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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휴식 or 두려움

Neon Fossel 2021. 12. 26. 09:36

신나게 게임 얘기를 하고 일어날 때가 다 되었을 즈음이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같이 하자고 꼬신 게임인데 나를 제외한 모두는 신나게 치고 나가지만 정작 나는 요즘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 접속이나 하면 다행이다. 2할 정도는 바쁘고 피곤해서 그렇고, 사실 8할은 현타 때문이다. 굳이 (무려 나 때문에 시작해서) 재밌게 하고 있다는 사람들한테 재 뿌리기 싫어서 현타라는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바쁘고 피곤하다는 건 거의 핑계에 가깝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할 이유와 재미가 생기면 잠을 줄여가면서라도 어지간해서는(정말 노답으로 바쁠 가능성도 있기에) 뭐든 할 수 있다. 다만 그만큼이 아닐 뿐이다. 이미 수많은 다른 대상들에서 겪은 현상. 게임의 서사나 시스템이 크게 잘못된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양 자체에 질려버렸다. 순전히 양적 치사량. 처음엔 오히려 나 혼자 한 달 정도 진도를 앞서가다가 얘네를 기다려줬었는데, 지금은 나보다도 하드하게 하고, 파밍이나 컨텐츠도 나를 찔끔찔끔 앞서가다 못해 내가 못 알아듣는 얘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하자는 게임을 이렇게나 재미를 많이 붙이고 같이 하다니 뿌듯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얘네 너무 게임 얘기만 해...ㅋㅋㅋㅋ). 그러다 맥락이랑은 상관없이 대뜸 이런 얘기를 하게 됐다.

 

"난 요즘 잘 때는 특히나 더 어떤 자극도 안 받으려고 하거나, 생각을 안 하려고 해."

 

이 역시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말이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은 아이패드를 벽에 기대 놓고 어깨와 척추 건강을 야금야금 망치면서 돌아누워서는 유튜브와 위키질에 쩔다가 기절하는 게 다반사니까(간혹 실시간으로 비난과 잔소리를 듣더라도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라도 갖고 있긴 하다. 내 주변기기의 건강한 관리를 위해 확실하게 휴동 하기 시작한 것처럼, 내 몸과 마음도 쉴 땐 확실하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말자. 비록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저는 오히려 그런 정적이 오면 무서워요. 자꾸 이런저런 잡념이 많아져서."

정적이 오히려 무섭다. 언젠가 나도 썼던 말, 했던 생각인 것 같다. 어둠과 정적에 질식할 것만 같다는 그런 느낌. 그래서 이놈은 요즘 오히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이랑 게임 양쪽 모두에 하드하게 매달리는 건가. 비슷한 경우는 나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많이 봤다.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거나 잊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에 몰두하는 현상. 그게 취미든, 일이든 뭐가 됐든. 나도 한동안 그랬고, 요즘도 번아웃을 슬슬 걱정해야 될 정도로 게걸스럽게(...) 일하고 있긴 하다. 근데 그게 애초에 무엇 때문이었고, 요즘은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정적이 무섭다 - 라는 거

 

요즘 나의 정적엔 무슨 생각이 들었었나, 그리고 나는 그 생각들을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걸까. 아니면 그냥 무서울 만큼 별로인 잡념이 들어도 그냥 그 데미지 자체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서 무뎌진 건가. 없는 건가, 무뎌진 건가. 무뎌진다는 건, 무뎌져서 안 아프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뎌질만큼 매번 꼬박꼬박 아프게 찔러들어왔다는 것이기도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