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1. 9. 28. 14:19

핸드폰은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평소에도 굳이 즉각 답해야 할 알림들만 켜놓고 나머지는 거의 신경을 안 쓰긴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러려면 어딘가로 나와서 장갑 빼고 자세 잡고 봐야 해서 귀찮다. 뭐 하나 틀어놓기만 하면 다음 밥 먹을때까진 주머니에서 나올 일이 없다. 그렇게 팟캐스트에 있는 라디오 다시듣기랑 무아지경에 빠져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야? 모해?
-강화 집에서 일해

-나 어디게~~
-??

-강화도 왔지롱! 동생이랑 엄마아빠랑!
-뭐?
-명절이라 가족여행 가자길래 여기로 오자고 했어
-왜?
-왜가 어딨어 오고 싶으니까 온 거지
-헐…

어디라고…?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고구마 파는 거 남았냐고 묻는다. 항상 거의 주문생산처럼 딱 맞게 하니까 거의 남는 게 없다고 잘라서 말해버리려다가, 사실 혹시 모르니 여분으로 좀 넉넉하게 해 놓은 게 있긴 있으니까 있다고 말해버렸다. 실수였다. 온 김에 산다느니, 바쁠 것 같으니 가지러 오겠다느니(…)? 이거 빌드업이 뭔가 자연스러운데.

미끼를



물어분것이여

내가.

엄마아빠는 분명히 이래저래 수선을 떨 것이 분명했다. 혹은 아직도 도시 여자의 체통과 품위를 잃고 싶지 않은 엄마는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에게 선캡에 흙 묻은 토시와 바지를 보이는 걸 싫어할 테고. 또 이것저것 구경시켜주고 따갈 것 따가라고 한 보따리씩 챙겨줘야지,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굽듯 상도 차려 낼 테고. 내가 그꼴 못 보지.

-내가 갈게. 편한 시간이랑 숙소 위치 톡으로 남겨놔
-아니아니 명절인 데다가 농사일도 바쁜데 뭐하러 와
-그게 오히려 편해서 그래. 내가 갈게
-그래…? 그럼 출발할 때 연락해~ 맛있는 거 해놓구 기다릴게 힣(…?)



점점 진흙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택배보단 왕복 기름값이 싸겠거니 하고 차선책을 기가 막히게 받아쳤다고 생각했는데……

최선도
차선도
차악도 아닌
최악이었다.

이 머리로 일이랑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냐 진짜, 나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