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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어그로_02_왜

Neon Fossel 2021. 8. 13. 02:46

어그로에 대해서 쓰다보니, 전혀 어그로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튀어나왔다. ‘왜, why’.

육하원칙중에 정확히는 ‘왜’가 필요없긴 하다. 그건 일할때도 그러니까. 나든 프로그램이든, 까라면 까는거지 왜가 뭐가 필요한데. 물론 직무와 인생 전반이라는 차원에서 ‘왜’는 중요하다. 근데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넘겨놔서 별개의 요소. 말하다보니 이것도 추가된 특징이긴 하다. ‘왜’ 즉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 딱히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이 특징은 사실 예전부터도 은근히 ‘일’의 영역에선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공존하거나 이미 요구되던 것들이었다. 다만 요즘 다시 부각될뿐.

하필 ’의도’가 매-우 궁금해질만한 일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그중 최악에 대비해야 했다. 군에서와 재무직으로 일한 직장에서 그랬다. 적이 아군을, 혹은 아군이 아군을 매우 다채롭게 갖가지 이유로 속이는 일이 빈번하다. 이건 페이크인가. 정보가 미어터지게 모이는 곳이라 오히려 넘쳐난다. 이들중 어떤게 교란이고 오염된 걸까. 머릿속에서 알고리즘을 펼친다. 1-10의 정보중에 각각 혹은 몇몇 조합이 거짓일 경우. 피드백 루프를 만들고, 케이스별로 예상되는 데미지가 결과로 나온다. 대비를 시작한다. 꽤나 무미건조한 작업처럼 들리지만 예상되는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면 기분이 좆같다. 예상과 준비를 다 하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잠깐 되뇌인다. 저것만은 아니기를.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예상 가능한 최악의 경우이다.

셜록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불가능한 것을 제하고 남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보여도 진실에 가깝다.

미리 대비한만큼 손실은 최소화됐거나 없다. 그리고 일이 일단락되고 나서 상대 집단이나 상대를 마주할 기회가 있을 때도 있다(그게 북한이나 경쟁사가 아니라 더 슬프게도 아군일 경우…ㅎ). 처음으로 일을 인지하거나 해결하는 도중엔, 아무리 감정을 분리하려고 해도 속에서 수십 수백번을 묻고싶었다. ‘왜 그랬냐’고. 하지만 그쯤되면 희한하게도 정작 그걸 물을 수 있는 시점에 그건 이제와 아무 소용이 없는 공허한 질문이라는, 그런 허망함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의 선택은 그랬고
그래서 나 혹은 우리의 반응은 다행히도 그랬고
그러나, 혹은 그래서 슬프게도 이미 이렇게 피차는 여기에 와있는 거라고.

거기에 더이상 ‘왜’가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너무나도 건조하게. 건조해서 슬프게. 

‘왜’를 들을 수 없어서 슬프진 않았다. 굳이 묻자면 들을 수도 있었으니까. 혹은 묻지 않아도 그 난리통에 피차의 선빵과 맞받아침에서 드러났기에 이미 다 알 수 있었으니까.

다만 ‘왜’ 마저도 묻는 게 의미없어진 그 상태가 슬펐다.

평소엔 오히려 의도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말그대로 칭찬이라 기분은 좋지만, 내가 정말로 얼마나 그런지는 스스로 잘 모르겠다. 실제로도 그게 굉장히 궁금하고, 그 의도와 기대에 맞는 행동은 나와 상대를 일과 인생에서 모두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기에 ‘왜’가 의미 없어진 그 자체를 그리도 찐하게 슬퍼하는 걸까. 필요에 따라서 모드를 켤 순 있는데, 처음부터 이유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그런 종류의 인간은 못 되나 보다. 그래서 공감을 얻는만큼 내상을 입는거고, 내상을 입을수도 있지만 공감도 얻는 거고. 공짜는 없지. 에라이 생긴대로 살련다. 근데 차라리 좀 무뎌지는게 좀 더 신상에는 편할 것 같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