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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질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_05_Alt.

Neon Fossel 2021. 7. 22. 16:33

내 취미에 대해서 헛다리를 짚든, 그게 곁다리든 뒷다리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 취미 =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어떤 특징에 관심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계기삼아 얘기한다는 것

그 두개가 이미 너무나도 adorable하니까, 소중하니까. 아마 그사람은 알았을 거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테니까. 그래서 비슷하지만 다른 하위 레이스들은 성에 안 차는것도 대충 짐작했을수도. 설령 그렇지 않고 그냥 나한테 천진난만하게 ‘바퀴달린거 달리기한다!’고 했어도 좋다. 그냥 나놈, 니가 혼자있을 때 안 보면 되지 그게 왜 별론지 굳이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감히 그 소중한 관심이랑 마음에 스크래치를 낼 수 없으니까. 그러기엔 이미 다른 이유로 너무 좋은걸.

사실 취향이란 건 참 묘해서, 시작점은 어느 경우나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일치하는 정도가 다 다르다. 그런데 다행히도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좋았다. 어차피 우리 각자가 좋다고 느낀건, 이미 상대편도 ‘원래’ 좋아하던 것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상대가 이런 반응을 주작이라고 생각할까봐 억울해서 그 진정성을 무려 인증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나마 내가 까탈스럽게 꼬라지를 부릴 부분은 음악이었을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음악 덕분에 참으로 많이 깊어졌다. 나에겐 취미가 프로랑 헷갈릴정도로 깊은 아마추어였고, 그 이후 비슷하게는 그런 일을 했었기도 하니까. 내가 잡식스럽게 여러 노래를 듣긴 하고, 그에따라 좋아하는 장르나 취향도 여러가지인 건 어쩔수없이 당연하다. 상대 역시도 노래를 참 좋아하고, 전공이 될 뻔한정도로 노력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있을법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어릴때 악보집을 모아가며 소중하게 여겼던 그 흔적들을 예쁘게 간직하고 있는걸 보니 좋았다. 상대가 처음부터 그 이후로 쭉 골라듣고, 나에게 나눠 들려준 노래들은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중 일부였고, 꽤 중요하게 많이 좋아하는 장르들이었다. 그래서 내입장에선 굳이 관심없던 것까지 일부러 노력해서 좋아진 건 아니고, 좋아하던 여러가지중에 그것들의 비중이 늘고 중심에 왔던 정도였다.

가끔 느끼는 바로, 상대는 내가 좋아하는 어떤 걸 본인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할거란 건 예상하고 알고 있었다. 그런걸 나한테 추천해주면서 맞추거나 맞아떨어진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나역시도 내 뿌리가 됐거나, 좋아하거나 익숙해진 여러가지중에서 상대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꺼내어보였다.

사실 어떻게보면 굉장히 취향이 극명하게 반대일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근본과 중심은 재즈/락이었고, 상대는 클래식/힙합이었으니까. 각각 재즈와 클래식 / 락과 힙합은 그것의 태동기에 한쪽이 한쪽을 파괴적으로 극복해버렸거나, 혹은 경쟁하면서 사장시켰을정도로 배타적인 취향이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중간에 만나기를 바랐다. 재즈힙이라던가, 얼터너티브락이 기반이 된 여러 예쁘게 뿅뿅거리는 노래들.  조금 첨언하자면 내입장에서 사실상 락은 포기했다. 나도 ‘락’하면 떠오르는 그런 메탈이나 하드쪽은 원래 아니기도 했지만, 애초에 디스토션 기타와 여러 이펙트, 그리고 드럼 비트가 심하게 강조된 밴드 사운드는 장르 무관하고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눈치가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치면 아마 상대도 나에게 클래식을 무리하게 밀어넣으려는 걸 포기했다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뿌리’가 이러하니 너도 이해해라! 라면서 섭섭해하거나 싸우기보다, 차라리 같이 들으면서 한마디라도 더 하고, 눈 한번이라도 더 맞출 어떤 Common Ground가 소중했다. 그래서 그 마음들이 참 어여뻤다.

