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ronome
같은 노래를 여러 번 듣다 보면 들을 때마다 예상보다 느리게 들리거나 더 빠르게 들릴 때가 있다. 어느 정도 빠르기가 있거나 리듬감이 강조된 곡일수록 더더욱. 라이브라면 상황에 따라 속도를 일부러 다르게 하거나 휴먼에러로 미묘하게 다를 수도 있고, 옛날처럼 카세트테이프라면 피치가 늘어지거나 템포가 좀 느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디지털 음원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 그럼 음원은 확실하게 고정된 상수이니, 그걸 평소보다 빠르거나 느리다고 느끼는 변수는 나 자신이다.
그래서 마치 내 스스로의 메트로놈처럼 쓰이는 곡이 있다. 몇 곡을 정해놓은 건 아닌데, 어차피 정해놓지 않아도 항상 끼고 사는 곡들이 그렇다. T-square - Explorer, Glen Check의 노래들. 노래가 들리는 체감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비슷한 게 몇 개 있다. 우선 익숙할수록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 느리다고 느끼기 쉽다. 낯선 곡은 바로 뒷 노트나 뒷 마디에 어떤 멜로디나 화성, 채널이나 악기 구성이 깔릴지 모르기 때문에 순간순간 제시되고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장면들을 잡아내야 한다. 그래서 지나가는 게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지고. 반면 익숙한 곡들은 바로 다음 순간에 뭐가 나올지 이미 ‘알고, 기대하는’ 상태에서 기다린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리게 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그 외의 요인은 내 몸과 정신의 상태이다. 차분함 - 분주함, 처리속도가 느린 상태 - 빠른 상태로 볼 수 있다. 노래가 빠르게 들린다 - 듣는 내 몸과 정신이 굉장히 차분했던 상태라는 것. 노래가 느린 것처럼 들린다 - 내가 이미 굉장히 칙칙폭폭 상태라는 것. 그래서 어떤 날은 똑같이 자고 일어난 직후인데도 같은 노래가 느리게 들리는(몸과 정신이 이미 팽팽 돌아가고 있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전자는 잠을 얕게 잤거나, 혹은 자더라도 꿈속에서 뭔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고 긴박한 일이 있었을 때 그렇다. 후자는 정말 늘어지게 푹 잤을 때 그렇고.
반면 일할 때는 노래가 어느 정도 제속도로 들리거나 혹은 제속도보다 약-간 느리게 레이백 된 느낌으로 들릴 정도의 상태가 좋다. 몸과 정신이 적정 수준으로 깨어있다는 소리니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가끔 일에 급한 이슈가 생겨서 엄청 집중을 한다던가, 운동할 때나 운동이 끝나고 나서, 혹은 취미로 하는 연주나 게임, 글쓰기에 미친 듯이 집중하고 나면 모든 노래가 싸그리 느리게 들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 하루 정도. 그럴 때는 필요한 순간에 오버클럭 된 상태가 아직 관성 때문에 계속 그렇게 돌고 있다고 느낀다. 그럴 땐 최대한 쿨다운시켜서 Idle(중립) 상태로 다시 안정화시키기도 한다. 계속 그 텐션으로 살면 분명히 과열되고 전원이 꺼져버리는 순간이 오니까.
이런 건 음악을 배울때나, 혹은 연주할 때 ‘꼭 맞춰 따라가야 하는’ 메트로놈과 의미는 좀 다르지만, 일상에서는 적어도 상대적인 내 상태를 알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점으로써는 어느 정도 쓸만하다. 추천-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