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function
아직도 가끔 사람들은 내가 운전하는걸 신기하다는듯 볼때가 있다. 최근엔 문제의 그 글램핑을 하겠답시고, 짐이랑 장본걸 바리바리 차에 싣고 가다가 그랬다. 너무 목마르고, 어차피 체크인 시간도 많이 남았길래 카페에서 아아 하나 마시려고 주차할때였다.
-헐, 얘 후방카메라 안 보고 사이드미러 보는것좀 봐. 오오, 오오
-왜?
-아니, 그런사람 처음봐서
-그거 없는 구린 차 오래 끌어서 그래. 후방카메라가 새로 생긴걸 자꾸 까먹으니까 그렇지. 넌 내가 뭐 보는지 어떻게 알았냐
-후진인데 가운데 화면을 안 보니까
-ㅋㅋㅋ 별걸다보네
-이상하잖아. 다 저기 보는데, 넌 저길 안 봐
-아, 그냥 미러 보고 많이 하다보면 대충 감 와. ‘이쯤되면 박을거같지만 아직 바퀴 한 번 구를만큼 남았다, 이쯤이면 레알 박기 전까지 종이 한 장 남았다’ 이런식으로
-크으 이게 프로드라이버지
-별걸다…
-그럼 이거 아예 안봐?
-아니, 나도 요즘은 주차 거의 다 될때쯤엔 저거 봐. 이거봐봐. 이거 빨간 네모를 주차라인에 맞춰서 넣으면, 옆차들한테 욕도 안먹고 우리가 내리기도 편해
-…? 이거 그림을 어떻게 한번에 맞춰?
-처음에 좀 넉넉하게 뺐다가 들어오면서 슬슬 맞추면 돼. 그… 색칠공부에 있는 선 따라 그리는거랑 똑같은거 아닌가.
-아니지! 이건 그거 아닌데…
-ㅋㅋㅋㅋ세상 사는게 참 가지가지로 어렵지, 그치?
-쒸이… 나 애처럼 취급하지말어라
-누가 너를 애처럼 취급할수있나요 선생님…;
-근데 진짜 이상해, 이걸 어떻게…
-니가 더 이상해
남들보다 차를 좀 일찍부터 ‘실제로’ 끌긴 했다. 면허도 고3 수시 붙고나서 졸업도 하기 전에 땄으니까. 대부분은 그러다가 스물 너댓에 친구들끼리 놀러갈 때가 아니면 장롱면허가 되지만, 나는 열아홉살부터 정말 혹독하게 부림(…)당했다. 처음엔 동네 마트, 그러다 근처 친척집, 서울 외가, 강화 친가, 지방에 아빠 현장 등등. 차도 항상 지멋대로였다. 둥실둥실 무거운데 천천히 점점 빨라지는 아빠 무쏘, 톡 밟으면 미니카처럼 튀어나가는 엄마 마티즈, 파킹브레이크가 풋브레이크라서 출발도 할줄 몰랐던 고모부 세단, 나중엔 ㄹㅇ 화물차 이미지 끝내주면서 앞코는 없고 뒤만 겁나 긴 포터, 롯데리아 리브샌드처럼 두껍고 크고 아름다운 SUV 등등.
다른집들은 어릴때 집 차의 키를 안 주려고 난리라는데, 우리집은 내가 면허따고 2년만에 운전을 질려할정도로 주4-5회정도 운전을 시켰다. 아빠의 지론은 간단했다. 어차피 백날 입으로 가르쳐봐야 소용없고, 직접 끌어봐야 안다. 니가 부숴봐야 어차피 차 하나 부수는건데 뭐. 이런 멘탈. 물론 다른 차에 민폐나 위험을 끼칠까봐 처음엔 항상 옆에서 봐주긴 했다. 그래봐야 어차피 30분만 지나면 나 빼고 둘이 떠들다가 자버렸고(…) 난 그냥 알아서 죽을똥살똥 목적지에 도착해내야했다. 설/추석은 볼만했다. 손님들이 오기만 하면 ‘얘 이제 운전 해요’라고 한 다음 다 술을 먹여버리는 바람에(…) 순차적으로 나눠서 대리를 6차까지 뛰어본적이 있다. 세단, 카니발, 심지어 봉고 등등 기가막히게도 다양한 차종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저런 차를 안 가리고 끌줄 아는 거야 내가 받은 훈육의 특수성 때문에 그렇다고 치자. 근데 우리나이 근처쯤 와서도, 요즘은 운전을 많이들 안 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되면, 해볼만큼 해봤으니 실력이 어느정도 상향평준화될만도 한데. 누구라고 운전을 밥벌이처럼 하거나 메인 취미로 연구하듯 하는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쓸만할 정도가 되면 다 정체되기 마련이라. 그런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아직도 떼로 놀러가면 항상 운전은 내가 제일 많이 해봤다고 내가 하는 형편이니. 언젠가는 이런 소리도 들었다.
-오빠가 운전하는 차 타면, 뭔가 안심이 돼
-뭐가, 저번에 말한 그때 그사람은 그렇게나 못했었냐
-아니 그냥 좀 불안불안해
-그래도 멀쩡히 그걸로 출퇴근도 맨날 한다며
-몰라 그냥 움찔움찔 불안해. 그리고 확실히 승용차나 경차 비슷한 가벼운 애들은 너무 통통 튀더라
-그런가
뭐 그렇단다. 원래 성별역할 구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남자한테’ 기대되는 운전실력이 우리 전 세대의 20대 후반 - 30대 초반보다 못 미친다는 얘기가 많다. 형들 분발하자. 그리고 나는 더욱더 내가 운전을 잘한다는 생각을 안 하련다.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경계심을 좀먹으면 자만하게 되고, 사고난다.
