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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 Yourself] X [Shadow Priest] _03

Neon Fossel 2021. 11. 7. 12:55

난 그래서 암사로 어둠의 형상이나 공허의 형상을 켰을 때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어두운’, ‘기품 있게 어두운’ 그런 형상이길 바랬다. 안 그래도 몸의 나사가 여럿 빠진 채 굽은 언데드는 볼 것도 없었고, 너무 작거나 반대로 그저 허우대가 무식하게 크기만 한 양극단의 장난질도 별로 관심 없었다. 원래 고결하고 아름다운 존재. 그 존재가 피치 못하게 함께 담지한 어두운 면이어야 그 어둠도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다. 그래서 블엘 남캐가 어둠의 형상이나 공허 형상에 돌입하면 더 멋지다. 공중에서 약간 떠서 온 몸을 공허의 힘으로 친친 감고, 감히 그 힘에 도전해서 심지어 자기의 목적대로 굴복시키겠다는 그런 고고하고 도도한 느낌이 있다.

이런저런 파편적인 설정들에서, 암사는 공허의 힘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다룬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설정상 실제로 그 힘을 초기에 연구한 사람들이나, 극단적인 변절자들 중엔 그 힘에 잡아먹히고 휘둘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와 소수의 예외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결국 플레이어가 플레이하게 되는 암사는 본래의 자아와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그 어둠과 공허를 본인들의 목적에 맞게 굴복시켜서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 나서도 돌아서지 않았다.

그들은 공허에 잡아먹힐 바에야 차라리 자신을 바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암사 스킬 중에 ‘광기에 굴복하라, aka 광굴’이 있다. 옳은 일을 위해 광기에 굴복할 정도로 극단적인 힘이 필요할 경우엔, 굴복해서라도 그 힘을 이끌어내서 쓴다. 그러고 광기에 굴복한 대가로, 그 자신은 스스로 소멸한다(죽는다). 내가 회드로 처음 플레이했을 때, 광기에 굴복해서 죽은 암사한테 아무리 전부를 넣어도 전부가 들어가지 않아서 되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전부를 연타하다가 뒤늦게 본 화면 중앙엔 이런 메세지가 연달아 써 있었다. ‘광기에 굴복한 대상은 부활할 수 없습니다’. 크으(…) 키야(…) 미쳤다 설정 진짜. 자신을 그릇으로 써서라도 광기에 굴복할 정도의 힘을 끌어다 쓴다. 그리고 나서 광기에 굴복한 스스로가 아군을 배신할 바에야 그럴 가능성마저 없도록 자신이라는 그릇을 완전히 깨부수는 자기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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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