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고장
올 봄인가에는 주차장에 세워놓은 하얗고 크고 아름다운 머슴 1호가 뒷범퍼를 치였다. 다음날 운동가다가 발견했다. 다행히 그냥 튀지는 않고 누가 명함을 꽂아놓고 갔다. 전화했더니 웬 목소리가 드라이한 여자가 대충 10-15만원으로 퉁치면 안되냐고 대뜸 돈얘기를 자기가 먼저(?) 꺼낸다. 저게 얼마일줄알고 대충 신사임당 두세장 먹고 떨어지라는 거지?… 됐고, 그냥 머리 아프니까 피차 보험회사 연락하는 걸로 하죠. 끝. 내려가서 시동을 걸고 타봤더니 후방카메라가 안 나온다. 아 귀찮아… 아빠 두다리 걸친 지인이 하는 파주 카센터에 갔다. 후방카메라, 거리센서, 범퍼 다해서 대충 40정도 나올거라고. 지인이라고 괜히 더 좋은걸로 해준답시고 이상한거 달지 말고 순정으로 달아달라고 했다. 지인찬스로 다른 차들을 앞질러서 수리했어도 꼬박 이틀 있다가 한 번 더 가서 찾아와야 했다.
그러다 지난달, 강화에서 차 쓸일이 좀 많아진다기에 하얀 크고 아름다운녀석을 두고 왔다. 그러고 한 주 만에 타이어 압력이 이상하다고 전화가(…). 대충 굴러가기에 별 지장은 없는데, 센터페시아에서 오른쪽 뒷타이어가 다른 타이어보다 압력이 절반밖에 안 된다. 어차피 그 주 주말부터 다시 갖고와서 쭉 쓰려면 고쳐야하니 카센터에 갔다. 타이어 안에서 내 팔뚝만한 굵기와 길이의 파이프가 나왔다. 엄마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거대한 걸 이렇게 예술적인 각도로 타이어에 밀어넣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타이어 한짝에 30만원이다. 커서 그렇다고(…). 어차피 바꾸는 김에 다 바꿨다. 그 달은 적금 빼고나서 아무런 ㅅㅂ비용 지출 없이 건전하고 검소하게 손가락이나 빨아야 됐다.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오래 쓰게 해준다면서 앞바퀴 두개의 압력을 10쯤 더 높여놨다. 타이어가 빵빵하면 접지력은 별로인 대신 내구도가 좀더 올라간다. 반대로 타이어가 좀 헐렁하면 접지력은 엄청 좋은 대신 마모가 심하고. 근데 앞타이어가 빵빵하면 동력전달이나 제동이 좀 별로라는 얘기 아닌가. 그래도 별차이 없겠지 하고 넘어갔다.
지난주, 삼발이 파이프같이 생긴 노란 등이 켜졌다. 원래 시동 켜고 잠깐동안은 냉각수나 오일 경고등이 잠깐씩 켜졌다가 꺼지는게 멀쩡한차도 정상이다. 근데 왠지 쎄하다 싶었는데 안 꺼진다. 그다음부터 며칠 주시하고 봤는데, 오랫동안 안 꺼지는 수준이 아니라 시동만 켰다하면 주행 끝나고 시동 끌때까지 등이 안 꺼지고 있었다. 매뉴얼에서 찾아보니 엔진점검 경고등이었다. 설마… 껍데기나 타이어같은 소모품이 아닌 구동계통이나 파워유닛은 아예 수리 자체를 정품 사업소에 가져가는 게 제일 좋다. 특히 신차를 뽑은거고, 몇 년 안 됐다면 더더욱.
집에서 20분거리쯤에 있는 정비사업소에 갔다. 아무리 그나마 덜 바쁜날을 고른거긴 하지만, 자리를 오래 비우긴 좀 그렇길래 차만 던져주고 버스타고 올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그런 정식 정비사업소는 던져주고 하루이틀 있다가 찾으러 가는게 아니라, 은행이나 병원처럼 대기번호 뽑고 기다리다가 차례대로 한번에 너댓대씩 점검받는 식이란다. 그 때 한번에 안 될 거 같으면 아예 공장에 보내든지 다음날 오든지 그건 그 이후에 정하는 거라고. 앞에 이미 8대 있대서 대기시간만 두 시간이란다. 홀리… 고객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불러준다는데, 이런데는 건물이 아무리 크고 잘 되어 있어도 대기실/휴게실 이런데는 정비소 특유의 구리고 불편한 느낌일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엄청 더운데 그런데서 썩고싶지 않았다. 그냥 차에서 에어컨 틀고 자야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의자를 제꼈다. 그러다 잠깐 화면을 봤더니 기름이 거의 없(…). 폰 충전을 정말 기를쓰고 안 하는 손버릇은 역시 차라고 예외가 없었다. 내 심리적 주유 한계는 자동차 정보패널 기준으로 항상 ‘주행가능거리 50km’이다. 참고로 저 수치는 주유등이 들어오고도 한참 지나야 나오는 거리다. 갑자기 강화도에 뭔 일이 있어서 달려가야 할 때의 거리. 그 거리만큼만 주유 없이 갑자기 튀어나가도 될만큼 남겨 놓으면 나머지는 뭐… 어차피 주유소는 서울부터 집 사이만 해도 저 거리 이내에 무조건 널리고 널렸으니 별로 신경 안 쓴다. 근데 에어컨을 핵빵빵하게 틀고 세워놓은채로 있었더니 저게 자꾸 줄어든다. 고치고나서도 그냥 기름이 없어서 서버리면 이거 진짜 큰일인걸; 집까진 10킬로도 안 되는 거리지만, 느린 구간 지나면서 연비 구려지고 어쩌고 하면 안심할 수 없는 수치다. 그렇다고 이 날씨에 에어컨을 끄고 차에 있다간 백퍼 열사병으로 뉴스에 나올 각이었다. 할수없이 애매하게 에어컨을 한 칸으로 틀고 적당히 버텼다.
