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cing Disorder_07
한정된 기간 동안 저 조직을 체험할 때의 나는 본사의 6급(갑)-사무직/경영관리-재무전략 코드로 구분되는 인적자원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정 뚝뚝 떨어지네. 1년마다 재선임해야 하는 등기이사 등 임원을 제외하고는 회사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계약관계. 간단히는 정규직이자 사무직. 그래서 같이 공채를 합격하고도 계열사로 배치된 동기들이나, 아님 팀에 배치받고 나서 한두 명씩 마주친 계약직 사원, 혹은 경력직인 일부 선임들은 우리를 ‘진골’이나 ‘성골’이라고 불렀다. 본인이 버티거나 잘하기만 한다면, 임원도 될 수 있는, 그런 꿈이라도 꿔볼 수 있는 유일한 핏줄. 회사의 적통. 사무직 공채 정규직. 이상하게도 군대에서와 비슷하게 이 첫 회사의 회장도 ‘현장을 모르는 공부벌레들은 다 꺼져라’는 매우 바람직한 사고방식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짧아도 6개월짜리, 그것도 ‘매장 영업’에 던져졌다. 니들이 기획, 인사, 재무, 마케팅, 개발, 생산관리라는 데서 펜대가리와 키보드로 굴리는 일이 결국 말단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직접 보라는 거였다.
삼/엘은 저렇게 OJT라고 시켜놓고는 2-3년간 기약없이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로 사람을 방치하기도 한다. 회사 입장에선 공채도 붙일 만큼 적당히 배워먹은 고급진 스펙을 가진 애들을 영업사원으로 싸게 빨아먹으니 개꿀이고, 그러다 기약 없는 본사에 지쳐서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두기도 한다. 법망과 언론의 질타를 받지 않으면서도 고급인력을 싸게 쓰고 뒤처리까지 깔끔한 방식. 동기 중에도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들이 몇몇 씩 왕왕 겪는 일이었다. 그래도 저 회사는 그렇진 않았다. 애초에 기간과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었고, OJT 과정에서 중간중간 내부 교육을 하거나 희망부서에 내부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갈 부서가 미리 정해지면 그 부서에서 사람이 계속 왔다. 자기가 신입일 때의 라떼를 시전 하면서 이런저런 팁을 알려주기도 하고, 올라오면 이런 일을 할 거니까 대강 미리 참고하라고 자료들도 주고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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