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오스, 고오스 빵?
우울증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이다. 우울증을 낳는 것은 병적으로 과장된 과도한 자기 관계이다. 나르시시즘적 우울증의 주체는 자기 자신에 의해 소진되고 기력이 꺾여버린 상태이다. 그는 세계를 상실하고 타자에게 버림받은 자이다. 에로스와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는 무엇보다도 성공을 겨냥한다. 그에게 성공은 타자를 통한 자기 확인을 가져다준다. 이때 타자는 타자성을 빼앗긴 채 주체의 에고를 확인해주는 거울로 전락한다. 이러한 인정의 논리는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를 자신의 에고 속에 더 깊이 파묻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성공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한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 속으로 침몰하고 그 속에서 익사한다. 반면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인 자기 부정, 자기 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의 주체는 특별한 약화의 과정 속에 붙들리지만, 이러한 약화에는 강하다는 감정이 수반된다. 물론 이 감정은 주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타자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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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
나와는 상관없는 얘긴줄 알았다. 어차피 일에 쓰는 맥북 정도의 기기가 아닌 이상, 성능 벤치마크 점수까지 보고 비교하면서 살 일도 잘 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비교’라는걸 할 대상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새 아이폰을 ‘언제’ 살지만 가끔 신경쓰면 되었다.
근데 이거, 핀트가 이상하다. 기기가 자연스럽게 특정 상태에 도달했을 때 발열제어가 걸리는 게 아니라, 구동하는 앱을 블랙리스트 / 화이트리스트 룩업 방식으로 걸러서 처음부터 직접 성능을 반타작내놓고 시작한다고…? 이거 북한이나 러시아, 중국처럼 문명적으로 후진 나라들이 모바일 플랫폼 혹은 언론 검열할때나 쓰는 방식 아닌가.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갤럭시 생태계 기준으로 나처럼 스마트폰을 라이트하게 쓰는 사람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말 스마트폰의 퍼포먼스를 끝까지 쥐어짜내야하는 특정 직업(디자인-아트계열; 근데 정작 여기도 프로들은 아예 다른 장비를 쓰긴 한다만, 영업, 기타 이동이 잦은 동시에 데이터 입출력이 많은 몇몇 직업) 혹은 모바일 게임을 정말 모바일로 즐겨버리는 헤비 폰겜러들의 문제겠지. 그도 아니면 그냥 자기가 실제로 쓰는지, 혹은 필요한지의 여부와 별개로 애플-삼성의 테크경쟁 자체를 즐기는 테크러들 정도만 길길이 날뛰겠군.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 성능 반타작의 대상 앱중에는 카메라, 카톡, 인스타, 페북, 구글, 심지어 삼성 기본 앱도 있다. 삼성 기본앱은 뭐야. 너희가 너희 스스로를 너프한다는 거냐. 저게 만약 이번 GOS 이슈에서 화제가 되었던 ’원신’ 같은 게임에서만 그런다면 ‘난 폰겜 안하는뎅 ㅅㄱ’ 이러고 말면 될 문제이다. 그런데 아무리 폰겜은 안해도 카톡도 안하고, 인스타랑 페북도 안하고, 구글이나 샘숭 인터넷으로 웹서핑도 안 하진 않을 거 아냐. 그것도 안 하는 폰은 2G폰 밖에 없다. 그러니까 헤비-라이트 유저를 막론하고 ‘전반적인 모든 사용경험’에서 성능이 반타작이라는 소리다.
벤치마크로부터 중국보다도 더 많은 삼성 모델이 무더기로 퇴출당하면서, 여태까지 중국에게만 덧씌워왔던 ‘이상하고 웃긴 기계 만드는 애들’이라는 오명까지도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심지어 갤럭시 S10 모델부터였다고 하니, 그게 언제야. ㅗㅜㅑ. 벤치마크 퇴출은 아예 최하위로 순위가 밀리는 것보다 훨씬 더 쪽팔린 일이다. ‘그딴식으로 장난질 칠 거라면, 아예 평가받을 자격도, 리그에 낄 자격 자체도 박탈해버리겠다’는 것. Out of 안중. 그와중에 성능제한이 걸렸을 때 기준으로 측정된 퍼포먼스는 가관이었다. 갤럭시의 최신작 S22가 ‘하필’ 2016-17시즌에 나온, 내가 쓰는 ‘아이폰 X’ 보다도 구리다는 것. 한두 세대 전 모델보다 구려도 좀 많이 부끄러운데, 5년 전 폰보다 후진 건, 진짜 동네 창피하지 않나.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SBS 산하의 테크 유튜브 채널 ‘오목교 전자상가’에 출연한 삼성 직원의 한마디였다. 이미 몇년 전부터 제기된 GOS 이슈에 대해 정면으로 묻자,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안전에 관한 문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였다. 그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삼성 언팩행사에서 삼성은 S22의 ‘하드웨어적인 발열제어 성능 강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소프트웨어로 강제해야될만큼 하드웨어로는 발열제어가 안 된다는 것이거나 / 하드웨어로 발열제어 성능이 강화됐으면 굳이 소프트웨어로는 그렇게 심하게 제어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이 두 이벤트와 메시지에서 드러난다. 어느 한쪽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거짓은 발열제어 성능이 강화됐다는 게 거짓으로 드러났다.
