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ld never be me_04
3_ 1~2는 그나마 ‘멀쩡히’ 달릴 때 얘기다. ‘무리한 추월’에는 거기에 더해서 더욱 정신 나간 짓이 필요한 법.
그냥 적당한 직선에서 ‘안전히’ 본인의 평균 순위보다 1-2계단 정도만 올릴 기회를 엿보는 ‘통상적인’ 주행에서 감내해야 할 게 1~2의 내용이다. 하지만 24 랩 중에 15계단을 뛰어넘으려면 1.6 랩마다 무조건 한 대 이상을 추월해야 한다. 이 말은 앞 차에 일단 붙기만 했다면 그게 코너든 직선이든 (= 안전하든 위험하든) 거르고 미룰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럴 때, 드라이버는 위험한 도박을 하게 된다.
‘레코드 라인을 벗어나기’
사실 도박이랑은 개념 자체가 좀 다르다. 도박은 노력이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뽑기의 영역이니까. 저 경우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1~2와 같은 환경에서 본인 신체의 반응과 즉각적인 판단에 맡기는 거다. 도박이라기보다는 ‘무모할지도 모르는 도전’에 가깝다.
레코드 라인은 말 그대로 ‘최고의 기록 측정/경신’에 쓰일만큼 최적화된 경로이다. 그래서 드라이버도 그 경로에서의 주행에 가장 최적화된 누적 경험이 많고, 차도 거기에 맞게 세팅되어 있으며, 팀의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오더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순위를 추월하고 싶은 해밀턴뿐 아니라 모든 드라이버가 가급적 그 레코드 라인으로만 달리고 싶어 한다. 그것은 곧 레코드 라인으로만 달리면 앞 차의 꽁무니만 계속 물고 달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는 피치 못하게 옆으로 대등하게 치고 나가서 앞질러야 한다.
위와 같은 사고의 흐름으로 레코드 라인을 벗어난다는 건, 그 모든 서포트를 포기하고 무지와 위험으로만 가득한 곳에 드라이버 스스로와 차를 던지는 꼴이다. 레코드 라인은 랩타임이 빠른 ‘방향’이라는 것 외에도 엄청난 이점이 있다. F1 레이스카 20대가 ‘평균’ 225km 이상으로 달리면서 계속 바람으로 먼지나 기타 이물질을 밖으로 밀어내서 깨끗하다. 그리고 타이어에서 녹아내린 고무가 울퉁불퉁한 아스팔트를 고르게 채워서 차가 훨씬 덜 흔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녹아서 깔린 고무는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휠의 그립을 꽉 붙들어줘서 옆으로는 덜 미끄러지게, 앞으로는 더 빨리 가도록(동력이 노면에 잘 전달되도록) 해준다. 레코드 라인 바깥은 이것과 정반대이다. 레코드 라인에서 밀려난 먼지와 이물질, 부서진 차에서 나온 파편이 여기저기 막 굴러다닌다. 심하면 타이어를 터뜨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휠이 여길 밟으면 자갈밭을 밟는 거나 다름없기에 그립이 끔찍하게 떨어진다. 미끄러진다는 소리. 그래서 레코드 라인이 아닌 곳으로 추월을 위해서 튀어나가면, 드라이버는 이런 상황에 놓인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 언제쯤 설 수 있을지 미리 알 수 없고, 악셀을 밟아도 -> 어느 정도로 밟아야 엔진에 걸려있는 뒷타이어가 스핀 하지 않고 동력을 적당히 받으면서 굴러갈지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쫄리기 전까지 최대한 참았다가 밟고, 밟은 직후부터 차의 움직임을 보고 그때그때 대처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차의 탄력과 강성, 자세도 바뀌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F1 레이스 카는 보기에 굉장히 단단한 쇳덩어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쇳덩어리도 강성과 탄력이 있을 뿐더러, 다른 부위는 모두 카본 파이버로 되어있어서 굉장히 유연하다. 그래서 코너에 진입해서 원심력과 관성을 받기 시작했다가 -> 코너를 탈출하면서 그 힘을 엔진과 그립이 상쇄하고 뛰쳐나갈 때, 차는 수시로 빨래를 반대로 짜는 모양새 혹은 꽈배기 과자의 모양새처럼 휜다. 드라이버는 이런 느낌을 몸으로 느끼며, 때로는 자세를 바꾸어 하중이동에 대응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컨트롤한다. 흡사 봅슬레이와 같다. 아예 기계적이거나 반대로 아예 공기역학적인 다른 문제들보다 뭔가 애매-하고 별로 안 중요해 보이는데, 완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주조된 차체(샤시)라도, 익숙하지 않은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순간 드라이버의 랩타임이 1초씩 늘어났다가 줄었다가 한다. 1초는 차 두 대가 동시에 나란히 출발했다고 가정했을 때 약 80-100m의 거리 차이다. 레코드 라인을 벗어나면, 노면의 상태와 그립 그리고 트랙에서의 위치 차이 때문에 이 탄성과 강성, 그리고 차의 자세가 기존 레코드 라인에서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드라이버 역시 반은 찍기, 반은 0.02초 내에 응답하기로 버텨야 된다는 것이다. 목숨 거는 거지.
이런 1~3의 과정이 차 한 대를 제낄 때 드라이버가 걸어야 하는 베팅의 양이다. 이 짓을 거의 매 바퀴, 열다섯 번 목숨을 걸었다. 예선 꼴찌에선 적당히 7위까지, 그리고 본선에서 10위 출발이었으면 적당히 3위(포디움) 까지만 올라와도 어느 누구의 기대보다 훌륭한 성과였다. 근데 굳이 마지막 랩까지도 내일이나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달려들어서 한 명이라도 더 제낀 이유가 뭘까. 해밀턴은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자신의 경쟁자인 막스는 무조건 1위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밑의 등수는 의미가 없었다고. 7위, 10위, 14위도 ‘괜찮은’ 등수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건 지는 거니까. 안전하게 7위, 10위, 14위를 하는 것이나, 목숨 걸고 추월하다가 코너에 들이받고 꼴찌를 하는 것이나 어차피 막스를 이기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고. 그래서 어차피 꼴찌가 기댓값의 베이스라면 차라리 0.1퍼센트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에 베팅을 하는 게 당연했다고. 그렇게 해밀턴은 한 주에 예선에서 15 계단 추월, 본선에서 10 계단 추월, 총합 25순위를 추월해서 맨 뒤부터 거꾸로 1위에 바득바득 기어올라왔다. 참으로, 참으로, 미친놈이다.
그 미친 추월쇼가 끝난 직후, 감독은 ’This is how we overcome 25 grid. F**k them all’라고 했다. 그놈이나 그놈이나 ㅋㅋ. 그리고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It’s not over yet’.
…
개머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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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