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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d never be me_15

Neon Fossel 2021. 12. 21. 20:34

다시 C_14로 돌아가서, '모든 물질과 운동은 결국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필연적으로 진행된다'는 걸 역으로 돌리면 엔트로피가 가장 적었을 시점은 빅뱅이거나 혹은 빅뱅 직후의 순간이다. 그런데 빅뱅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의 직관이나 대화가 거의 부정된다. 처음과 나중,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존재론 혹은 논리철학적으로 매우 건조하게만 상상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별로 어렵진 않은데 단순한 그 명제가 우리의 직관과 비슷한 듯 달라서 굉장히 불편하게 걸구친다.

 

흔히 빅뱅을 지금 우주의 모든 구성물질을 한데 다 모아서 '압축해놓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빅뱅의 시작'점'은 말 그대로 '점'이다. 뭔가를 압축해서 뭉쳐놨다고 하면 우리는 3차원 구체의 형태를 가진 매우 작은 입자를 상상한다. 그건 3차원적인 '구체'이지 '점'은 아니다. 2차원적인 선도 아니고, 1차원적인 점은 애초에 면적과 부피가 없다. 그저 위치값, 좌표값만이 존재한다. 물론 좌표와 위치도 엄연히 말하면 2차원이나 3차원을 가정한 상태에서 가능한 거지만. 그래서 빅뱅은 완전한 '없음(무)'에서 '있음(유)'이 생성(창조-다만 지적설계설이나 신적인 존재의 창조설을 굳이 의미하는 건 아닌)된 것이다. 물론 창조되는 그 시점에는 아직 2차원도, 3차원도 없었으니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어딘가'로부터. 그리고 그 '어딘가'는 지금 우리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

 

'그럼 빅뱅 이전엔 뭐가 있었어?' - 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거나 듣게 된다. 사실 이미 그 질문 자체가 틀린 거다. 빅뱅=시작점이기에, 저 질문은 '시작 전엔 뭐가 있었어?'라는 의미가 된다. 간단한 답은 '없다'이거나, 정확한 답은 '빅뱅 이전이라는 시간이나 단계 자체가 없다'쯤 된다. 이런 일상적인 질문에 대한 구조적이고 비일상적인 답이 매칭되는 건, 우린 자꾸만 한 단계 위로 폴더 트리를 이동하듯 '메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상을 보거나 편집할 때 마주하는 '타임라인'으로 이해하면 쉽다. 빅뱅은 그 타임라인의 시작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보다 더 앞으로 돌릴 수도 없거니와, 그 앞은 애초에 아예 아무것도 없다.

 

비슷하지만 구도가 약간 다른 질문도 있다. '그럼 빅뱅의 바깥쪽엔 뭐가 있었을까?, 빅뱅을 둘러싼 그 바깥은 뭐였을까?'라는 질문. 빅뱅은 '있음'의 시작이다. 따라서 빅뱅의 위치에서 빅뱅이라는 사건의 바로 바깥쪽 경계면을 둘러싼 그 나머지는 '있음'의 여집합 = '없음'이므로 없다. [있음]의 바깥쪽에 [없다]는 게 [있다]는 건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