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와 손절, 새우등 그 어디쯤 - 아프가니스탄
BBC 메인.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면서, 탈레반(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집단)이 아프간의 수도로 진군하여 사실상 국가를 점령했다. 대통령은 주변국으로 튀었고, 정부는 확실하게 망하고 해산됐다.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을 위시한 서방국들에게 항의한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우릴 갖다 버리면 어떡하냐’는 것. 그래서 그들은 수도를, 국토를 탈출중이다. 주변국들중에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줄 나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참고로 얼마전 시리아 난민사태가 발발했을 때, 처음엔 난민을 신나게 받아들이던 유럽은 결국 나중엔 폭탄돌리기하다가 두손들고 국경을 사실상 막아버린 상태이다. 난민의 대거 입국으로 인한 사회 불안요소 증가, 노동력 대체로 인한 부정적인 각국의 국내여론, 난민에 대한 기본적인 처우에만도 엄청나게 쏟아부어야 하는 예산 문제 등등. 그래서 그들은 문을 걸어잠갔고, 이제서야 뒷북으로 대탈출을 감행하는 아프간 국민들은 갈데가 없다.
탈레반은 이제 더이상 전쟁은 없으며, 민간과 정부에 있는 서방 주재원들이 철수하는 과정이나 기타 망명을 원해서 이동하는 국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지켜질지 미지수이다. 서방 주재원들은 인질, 이탈하려는 국민들은 그 자체가 국력인데 이것의 유출을 그렇게 호락호락 신사적으로 넘어가줄 인물들이 아닌걸. 게다가 탈레반의 장악에 즉각적으로 반발한 소규모 레지스탕스들이 수도로 진격중이란다. 만약 이들과 시가전이 발발할 경우, 그냥 도망치려는 일반인이나 주재원과 저항군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저항군 입장에서 이탈자들이 충분히 빠져나간 뒤에 공격을 하라는 건 더 말도 안되는 소리다. 단 몇시간만 지나더라도 탈레반이 수도의 주요 거점을 더욱 확실하게 장악하고 방어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 뚫고 들어가기는 몇 배, 몇십 배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빈집털이로 깃발을 꽂아 쟁탈하려는 자, 막으려는 자, 탈출하려는 자들의 집단 개죽음. 정말 헬게이트, 지옥문이 열렸다.
미군이 오지랖을 부렸다가 냅다 안면몰수하고 튀면서 나라가 박살나는 꼴은 처음이 아니다. 월남전에서 베트남이 이미 그 대가를 치렀다. 이번 아프간도 모양새는 비슷했다. 미국 입장에서 얻을건 뻔했다. 911테러의 복수, 중동 한가운데에 서방진영의 깃발을 꽂으면서 땅따먹기, 기름, 전쟁 과정 자체에서 미국 방산업체들의 유대자본들이 신나게 무기를 팔아먹고 얻을 돈. 미국이 꿈꿨던 건, 적당한 시점에서 저런걸 먹고 튀는 ‘먹튀’였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와 땅따먹기에 대한 남은 희망, 그리고 내치가 불안정할때마다 여론의 주의를 돌릴만한 샌드백으로써의 역할(우리나라의 ‘북풍’과 비슷한), 무엇보다 전쟁 자체가 지속될수록 정부의 돈을 계속 빨아먹을 수 있는 유대자본과 그들이 로비하는 공화당 보수의 입맛. 이런 것들이 미국으로 하여금 이미 먹튀가 실패한 러쉬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20년을 질질 끌게 만들었다. 그러다 이제 빨대꽂기가 끝났을 뿐이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진보인 민주당측 바이든이 정권을 잡았기에, 그는 결국 자기 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그럴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진보진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20년을 미루던 철군을 감행했거나, 그게 성공했다고 볼순 없다. 그렇게 따지면 중간에 트럼프 직전을 거쳐간 오바마는 더욱 급진적이고 센세이셔널하며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던 진보색채였음에도 불구하고 철군에 실패했다. 그냥 대통령이 꼭대기 먹었다고 마음대로 으름장놓으면 다 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보수와 방산업체들의 유대자본이 더이상 전쟁놀이에 꽂은 빨대에서 빨아올릴게 남지 않았다는 계산을 했고, 그들이 주시대상을 풀었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정도로 이들은 멍청하지 않다. 