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NPC
간만에 예전 살던 동네의 우리 식구 단골 주치의 내과 선생을 찾아갔다. 부모가 강화도로 갔어도 병원은 꼭 여기로 온다. 그래서 그들의 종합검진도 예약 잡고, 내 몸도 러프하게 한 번 볼 겸, 인사도 할 겸. 아직도 몇 년에 한 번 감기몸살이나 코/목감기가 너무 세게 오면 종종 그것 때문에 들르기도 한다. 역시나 보자마자 혈압 재고 피부터 뽑아재끼는 건 여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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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격
-신기하십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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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탕탕탕 옆 건물 부지에 굴착기 뚫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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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저놈의 굴착기는 오늘 하루 종일 아주 골이 울려 죽겠네요
-그러게요 저거 하루 종일 들으면 일 못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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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분들이 오히려 주말인 토요일까지도 나와서 일해주니까 공기도 당겨지고 해서 고맙긴 하지만 너무 빡세네.
-이 건물 공사도 아니고, 선생님 건물도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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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빨리 끝나면 누군가는 편하겠지. 그러니까 주말에 힘들게 일하는 저 사람들도 고마운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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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넓은 의미에서의 ‘동업자 정신’인가. 뭐 어느 업계에서도 봐왔던 풍경이지만, 요즘 보는 F1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기본적으로 내 앞에 누가 달리는 꼴을 절대 못 보는, 경쟁에 눈이 돌아간 검투사 놈들임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경쟁 혹은 동료의 생사가 걸린 안전 문제 등에는 서로 마음 쓰고 돕는 것. 얼마 전엔 초고속 서킷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고참 베테랑 레이서들이 심판들에게 ‘이거 레이스 스케줄 일시 중지해야 된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랬다가 레이스 재개를 못 하면 티켓 환불 문제에다가 광고주들이 생난리를 칠게 걱정된 심판들은 그걸 듣고도 결정을 계속 미뤘다. 결국 신예 드라이버의 차가 290km로 코너를 돌다가 통돌이 세탁기처럼 돌면서 박살이 났다. 그걸 보자마자 베테랑 레이서는 자기 기록과 상관없이 트랙 밖으로 차를 끌고 가서 사고 드라이버가 괜찮은지 직접 확인했다. 0.001초로 순위를 다투는 경쟁자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동종업계의 동료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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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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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번보다는 요새 얼굴이 좀 나아 보이네요?
-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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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루틴에 좀 적응이 된 건가?
-적응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포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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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그래… 차라리 포기가 나을 때도 있어
-ㅋㅋ그런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