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는 예, 술을 배웁니다._03
그때쯤 지원이가 들어왔다. 큐알 찍어. 아참 여기 지금 촬영 좀 한대. 지금? 아니, 나중에. 지금은 스틸컷. 어쩌다 보니 꽤 오랜만이다. 내가 오늘 무려 15분이나 일찍 왔으니, 그전에 늦은 건 다 퉁치기로. 계산이 왜 그렇게 되냐는 반론은 묵살했다. 앞의 일정이 도저히 끼니가 안될만한 것들만 깨작깨작 하면서 사실상 한 끼 건너뛴 셈이라 배가 고팠다. 다른 건 다 깠는데, 잘 먹거나 많이 먹는다는 사실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게 하는 편이다. 그걸 알리면 상대가 오히려 역으로 나를 배려하느라 굉장히 귀찮아진다는 걸 수차례 몸소 확인했기 때문이다. 모자라는 장작은 어딘가에서 열심히 채워 넣으면 된다. 평소와 다르게 갈비랑 껍데기를 시켰다. 요즘 돼지갈비처럼 너무 단 양념 맛이 물씬 나거나, 너무 느끼한 건 별론데. 배고프니까 땡긴다. 껍데기는 갈비가 익기 전까지 안주거리가 되어줘야 하니까 필요하고. 각자의 식솔들 및 이해관계자(?)들이 무탈한지 서로 대강 묻는다. 그렇군. 아참 쏘주 깜빡했네. 여느 때처럼 카운터 옆 냉장고에 가서 들고 왔다. 가게 사장님이나 일하시는 분들이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바쁜데 오라 가라 하면서 부르는 게 미안해서 생긴 버릇이다. 몇 병 마셨는지는 나중에 계산할 때 스스로 카운트해서 자진납세하는, 매우 신뢰로운(?) 방식. 냉장고에 간 김에 주방에 있는 남자 사장님한테 눈도장도 찍었다.
여기저기서 가게 전경이랑 테이블을 찍고 있는 아마도 막내피디나 막내작가를 뒤로하고, 요새 뼈가 녹는다-는 흔한 멘트로 시작한다. 왜 쉬어도 일할 땐 항상 피곤하며, 일이 그닥 안 빡센 날도 녹초가 되는 거냐-는 얘기들. 날씨 얘기 다음으로 뻔하고 편한 얘기가 엄살이다. 그때쯤 옆에서 뿔테 안경을 쓴 누나-줌마쯤 되는 사람이 ‘저기요’ 하면서 굉장히 매끄러운 타이밍에 치고 들어왔다(?). 딱 봐도 껌이랑 떡 파는 할머니는 아닌데. 뭘까. 아 늬예늬예…?
지금 사진 찍고 있는 저 피디네 드라마 작가란다. 내가 얼굴 알고 이름 들어본 극작가는 노희경이랑 김은희 밖에 없는데. 그래서 모르겠나 보다. 죄송한데, 몇 개만 여쭤보면 안 될까요. 어이쿠… 되지유 되지유. 메뉴 시킬 때, 단골손님들은 뭐라고 바꿔 부르나요? - (돼지-빼고) 껍데기, 소금, 갈비(는 돼지갈비를 의미합니다), 소갈비, 막창 + 숫자는 한둘셋넷(단위;개). 다른 집이랑 다른 점이 있나요? - 공깃밥이 없고 미리 돌솥밥을 시켜야 20분 있다가 나와요, 쌈채소 없습니다, 마늘이랑 고추, 쌈장이랑 맛간장 밖에 없어요. 술은 주로 뭐 시키세요? - 후레쉬요, 그냥 쏘주라고 하면 그 테이블이 전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일하는 분이 포스기계 다시 보거나 테이블 와서 다시 물어봐야 돼요, 그냥 참이슬이라고 하면 빨간 건지 후레쉬인지 모르고. 그러니까 그냥 후레쉬라고 하는 게 피차 편해요. 여긴 주로 어느 연령대나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 아무나 다 와요. 근데 직장인끼리도 오긴 오는데 다른 집보다 별로 없어요. 주로 연령대 무관 친구끼리들 옵니다. 젊은 애들도 친구끼리, 아저씨 아줌마들도 친구끼리. 아니면 예-술 한다는 사람들이 가끔… 대학생 나부랭이들이 뒤풀이 겸 오면 겁나 시끄럽구요, 그리고 썸 타는 남사친/여사친들 오면 답답한 사람들 눈팅하는 게 좀 꿀잼이고, 당연히 걍 커플들도 많이 옵니다. 다른 홍대 고깃집이랑 다르게 외국 관광객들이 거의 안 와요. 어쩌다 외국인이 한두 명 보이는데, 그 사람들은 한국인이랑 아예 다를 바 없는 초고수 현지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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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