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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페스트

Neon Fossel 2022. 6. 19. 00:49

<멜랑콜리아>의 묵시록적 하늘은 블랑쇼Maurice Blanchot 가 유년 시절의 원초적 장면으로서 경험한 저 텅 빈 하늘을 닮아 있다. 블랑쇼에게 그 하늘은 동일자를 갑자기 중단시킴으로써 완전히 다른 자의 아토피아를 계시해준다. "나는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된 아이였다. 나는 어느 빈 집 안에 있었다. 닫혀 있는 창문 근처에서 나는 밖을 내다보았는데----갑자기, 그보다 더 갑작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을 듯했다----마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다. 무한자를 향해 무한히 열릴 듯했고, 이 압도적인 열림의 순간은 무한자를, 하지만 무한히 공허한 무한자를 인정하라고 내게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하늘의 절대적 공허, 보이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하늘---신의 공허함. 그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것은 신성한 것에 대한 단순한 암시를 훨씬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그 하늘을 본 충격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으므로, 아이의 눈에는 일순간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리고 거짓 없이 덧붙여 말하자면 그것이 아이의 마지막 눈물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터어 빈 하늘의 무한성에 매혹된다.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아이는 내면을 잃고 경계를 벗어나 깨끗이 비워진 상태로 아토포스적 외부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파국적 사건, 외부의 침입, 완전히 다른 자의 침입은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사건Ent-Eignis, 자신의 지양이자 비움, 즉 죽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늘의 공허. 유예된 죽음: 재앙." 그러나 이 재앙은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부재의 행복을 안겨준다. 여기에 바로 재앙의 변증법이 있다. 재앙의 변증법은 영화 <멜랑콜리아>의 구성 원리로도 작동한다. 파국적 재난은 뜻하지 않게 구원으로 역전된다.


오미크론 유행 정점을 찍은 시점부터 남긴 문장들이 나이테처럼 쌓였다. 게으름 때문에 글로 바꿔쓰는게 늦었을 뿐 의도한 건 아니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써있지 않아도 숫자만 보고도 대충 언제쯤인지 가늠이 된다.


100명대에도 놀라던 가슴은 50-60만명이 넘어도 이제 움찔도 안한다.

그러다 4차 접종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지나가더니 일상 회복 단계로 접어든단다.

그러다 다시 스멀스멀 3천을 찍었다.

그러더니 다시 1만명 선까지 치고올라온다.

전파력은 더욱 강하게, 하지만 치명율은 낮게 바이러스는 변해왔다. 정확히는 여러 종 중에 그런 애들만 남고 있다.

아직 좀 거슬리게 널뛰기하는 확진자수에도 불구하고 이젠 대부분의 경계가 느슨해지며 슬슬 잊혀져가고 있긴 하다. 언제쯤일까.


마스크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부 정책보다도 한 단계 정도 더 보수적인 편이다. 길바닥에서 나 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벗을 정도가 될 때까지는 그냥 하던대로 쭉 쓸 참이다. 아쉽게도 이미 적응이 되어서 그다지 불편한 걸 잘 모르게 되기도 했고.

그냥 빨리 걸렸다가 나아서 면역자가 되자는 씬박하고 저돌적인 얘기도 몇달 전에 들었었다. 어차피 낮은 확률의 부작용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백신을 맞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법이지만, 걸려도 죽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노력을 한 백신에 배팅하는 것과, 걸렸다가 운이 없으면 그 0.4몇퍼센트 쯤으로 죽을수도 있는 바이러스에 일부러 노출하는 건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의심증상이 있거나 확진이 되면 그냥 겸사겸사 쉬어가는셈 치는 분위기도 종종 있었다. 코로나로 격리된채 재택을 하거나 아예 일을 못 하면서 뒤로 밀리는 업무의 양은 어찌보면 평소에 업무에 실질적으로 집중하지 못한채 버려지는 시간과 비슷할수도 있다. 근데 그냥 농땡이치는 건 내가 통제가능한 상황에서, 그럴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때 선택적으로 그러는 거고. 반대로 냅다 의심증상이 있거나 걸려버려서 일을 못 하는 경우는 계획되지 않은 지연이니까 자칫 커리어에 귀찮거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수도 있다.

아무리 마스크에 적응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래도 당연히 마스크가 있는 삶 보다는 없는 게 백번 낫다. 마스크 뿐만 아니라, 아직도 코로나 때문에 느슨하게라도 남아있는 방역조치들이 나 역시도 변태가 아닌이상 그리 반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고.

집합시설류의 소상공인들이 맞은 직격탄도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코로나 초창기에 걸렸던 일반 직장인들도 만만찮게 난감했겠다 싶다. 당시엔 지금보다 치명률과 공포는 높았고, 그래서 확진 되었다가 나아도 다시 복직을 하지 못하거나 권고사직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단다. 그런데 승진이나 이직, 재취업 등 중요한 기로에서 하필 미끄러지는 경우는 더욱더 치명적이었을 거고.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택배 송장에 찍히는 이름이나 가끔 마주치는 택배기사들은 거의 고정이었는데, 요즘 새로 보이는 얼굴이나 이름들이 늘어난 게 그냥 예사롭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무려 언론에서 기획기사로 다루어졌을만큼, 코로나 방역조치로부터 일상회복으로 나아가며 벌어지는 촌극도 재밌었다. 평소에 재택 자체가 별로 없던 직종에서는 막상 재택으로도 해보니 좀 답답해도 일이 다 돌아가는걸 경험해봤으면서도 회사가 굳이 다시 물리적 출근으로 돌리는 이유를 이해할수 없다며 답답해들 한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또한 출근뿐만 아니라 '회식지옥'이 다시 시작됐다는 얘기도 뉴스와 지인을 통해서 여러번 들었다. 나야 애초에 코로나가 있든 없든 회식은 별로 스트레스가 아닌 직업이라 그렇다 치는데, 그렇다고 그쪽 문화를 모르거나 경험 안 해본 게 아니라서 웃프고 안쓰럽긴 하다.

다들 너무 불행하지는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