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장비-러의 중간 증상보고_06
두 번의 애플 이벤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애플 이벤트가 지나갔다. 두 번에 나눠서 맥북과 아이폰, 패드까지 다 공개가 됐다. 형태가 뭐가 됐든 모든 라인업에서 애플과 앱등이 양쪽의 태도는 분명해졌다.
애플 : 이게 필요한 사람만 사라, 우리는 모든 걸 다 욱여넣고 극한의 첨단으로 즐겨버리겠다. 가격도 첨단이다(?).
앱등 : ㅇㅇ 필요하면 사고, 아닌 건 아닌 거다. 이제 팬심으로 어차피 사는 김에 무조건 라인별 풀옵 플래그십을 지르기엔 그 선을 넘었다. 가성비-를 따지기에 앞서, 애초에 전혀 필요가 없는 기능이 가격 차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이제 이건 확실히 선택의 문제이다.
아이맥은 150만 원짜리 홈 인테리어 소품을 놓고 싶거나, 그럴 여유가 될 때 산다. 똑바로 서있는 모니터에 마침 애플 본체가 들어가 있다는 것 말고는 특장점이 없음. 예쁘긴 되게 예쁘네. 짜잉나게.
애플워치는 필요 없다. 폰을 쓰다가도 조금 제대로 보려면 패드, 더 제대로 건드리면서 보려면 맥북을 쓰고, 그게 아닐 거면 아예 기계를 근처에 안 놓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건 지금 폰 하나로도 족함. 게다가 손목에 있는 게 은근 남아나지 않고 기스와 크랙의 제물이 된다는 건, 시계를 얌전히 못 쓰는 히스토리컬 데이터에서 이미 증명됨. 달고 운동하는 거 아니면 딱히 쓸 기능도 없더만. 어차피 폰 안 꺼내고 전화받는 건 에어팟만 있어도 되잖음? 시리 : 홀.리.쓋. 님의 전화—— 나 : 어- 받어 / ㅇㅋ;
패드는 사실 필요하다. 아니, 필요할 수도 있다. 에어2가 아직 성능은 쌩쌩한데 디스플레이 바깥쪽을 쥐면 안쪽에 방울처럼 우는 부분이 가끔씩 생겨. 어차피 대부분 어딘가에 걸거나 기대 놓고 쓰니까 솔직히 못 쓸 만큼 거슬리는 건 아니긴 함. 사도 어차피 에어를 살 거다. 패드 프로는 더 이상 태블릿이라는 카테고리에 스펙이 묶여있기를 거부하는 듯, 스펙도 가격도 맥북이랑 비등비등하다. 맥북을 안 쓰면서 애플의 앱 생태계를 맥북만큼 써야 한다면야 패드 프로를 쓰겠지. 혹은 애플펜슬 2세대를 굳이-꼭 써야 할 만큼 필요하거나 역체감의 덫에 걸렸다면야(황인형의 경우가 애석하게도 이런 역체감 트랩의 희생자라며 본인의 신세를 한탄했다. 피-스) 패드 프로를 쓴다. 이미 맥북이 있다. 손글씨는 쓸 거면 종이에 쓰고 아니면 이제 전자기기에는 아예 안 쓴다. 패드 프로는 필요 없군. 새로 나온 에어를 살지 말지는 일단 보류. 스스로가 태블릿을 얼마나 쓰고, 얼마나 불편한지 모니터링할 것. 미니와 걍 패드는 고려 대상에 애초에 없으니 제외. ㅇ ㅏ … 미니 사줄까?
폰도 패드와 비슷하게 걍 13 사면되겠군. 모-든 라인업에서 카메라와 그래픽이 대부분의 가격차이를 잡아먹는다. 나와는 관계없음.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사진과 영상이 ‘업’이라서 고스펙이 필요한 사람들이 프로를 쓰라고 만든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은 굳이 폰이나 패드 프로의 카메라가 아니라 아예 더 고스펙의 별도 장비를 쓰는데. 궁극적으로는 아예 Apple only로 창작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가. STP가 제대로 됐는지 잘 모르겠는 지점.
대망의… 맥북.
이것도 ‘어떤 정말 프로’를 위한 프로인데, 그것도 역시 타겟 스펙이 그래픽이다. 난 CPU와 램을 최대한 갈구는 축에 속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텔에서 M1으로의 전향 정도는 확실히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대부분의 그래픽 스펙에 저 돈을 패키지로 써야 하는 건 좀 별로. 그래도 만약 이 정도의 허들이었다면 냅다 넘고 샀을 거다.
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새것인데 심지어 두껍고 못 생겼다. Tool box… 공구함처럼 생겼어. 핵 발사 코드 입력하는 초-투박한 보안노트북처럼. 저게 뭐람. 게다가 포트 구성에도 할 말이 많다. 내 맥북인 2019-20년형 프로에 작정하고 온리 C타입 썬더볼트 네 개만 떡하니 박은 것도 욕먹을 만한 돌아이 짓이긴 하다. 근데 기껏 그래서 C타입 생태계가 주변 제품군 전반적으로, 나에게도 좀 익숙해질만 하니까 이제서야 SD슬롯에, 맥세이프에, 심지어 A타입; 포트에… 뭐 하는 거지. 디자인 갖다 버리고 필요만 덕지덕지 붙은 아수스나 레노버 기계들처럼 포트들이 흉하게 불규칙적으로 울퉁불퉁 저게 뭐냐고. 두꺼움 + 여러 가지 지저분한 포트가 덕지덕지 = 응 - 최악.
그리고 키보드에 있던 터치 바가 빠지고 그냥 기존 F1-12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역행해버렸다. 터치 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데, 아마 거의 불호가 많아서 그게 반영된 듯하다. 근데 신기하게도 난 이거 조금 적응하고 나니까 되게 좋았는데. 애초에 UI, I/O device는 adaptive가 기능의 수용량, 가변성, 표현력에서 절대우위다. 그래서 기존 폴더폰과 블랙베리가 물리 키 특유의 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아이폰이 그렇게도 혁신적이었던 거고, 지금은 대부분이 그런 폰을 따라서 찍어낸 세상에 살고 있다. 근데 왜 이걸 그냥 네모난 F1-12로 다시 청계천 막듯이 덮어버렸나. 설마 하고 주변 지인에게 물어보니 사진이나 영상 작업하는 사람들은 F1-12 키를 쓸 일이 많단다. 어쩐지. 나처럼 하나의 엔진이나 툴 안에서 프로그램 내부를 건드리는 사람들은 애초에 핫키나 펑션키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끽해야 몇 시간에 한 번 Ruuuuuuun 정도. 굳이 쓴다고 해봐야 comm, opt, shift + 문자나 숫자. 여러모로 내가 타겟이 아닌 제품이다. 그래서 패스.
사실 CPU는 M1이 워낙 효율적이고 발열도 적게 잘 나왔대서 써보고 싶은 거지, 지금 당장 일하는 데 문제는 없다. 물론 CPU 세대교체 직전의 모델이라서 애플 기계답지 않게 중고값은 이미 폭락했고, 탈출도 늦었다. 지금도 싼데 나중에 팔아서는 고철값이나 나오려나 몰라. 이렇게 된 이상 넌 나랑 끝까지 간다. 나중에 필요하면 그냥 하나 더 살 거임. 그땐 서브로 식탁이랑 주방에 놓고 쓰더라도 일단 넌 나랑 끝까지 간다. 데탑이 아예 없이 식탁이든 주방이든 맥북 하나 짱박아놓고 아무데서나 쓰는 게 ㄹㅇ 미쿡갬성인데… 이러다 진짜 양놈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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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