이 낮은 사람들이 꽤 있다.

 

와우를 처음 해보는데, 다른 학원팟에 갔다가 한두 번 테러를 해서 욕을 오지게 먹고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어떤 정신 나간 학원팟 공장이 ‘학원'에 몰라서 배우러 왔는데 그렇게 뭐라고 한 건지 모르겠다.

 

일 때문에, 직장과 육아 때문에 와우를 짧으면 2-3년에서 길면 7-8년씩 눈팅만 하다가 복귀한 형님,누님(아저씨,아줌마)들을 마주한다. 처음엔 복귀해서 ‘라떼는 태양샘 섭퍼킬하고’ 등을 시전 하며 간신히 학원팟을 한두 군데 갔었단다. 역시나 라떼는 지금 작동하지 않았고, 그렇게 또 쪽을 먹었단다.

 

클래식을 하다가 격아로 넘어온 아저씨가 있었다. 클래식과 격아는 웃기게도 서로 엄청나게 물고 뜯고 싸운다. 클래식 : 크으 이게 진짜 레이드지, 격아는 복잡하고 무섭고 살벌한 외계인들이 하는 지옥게임이야. 격아 : 틀래식은 넴드 전투 동안 11111121111111 누르는 주제에 그까짓 게 무슨 레이드라고, 틀내 역겹네 우욱씹. 요약하자면 대강 이 정도이다. 근데 가끔은 클래식으로 와우를 처음 접했다가 격아가 궁금해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역시나, 오자마자 이 복잡한 현대의 대도시 같은 격아에서 길을 잃는다. 다른 학원팟에 한 번 가서는 클래식 유입이라고 했다가, 실수하자마자 바로 ‘11111121111 누르다가 격아하려니 빡세지 않냐’고 장난 반으로 조롱거리가 됐단다.

 

사람 안에는 여러가지 면과, 여러 가지 빛깔이 있다. 어떤 걸 어떻게 끄집어내고 짓누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본질 자체 혹은 적어도 비치는 면은 무수하게 달라진다.

 

‘실수가 잦은 노답, 라떼만 찾는 틀딱, 틀래식 하다 온 어리버리충'으로 대하면, 공대원은 정말 귀신같이 노답, 틀딱, 어리버리충이 된다.

 

그래서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한다. ‘혹시 다른 게임 적당히 할 줄 아는거 있죠? 뭐 피하거나 쏘고 그러는 거. 그 정도만 할 줄 알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잘하시면 이것도 잘할 듯’.

 

복귀한 라떼 아저씨한테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레이드 그 정도 해보셨으면, 확실히 레이드 이해하고 눈치껏 하는 센스가 좋으실 거 같은데. 그때의 감을 잘 살려보아요’. 그러면, 정말 잘한다. 그러면, 그렇게 말한다. ‘역시, 클라스는 어디 안 간다니까, 했던 가다가 있는데'.

 

틀래식 유입 어리버리충이라고 욕먹는 아저씨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클래식도, 격아도 다 사람 사는데에요. 좋은 사람이랑 또라이 비율은 어차피 양쪽 다 비슷하고. 확실히 본인 스킬이랑 넴드 패턴이 좀 많긴 할 건데, 눈이랑 손에 익는 거부터 하나씩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다 예전 와우 했던 사람들이 하는 게 격아입니다. 못할 것 없어요’.

 

그러면

 

와우를 처음 건드렸다가 호되게 욕먹어서 쫄았던 초보는, 미니게임천국 했던 센스를 살려서, 일단 보이는 스킬은 기가 막히게 피하고 안 죽는다.

 

라떼 아저씨는, 정말로 태양샘 섭퍼킬을 했던 그 무빙과 센스가 다시 조금씩 튀어나온다.

 

클래식 유입 아저씨는, 격아도 사람 사는 곳인 것을 깨닫고, 그냥 복잡하다고 뇌절 왔던 본인 스킬과 넴드 스킬을 감당되는 것부터 하나씩 익혀서 재밌어한다.

 

그래서 새삼 다시 느꼈다.

 

사람을 등신으로 만들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빛나게 하는 건, 역시나 사람 하기 나름이라고. 그들 안에 있는 빛을 찾아서 꺼내어주는 게 즐겁다. 사람은 신기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