미 정부의 돈을 국방예산이라는 포장으로 빨아먹으려면, 거위를 죽이지는 않고 목숨줄을 붙여놔야 한다. 최근의 미 정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문에 부채가 3경을 넘었다. 쥐어짜도 어지간히 짜야지, 이 이상 빨대로 빨아올리고 쥐어짜버리면 아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목숨줄을 붙여주려, 잠시 손아귀를 느슨하게 풀어줬을 뿐이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굳이’ 아프간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헤어짐에도 예의와 존중이라는게 있는 건데, 이별의 과정과 결과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이 좆같이도 그냥 뜯어내는 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 미국의 입장도 이와 같았다. 여태 한참 본인들이 눈치보던 보수는 이미 부동산이랑 금융시장에서 판치기로 버는 돈이 너무 짭짤해서 흥에 겨워있으니, 니네가 철군을 하든말든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바이든 본인을 찍어준 진보진영은 하루빨리 철군하기를 바란다. ‘자기 생각’, 즉 ‘미국 혹은 바이든 생각’만 한다면 철군을 늦추거나, 아프간 정부군이 확실한 통제권과 전투력을 갖출때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할 필요가 없다. 그냥 냅다 쇠뿔을 뽑아서 뜯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 혹은 국민들이 썰물처럼 도망치듯 아비규환의 대탈출을 감행하게 된 지금의 이 모양새다.
대탈출, Exodus. 우리나라에선 기독교 한글 번역으로 ‘출애굽기(신교), 탈출기(구교)’라고도 더 많이 알려진 단어다. 개신교인 기독교의 나라 미국, 혹은 그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유대자본의 그 ‘유대인’들. 그들이 믿는 종교로써나 직계 선조로서의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민중을 해방하기 위해] Exodus, 즉 대탈출을 감행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지금의 이 대탈출과 오버랩되면서, 비슷한 풍경에 굉장히 다른 맥락과 목적이라는, 같은 멜로디에 완전히 다른 화성과도 같은 대위법적 변주가 느껴진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역사가 반복된다고 해서 항상 속편의 퀄이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나부터도 조금 더 깨어있고, 조금 더 알자. 그리고 아는 만큼 일상에서 작은 것 하나부터라도 행동하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 없는 미래를 오롯이 감내할 것은 우리 후손, 더 확실히는 내 후손들이다.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자. 하물며 법 앞에서의 무지도 용서되지 않는 판에, 내 후손들의 미래에 대한 무지는 핑계 근처도 될 수 없다.
지금 이 시각,
우리나라는 '광복절' 연휴를 지내고 있다.
(임정과 광복군이 국내진공작전을 하기도 전에, 미군의 승전과 일본의 패전으로 맞이한 그 광복)
그리고 그 같은시간에 공교롭게도 어떤 나라는 망했고,
어떤 나라는 욕망과 필요의 끝에서 좆같은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인간 세계는 참 재밌다.
그리고 재밌다는 말이 불경할정도로, 생존에 대한 위협과 공포를 느낄 아프간 국민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낸다. 부디 운명이 더는 당신들에게 가혹하지 않기를. 그리고 심지어 운명이 거지같이 갠세이를 놓는다고 해도, 제발 포기하지 말고 살아내기를. 그 땅에도 덜 불행하거나 행복을 더 느끼는 사람이 조금은 다시 많아지기를. 인간이 위대하거나 흥미로운 이유는 주어진대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 운명이 곱게 손짓하면 그 운명을 받아들이며 타고 놀고, 끔찍하게 변덕을 부린다면 파도를 타고 넘듯 운명을 타고 넘어버려라. 제발. 원래 운명에게 통렬하게 뻐큐를 먹이는게 우리 종특이니까.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