나는 항상 보고싶었다. 그가 중간에 오히려 이런식으로 얘기했다. 나로부터도 뭔가 자기 시간에 칼같으며 여지 없는 계획성과 단호함을 좀 보고싶기도 하다고. 들으면서는 당장 내 입장을 이해시키거나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머리를 굴리느라 스쳐지나갔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은근 의외이거나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너 빼고 모든 사람한텐 그렇거든.

애초에 개인시간을 남한테 쉽게는 안 주는 편이다. 일주일에 약속이 대여섯개 들어오면, 딱히 다른 약속이나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해야할 일이나 놀 거리가 너무 많다 싶으면 그냥 혼자 있더라도 안 나간다. 남 듣기 좋으라고 핑계도 굳이 붙이지 않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학교 나와서 무려 치과의사 씩이나 한다는 그 친구가 학창시절에 같이 게임하고 놀자고 찾아온적이 있었는데, 무려 볼 책이 있다고 문전에서 까냈을 정도니까.

밴드를 취미로 하거나 나중에 음악을 잠시 일로 할때도 그랬다. 연습이건 리허설이건, 아쉬우면 니들이 맞춰라.쓰잘데기없이 오라가라 하거나 괜히 사람 죽치게 만들지 마라. 시간은 양보단 질이다. 무식하게 사람 잡아두는 것 만큼 민폐가 없다. 그따위로 할거면 차라리 집에 가서 잠이라도 더 자라. 고등학교때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 제목중에 ‘토익공부, 그렇게 할거면 낮잠이나 자라’가 있었다. 등등등. 물론 지금은 대표나 협력사가 오라면 잘 간다. 실무자는 어차피 푸념해봐야 해줄 수 있는게 없을테니, 가서 윗대가리한테 그냥 적당히 둘러서 꼰티를 부린다. 괜히 불러제껴서 정작 당신이 그렇게도 목을 매는 그 시퀀스가 얼마나 지연되는지 아느냐는 식.

그런데, 너에게는 그럴수가 없었다.

‘보자, 올거냐’ 비슷한 말은 고사하고, 추측과 예측과 추론을 수십번 혼자 시뮬레이션해서 그런 말이 나올 ‘각’만 보여도 이미 출발준비를 끝내놓거나 혹은 이미 차 끌고 나가고 있던 적도 있었다. 그땐 다행히도 일은 프리랜서였고, 내가 딱히 아쉽지는 않은 상황이라 급하게 난리났던 몇몇 케이스만 아니면 어차피 그 시간을 사람들한테 못박아서 통보하는게 나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이성친구든 동성친구든, 친하면 친할수록 차라리 나를 쉽게 이해했다. 나를 잘 안다고 할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내가 그들과 충분히 그 사이에 시간을 보내면서 나를 보여줬다면, 이미 다 어느정도 양해가 되어 있었다. 중요한 사람이 생기면, 그냥 심심풀이 약속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아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워딩 이대로 말하는 적도 꽤 여러번 되고, 이미 종종 겪어본 그들도 알고있다. 어차피 시간이 신뢰를 쌓으면, 겸사겸사 나중에 언제든 다같이 봐도 되니까. 그런데 그 중요한 사람은, 언제 봐도 되는 그런게 아니니까.

구모델 로맨티스트 한, 아빠의 친한 친구중에 진식이 아저씨가 있다. 어릴때부터 내일 모레 환갑인 지금까지도 붙어지내는 친구다. 지금도 엄마가 기억하기로 둘이 한창 데이트할때 그 아저씨가 다방까지 찾아와서 딱 15분만 보고 가겠다고 아빠를 쫓아온적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 아저씨 정상인인데. 아빠가 엄마 만나는 동안 오죽 안 만나줬으면 그랬단다. 엄마는 그때마다 참 재밌다고, 친구가 아빠를 많이 좋아하는게 보기 좋았다고, 그리고 이 팔불출은 정말 노답이라고. 이런건 가르치지 않아도 어떻게 닮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