안전을 위해서 성능을 작살내야만 한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제 성능을 굳이 내려고 한다면 안전하지 않은, 위험한 제품’이라는 소리다. 성능이 구리든, 위험하든 어느쪽이든 허위/과장 광고에 의한 기만 혹은 사기라는 게 명백하다. 삼성측에서는 기기의 ‘최적화와 안정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그 성능 떡락 대상 앱들이 있는 블랙리스트에 하필 ‘벤치마크 앱만’ 빠져있는지, 즉 ‘벤치마크를 돌릴때는 피크 성능이 나오면서 자연스레 발열도 엄청 심해지는데 그건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검증 가능하지 않은 모든 의도의 문제를 삭제하고 봐도, 결국 벤치마크 혹은 본인들의 자체 광고에 제시된 성능과 실제 사용자 경험에서의 성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건조한 사실만이 남는다. 거짓말의 가장 우습고도 냉혹한 점은, 거짓을 덮기 위한 그들 스스로의 말이 곧 그 거짓을 반박하고 드러내는 결정적인 단서이자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얄팍한 수작이 통할 거라고,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이쯤 써놓고 근 한 달을 묵혀놓은 상태에서 얼마전 한백이형이랑 통화를 했다. 역시나 비슷한 반응이다. 한국 밖에서 한국은 사실상 ‘삼성의 나라’라고도 알려져있는데, 정말 동네 창피해서 어떡하냐고. 이번에야 알게된 바로, 한백이형의 매형, 곧 주원누나의 오빠가 퀄컴 칩셋 디자이너로 미국에서 일하고 있단다(…). 그래서 이번 이슈때 몇번 저녁식사겸 반주를 하면서 얘기해볼 기회가 있었다고.
문제를 나눠서 이해하자면 이렇다. 퀄컴 칩셋의 설계가 문제인가, 그것을 생산하는 삼성의 파운드리 문제인가, 그도 아니면 삼성이 그 칩셋과 더불어 휴대폰 완성품을 조립하는 과정의 발열제어 및 최적화의 문제인가.
퀄컴 칩셋 디자이너의 견해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팔이 안으로 굽고 꼬리자르기를 할테니 곧이 곧대로 들을 순 없지만, 우선 퀄컴 칩셋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퀄컴 칩셋이 들어가는 다른 제품군에서는 이와 비슷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애플의 M1 칩셋보다 회로 집적도나 퍼포먼스가 약간 딸린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다음은 삼성 파운드리의 문제. 이건 확실히 가능성이 높다. 대만의 TSMC의 수율은 60-70퍼센트 대, 삼성 반도체의 수율은 (이제 이것조차도 믿을 수 없으나) 사실상 40퍼센트 대로 예상된다. 반도체를 10개 찍어내면 TSMC가 6-7개, 삼성은 4개를 정상 퀄리티의 제품으로 건져낼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수율이 떨어지는 공정은 결국 같은 ‘정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제품을 찍어내야 한다. 원가가 올라간다는 얘기. 그리고 그 올라간 원가 때문에 결국 최종 완성품 조립단계에서 어떤 스펙을 양보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하게 양보한 그 스펙은 바로 발열제어장치였다. 언팩행사 이전부터도 공개된 내부 설계를 보고 이미 나왔던 말이다. 열을 방출하는 히트 파이프가 S21에 비해서 절반 밖에 안 되는데, 오히려 발열제어 성능이 좋아졌다고?(…), 그런 의문에 삼성은 언팩행사에서 우수한 첨단소재로 극복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상은 S22가 본인들의 전작인 S21에 비해 오히려 발열은 심하고 성능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 발열이라도 잡으려고 골육지책으로 고안한 것이 GOS 앱을 통한 극단적인 성능 제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수율이 떨어져서 생산품 대비 정상품의 비중이 현저히 낮으니, QC 기준을 낮춰서 정상품=양품이 아니더라도 출시되게 했으며, 그래서 그 양품이 아닌, 즉 불량품의 최소한에 맞춘 성능 제한을 하다보니 GOS의 성능 제한이 이전 모델들보다도 훨씬 심하게 걸린다는 것. 제발 그정도까진 아니었으면 좋겠으나, 요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 나라 안팎으로 하도 흔하게 일어나다보니. 아, GOS 도 포함.
그리고 애플 유저인 내 입장에서도 애플의 경쟁업체가 경쟁할만한 상태가 못 된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애플이라고 해서 뭐 그렇게 도덕적이거나, 항상 혁신적인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경쟁자가 없어지는 순간,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나태해지고, 최악으로 창렬하게 가격을 밀어올려서 쥐어짠다. 독점의 ‘자연스러운’ 폐해. 경제학원론 초중반에 나오는 기본이다.
나는 진심으로 파고들고 싸워대는 테크충은 못 된다. 그러기엔 관심이 쓸데없이 여기저기 다른데에 많기도 하고. 그냥 가끔 굳이 사진 않을 거지만 ‘요즘 이런 것도 나왔구나’ 하는 용도나 대리소비 느낌으로 눈팅이나 하는 정도. 내가 정작 필요하거나 쓰지도 않을 기계와 기술, 회사들에 그렇게 열을 올리면서 몰입하고 싸워대는 걸 보면, ‘저 에너지를 다른데 쓰면 얼마나 생산적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텔 vs AMD, 브라우저 전쟁 등은 삼성 vs 애플 뺨치게 뜨거운 전장이더라.
그런데 이번 문제는 그 거리가 좀 가깝게 느껴졌다. 내 주변 사람들이 쓰는 기계이자, 한국 주식시장 시총 절반 이상을 쥐락펴락하는 사실상 한국 경제 그 자체인 회사. 때때로 나의 국적에 좋든 싫든 연결되거나 연상되는 회사. 그런 회사가 밑장빼기로 확실하게 사기를 쳤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장난감 폰들 만도 못하게 무시당했다. 세계 최고라던가, ‘착하고 정의롭기까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제발
같은 국적의 국민이자 기업이라는 게
최소한 쪽팔리지는 않게
그렇게 좀
잘 합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