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1. 7. 31. 11:31

오랜만이다. 드디어 이 잔소리꾼들을 다시 만났다. 숫 - The Virginity. 평소에 다른 밴드나 관중한테 영어 풀네임까지 불리진 않지만, 꼭 어딘가에 프린팅될때는 저렇게 써놓더라. 영어로까지 저렇게 써놓으면 진짜 온갖 자기모순과 자가당착, 그리고 해학도 아닌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인게 너무도 티나는데. 드러머 한백이형은 7월 초에 무려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을 뚫고 들어왔다. 기타리스트 정석이는 이번에 못 들어왔다. 이시국에 하필이면 그 코로나 무법천국인 천조국에서 금지옥엽같은 딸내미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정말로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상황처럼 철통보안으로 살고있기 때문. 내 잔소리꾼 둘 다 한번에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한명만 들어왔다. 그래도 덕분에 다시 뭉쳤다. 예전에는 6개월이 멀다하고 종강만 했다 하면 들어와서 1년에 최소 두세번은 봤는데, 요즘은 2년에 한 번 보면 다행이다. 밖에선 도저히 어디서 만날 자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미쿡에서 들어온 저 드러머는 당연히 백신이 넘치는 나라이니 + 일단 입출국을 하려면 맞고 들어왔고, 인형이도 변호사로 밥벌어먹으려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백신을 맞았고, 집주인인 보컬 대현이형도 대학에서 애들 가르치려면 할수없이 먼저 맞았단다. 뭐야, 나만 백신권에서 벗어난 뭇사람이었던 건가. 무튼 그래서 엄연히 따지면 방역수칙 위반이 아니니(모인 ‘사람’으로 카운트되는게 나 혼자뿐이었다. 이걸 좋아해야하나 안타까워해야하나 제길) 보컬 형네 집에서 만났다.

작년 4월말-5월엔가 왔던 집이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기억을 더듬더듬어 한방에 도착했다. 보컬 대현이형과 나는 겉으로 서로를 안 불편해하는척 하면서 속으로 엄청 불편해한다. 간만에 봤을때 처음에만. 이건 저 형의 책임이 대부분이다. 일단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눈매와 눈빛, 그리고 겹겹이 꼬이고 섥힌 경험과 생각, 활동분야 및 전공과 밥벌이까지. 누가 당신 앞에서 쉽게 말 한마디라도 뗄까.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대충 잘못 말했다가는 듣는 저 형 입장에서 아주 높은 확률로 빻은 소리가 될 것이 뻔하다. 이미 수백차례의 연습/공연/뒷풀이/각종 역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에서 그건 아무소용없고, 상관 안해도 될정도로 내가 저 사람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래도 항상 간만에 보면 그걸 잊고 매우 불편해한다. 물론 형도 나를 불편해하는 이유가 있긴 마찬가지다. 형이 보기에 나는 지나치게 현실적/일상적/상투적/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곳에서 나는 형같은 취급을 받는데, 반대로 저 형한테는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다. 그래서 내 평범함에 자기의 특별히 모난 것들이 불편하게 비춰질까 겁을 낸다.

집에 도착해서 억지로 반갑기만 한 척,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손님방으로 갔다. 역시나 또 그렇게 인스타에 나올것만 같이 세팅된 방이다. 어딘가 중세판타지소설같은데서 ‘응접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 응접실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 얘기, 날씨 얘기, 코로나 얘기, 간만에 다시 둘러본 이 집 얘기 등등. 아주 겉핥기만 하면서 매우 어색하게도 어색하지 않은 척하기. 웰컴드링크라면서 적당히 숙성된 꼬냑을 줬다. 둥글넙적한 잔을 넓게 감싸쥐고 체온을 일부러 실어가면서 마셔야 되는 거라고. 향은 강한데 막상 맛이나 목넘김은 되게 부드럽다. 그렇게 버티다보니 예전에 그 ‘독대대첩’이 생각났다. 나는 같은 남자들이랑 독대를 해도 엄청나게 긴 수다와 편한 술자리를 잘 하는 편인데, 예전부터도 이상하게 이 형은 불편했다. 그래서 한 5-6년전쯤 한껏 술이 취했을때 형한테 그랬었다. ‘형이랑은 아무래도 독대하는게 너무 불편해요’. 그 말을 들은 이 형은 ‘왜 나는 독대해주지 않으려는 게냐’라며 역시나 술김에 따져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저런 이유들과 함께 ‘웬만하면 독대하지 않겠다’라고 괜히 선언까지 해버렸단다. 그래서 이 형이 몇달간 독대를 무려 요청하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뭐라고 나는 저 사람을 그토록 독대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으며, 그게 뭐라고 저 사람은 나랑 그렇게도 독대를 하려고 했을까. 그래서 대충 웃긴 기억에 밴드 멤버들이 붙여준 이름이 ‘독대대첩’. 난 그래서 작년 4월 말에 이 집에 무려 혼자 쳐들어오기도 했단 말이다. 그리고 작년 가을엔 이 형을 억지로 불러내서 게이와 일반인이 모두 갈 수 있는 술집에 갔다가, 직원들한테 문화컬쳐를 당했기도 하다고. 무튼 어차피 대충 30분-1시간만 있으면 허물어질 그 불편함의 장벽을 오롯이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러머 한백이형이 왔다. 어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