아… 원래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실제로 구닥다리 차들을 오래 운전하다보면 후방카메라도 없고, 그나마 숫자와 삑삑거리는 알림음으로 알려주는 후방감지기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당연히 카메라는 없는채로 했다. 게다가 실제로 경험한 바, 후방카메라는 충격이나 날씨, 오염에 꽤 약하다. 주차해놓은 차를 누가 콕 박고 지나갔거나, 흙탕물이 튀기라도 하면 곧바로 안 보인다. 그냥 그럴때를 대비해서라도 그게 없는채로도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그런 방법을 잊지 않으려 한다. Malfunction에 대비하기.
사이드미러도 Malfunction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차의 미러를 볼 때도 있고, 밤인지/낮인지, 뒷차가 라이트를 세게 켜는지/아닌지에 따라서 거리감은 천차만별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사실상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래서 이건 직접 배웠다. 차선 바꿀때는, 백미러로 보다가도 실제로 바꾸는 순간에 바로 옆은 무조건 눈으로 직접 보고 움직여라. 백미러가 위의 이유라던가 사각지대에선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Malfunction에 대비하기.
생각만으로 해본 Malfunction에 대비할만한, 비슷한 예는 많다. 요즘 차들은 운전자가 차를 엉망으로 위험하게 몰더라도 스스로 제어하는 전자장치가 엄청 많다. 자세, 브레이크밸런스, 출력, 센터페시아 정보 표시, 심지어 라이트나 와이퍼까지도. 이런 전자장치들은 발전되고 적용될수록 더욱 안전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운전자는 무능해진다. 만약 영화에서처럼 EMP를 맞는다고 쳐보자. 되게 영화같은 말이지만, 실제로 북한이나 기타 테러국들은 심심찮게 쓴다. 혹은 비 오는날 주행하다가 낙뢰를 맞아서 차의 전기부분이 다 나갔다고 쳐보자. 요즘 기술에 의존하던 운전자들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운전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자체가 아예 기본적으로 기능하지 않을 수 있다. 영화에도 나오듯 오히려 이런 위기상황에선 전자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구동되는 자동차나 기계들이 차라리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기계적인’ 구동방식의 도구를 다루는 옛날 지식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그 위기를 대처한다. 아이러니.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나부터도 겪어온 모든 직업의 세계에서 마찬가지였지만 전기가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번 정말로 그런 상상을 해봤다. 우리 문명에서 전기라는 요소를 빼는 순간 살아남을 수단이나 시스템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거기서 나와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각종 야외와 실내의 조명들, 그리고 가장 문제인 ‘컴퓨터’들과 그 안의 데이터, 네트워크들, 심지어 가스/수도를 공급하는 중앙설비 마저도 전기가 쓰이는데. 문명의 유일한 혈액이자 동력이 전기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이롭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꽤나 상상하기 쉽다. 살면서 ‘별로’ 겪을일 없다고 생각하거나 경험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의외로 왕왕 일어나는게 ‘정전’이다.
대학때는 과제를 하다가, 졸업하고는 일을 하다가, 놀 때는 게임이나 웹서핑을 하다가,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멈춰버릴 때가 있다. 그냥 하던게 끊기는 순간도 짜증나지만 그게 지속되면 그 몇시간이나 한나절동안 말그대로 어떤 주요한 행동이나 생활이 멈춰버리는 거다. 물론 요즘에는 아파트 배전반 공사를 한다고 미리 공지가 있다던가 회사에서 아주 가끔 셧다운이 예정되면 장소를 옮기거나 미리 외장배터리를 충전해서 넘겼다. (맥북 전력효율은 정말 쓸데없이 끈질겨서 아주 끔찍하게도 감사했다). 그런데 만약 그런 대비책이 없거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채로 잔여 저장전력까지 싹다 말랐다면. 하다못해 그 심심한 정적에서 뭘 할까.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뭘 어떻게 만들거나 기억할까.
뜬금없게도 그래서 종이에 물든 잉크자국을 직접 만지며 읽는다는 것, 그 종이에 뭔가를 써서 남기고 확장한다는 것이 괜히 소중해진다. 굳이 휘황찬란한 화면의 전환과 인터페이스의 최적화가 매순간 일어나는 어떤 블랙미러(Black-Mirror)가 없더라도 내가 어떤 의미를 이해하고 확장하며 결과를 남길수 있는 무엇. 그리고, 그래서, Malfunction에 대비하기.
역시나 한 번 더 뜬금없음으로 빠지는 말이지만,
.
나는 거의 모든 Malfunction을 어느정도는 대비할정도로, 대비하고 싶을정도로 오지랖이 넓다.
.
.
다만,
.
.
어떤 경우,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그 Malfunction이 항상 대비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
.
.
대비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
그 대상이 없을, 기능하지 않을 그 Malfunction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멀쩡히 대비하는게,
.
.
.
없이도 멀쩡할 내가
.
.
.
.
.
그냥 싫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