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re_05
-되게 자상한가 봐요~ 우리가 잠깐 들러서 가지러 가도 되는데, 오빠가 굳~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고 쟤가 그러더라구우~
‘그렇지, 내 첫 실수. 이게 이렇게 둔갑하는구나’
-허헛, 어차피 일산 집 근처나 가까운 서울에 계신 분들은 직접 왔다갔다 하면서 가져다 드리기도 해서요. 놀러 오셨다는데 괜히 시간 쓰실까 봐도 그렇고
-이거 봐~ 자상하네 자상해. 쟤도 아까 오빠가 온다고 했다고, 우린 그냥 저녁 밖에서 먹고 안주거리만 사서 올랬는데 굳이 삼계탕 파는 집 찾아서 사온거에요. 오빠가 가시랑 뼈 들어간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아까 장갑 끼고 퍽퍽살로만 골라서 다 뜯어넣고 다시 끓였어 ㅎㅎ
-아니 엄마는 그런 걸 왜 말해. 먹는 사람 미안하게
-너야말로 그런걸 어머니한테 뭐하러 말씀드려;… 저 그냥 아무거나 대충 잘 먹습니다
‘거짓말이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매크로의 빈칸에 들어갈 자동완성의 선택지엔 이것 밖에 없다.’
-그렇구나아, 어서 들어요. 식겠네
-네, 정말 이런 거 안 챙겨주셨어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ㅎㅎ…
다행히 기름기는 거의 없는 음식이었다. 이렇게까지 해놨는데 요새 하루이틀 밥이 잘 안 들어간다는 팩트를 폭격해서 무안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후딱 먹어치우고 소화 안 되면 사이다 한 잔 들이키고 소화제 먹으면 되겠지. 너무 게걸스러워 보이지 않는 선에서 후딱후딱 성큼성큼 퍼먹었다. 어차피 대충 먹어치울 음식은 오래 끌고 밍기적거리면 더 손이 안 갈 뿐이다.
-아유, 엄청 펑펑 잘 먹네. 보기 좋네. 우리 식구들은 다 깨작깨작 거려서. 저냥반도
-아니야아 나도 잘먹는데 왜
-ㅎㅎ…
너무 쳐먹었나. 오늘은 무슨짓을 하든 의도와 반대의 효과가 일어나는구나. 그럼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거꾸로 행동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려나. 수렁이다 수렁이야. 머리를 아무리 이리저리 굴려봐도 답이 안 나온다. 최근 겪은 어떤 알고리즘보다도 더욱 미로같은 상황. 그렇게 굉장히 불편한 식사를 빨리 끝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회랑 과일이 세팅되고 앞에 술잔이 놓였다. 이 아저씨는 따분하고 피곤한 가족여행에서 드디어 술친구를 만났나 싶어 신난 기색이 역력하다.
-아… 저 차 가지고 와서요. 운전해야 해서 ㅎㅎ
-그냥 마시고 아예 자고가버려어. 여기 방 세개라 하나 남어요 남어
-요새는 저도 자주 못 와서, 할머니랑 말동무도 해드리고 그림공부도 봐드리고 하려구요. 집에도 부모님이랑 이거저거 같이 마저 치울 것도 있고 ㅎ…
-할머니도 그렇게 챙겨요? 아유우 자상해라. 진짜 듣던것처럼 되게 자상한가봐아
-아닙니다. 평소에 잘 못 해서, 가끔 올 때라도 잘 해드리는거죠 뭐 ㅎㅎ…
-그럼 가져온 배라도 깎아서 몇조각 같이 먹고 가요
-아,,, 네 ㅎ
…
너 진짜
뭐라고 한거야
두고보자
-(동생) 우와 이거 엄청 달다 >.< 어으 진짜 달어 >.<
-그러게 이거 엄청 달다, 이런 것도 집에서 키워요?
-아 네. 주 작물은 아니고, 그냥 밭 옆이나 산이나 진입로 주변에다가 이거저거 먹고 싶은 거 심어 놔요
-오빠네 산도 있다! 땅도 엄———청 넓어!
-에헤이(ㅡ.ㅡ) 쫌 진짜; 아니에요. 그냥 쪼그만 소농입니다.
-아니야 오빠네 논 끝도 안보여
-그동네 논 다 그래
-오오… 부모님이 농사를 그래도 좀 크게 지으시나 봐요?
-조부모님 하시던거 이어받아서, 먹을 거에서 좀 남으면 필요하다는 지인들한테만 알음알음 파는 정도에요. 어차피 아직은 본업이 있으셔서
-본업은 뭐 하시는데?
-석공이십니다. 건축인테리어 쪽
-이야… 손재주가 좋으시겠네
-네. 아버지는 그런 편이세요
-본인도 음악같은것도 잘했다며? 그 손재주가 어디 가나 그럼
-아… 그냥 했었습니다 ㅎㅎ
-나도 이 쌕쏘폰 부는 것좀 배울랬는데 쌕쏘폰. 그냥 소리를 내는것만도 어렵더라구 끌끌
-관악기가 처음엔 좀 그렇죠. 그래도 조금만 더 하시면 금방 잘 하실거에요
도대체 나는 너에게
너는 네 가족에게
어디까지 말한거냐 어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