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
훈련소에선 좀 특이한 일이 있었다. 궂은 일을 여러명이 분담하면 오히려 얕게 여러명이 불쾌하니, 깔끔하게 몇 명에게 장기간 텀으로 몰아주는 식으로 로테를 돌렸다. 세탁물 수거, 식당에서 나오는 짬, 화장실의 매우 여러 부분(...)들. 카테고리로 대충 묶었지만, 사실 디테일을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강도라고 보면 된다. 얕더라도 여러명이 불쾌하느니, 차라리 소수의 몇 명이 아예 비위를 포기하고 한주간 살면 된다는 방식.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나도 아직은 철없고 귀하게 자랐던 놈인데.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당연히 혼났다. 교관과 조교가 세트로 들어와서 지랄이다. 그러다 자기들도 어디서 주워들은, 꼰대스러운 명언(?)을 던졌다.
손은, 더러워지면 씻으면 된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 말을 듣고는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앞으로 24시간X7일은 좆됐구나. 뭘 만져도 그냥 씻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남자의 몸은 그냥 그렇다. 어쩌다 세게 부딪쳐도, 넘어져도, 긁혀도 그냥 나아서 아물고 붙으면 그만이고, 더러워져도 씻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예외가 있다.
내 여자는, 지나가다가 바람이 살짝만 세게 볼을 스치고 지나가도 바람을 째려본다. 하물며 빗물이 튀거나 어디 철푸덕 넘어지기라도 하면. 종이에 살짝 긁혀서 무려 피가 살짝이라도 보이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게 '객관적으로' 얼마나 아프고 대단한 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것 때문에 혹시 많이 놀랐으면 어쩌나, 많이 아팠으려나.
그거 옷 어떡해.
괜찮아. 옷이잖아. 빨면 그만이고, 빨아서 안 없어지면 이참에 새로 하나 사면 돼. 어차피 나 옷 너무 안 사서 문제잖아.
내 몸은 필요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딱히 기능에 문제가 없으면 잠시 더러워지거나 긁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근데 내 여자가 잠깐이라도 뭐가 스치거나 지저분한 게 묻는 건 싫다.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좋고 싫음의 문제다.
이 경우엔 좋고 싫음의 문제가 필요와 기능에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