그러다 한 시간 반쯤 지났는데 정비사 아저씨가 내 차로 와서 문을 두들겼다. 차 가져가서 보는동안 잠시 휴게실에 있으면 나중에 불러준다고. 그래서 그제서야 휴게실에 갔다. 그리고 엄청 후회했다. 여긴 진짜 정말로 매우 잘 되어있는 곳이라(…) 거대하고 두꺼운 1인용 소파를 각각 매-우 거리두기한 채로 사람도 띄엄띄엄 열 명도 안 앉아 있었다. 에어컨도 빵빵, 티비는 어차피 안봤을거지만 겁나 크고. 이런 구름방석같은 소파랑 빵빵한 에어컨을 두고 난 뭐 한거지. 대충 25분쯤 기다리니까 정비사가 데리러 왔다. 뜨거운 날씨에 땡볕에 세워놓다보니, 요소수 잔여량이랑 온도 감지하는 ‘센서’가 고장나서 경고등이 들어왔던 거라고. 그래서 주행엔 아무 지장이 없었다고. 그래서 그 센서를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갈고, 가는김에 냉각수도 조금 비었길래 서비스로 채워주고, 타이어 압력이 앞에만 높길래 서비스로 넷다 똑같이 맞춰줬다고. 내역서를 보니 다 합쳐서 5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라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카드를 꺼내는데, 보증기간이라 그마저도 무료란다. 갯꿀.
저번의 전자제품 대량주문의 ‘난’을 겪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이번에 큰맘먹고 어쩔수없이 필요한 걸 다섯개정도 시켰다. 다른 건 사실 적당한 편의기능인데, 제일 중요한 건 ‘무선충전 거치대’. 충전을 안 하는 습관이 손버릇으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환경을 거기다 갖다 맞추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다행히 내 아이폰 모델부터는 맥세이프까지는 안되더라도 무선충전 자체는 지원한다. 각종 특수문자랑 싼티나는 광고 붙여놓은 곳 말고, 네이버 스폰서쉽 광고 붙은 (웹사이트 디자인이)깔끔하고 고급진데서 샀다. 그리고 다른 쇼핑물품들과 함께 이틀 뒤 우르르 집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폰을 얹어놨더니 폰에서도 충전인식이 된다. ‘우와!’ 드디어 잭을 응딩이에 꽂는 그 동작만 특이하게 너무나도 귀찮아하는 이 영혼에게도, 출근이나 약속으로 집나갈때 폰이 만충되어있는 기적이 일어나는건가 싶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진 않고 그럴뻔했다. 한시간쯤 지나서 폰을 봤는데, 오히려 배터리 잔여량이 1-2퍼센트 떨어져있었다. 아… 설마. 그 뒤로 별짓을 다 해봤다. 아이폰 처음 샀을때 딸려온, 더 얇은 기본 투명케이스로 바꿔서 충전을 해보고, 가로/세로/살짝옆으로 등등 모든 경우의수를 다 테스트해봤다. 충전중이라고 메세지만 뜨고, 실제로 충전은 안 되고 있었다. 홀리…
설마 하고 케이스를 벗겨서 나체로 야하게 올려놨더니
충전이 되더라. ㅎ ㅏ …
인터넷주문은 반송을 너무 귀찮아해서 거의 웬만하면 그대로 쓰거나, 대충 쓰다가 버리는 편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 비싼걸 이렇게 쓸 수는 없다. 잭 꽂는것도 귀찮아서 충전 잘 안하는 내가, 충전할때마다 케이스를 야하고 귀찮게 벗겨서 올려놓으라고 하면, 난 정말 삐삐 차고 살지도 몰라. 어쩔수없이 판매업체에 증상을 얘기하고 반품접수해서 보냈다.
그만,
제발 그만 고장나
내 주변의 모든 것들
니네가 거들지 않아도
이미 나는 충분히 고장나있는데
멀쩡한척 하는데도 한계라는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