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2. 6. 19. 00:50

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를 동원하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생산성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해야 함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으로 대체된다. 착취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를 부르짖는 것이 채찍이나 명령보다 더 효과적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명령하고 착취하는 타자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체는 자기 자신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착취자는 피착취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언젠가 봤던 강연 영상에 대한 조각도 남기자면 이렇다. 코로나 시대의 연애와 성, 결혼.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불편하거나 거의 불가능하니, 자꾸 집이나 숙박업소로 박혀서 섹스하고 뒹굴거리는 단계가 빨라지고, 그대로 거기에 매몰되어 연애의 다른 면이 스킵되는 현상. 나도 코로나 이후 겪어온 몇몇 경험들에서 비슷하게 느낀 지점들이 있었다. 섹스하고 집이나 방에서 뒹구는 시퀀스도 당연히 연애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게 연애의 어느 시점에 배치되는지는 케바케이고, 그게 좋게든 나쁘게든 어떻게 기능하는지도 마찬가지이다. 

뒹굴이 앞단에 빠르게 올 때의 장점은 당연하게도 속궁합, 잠버릇, 생활습관, 기타 신체적인 여러 특이사항들이 얼마나 맞는지 일찌감치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케바케로 3개월, 6개월, 1년 이상이 지나서야 뒹굴어봤는데 안맞는 경우, 안타깝게도 앞단의 그 기간이 결과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롯이 날아가는 거니까. 반대로 단점은 당연히 연애가 뒹구는것에 완전히 매몰돼서, 섹스하고 뒹구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의 컨텐츠가 굉장히 빈약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노는 컨텐츠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세계를 구축했고, 어떤 세계에 살던 인간인지 탐색하는 범위가 확 줄어서 정보의 양이 매우 제한적인 게 문제다. 날카로운 판단만을 위한 정보의 접점과 양이 부족한 것을 넘어서, 유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역시나 접점이 그다지 넓고 다양할 수 없기 때문에 끈끈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무리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라 해도(나처럼 ㄷㄷ) 그 머릿속과 세계가 섹스만으로 이루어진 짐승은 별로 없다. 그런데 사람도 동물이기도 한지라, 그렇게 특수하고 제한된 환경에 놓이면 성욕이라는 본능이 구미가 당기는 것도 있을 뿐더러(어차피 할 수 있는 다른 게 딱히 없다면), 굳이 성욕뿐만 아니라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면 당장 말초적인 자극은 크면서 비용이 적은 것을 좇는 '게으른 상태'로 회귀한다. 영화 <워 머신>(2017)에서 미군 장군 역을 연기했던 브래드 피트가 작중에 다소 꼰대적인 투로 비슷하게 일축했던 대사가 있다.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면 입으로 뭘 집어넣는 것과 아래 똘똘이를 가지고 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일명 '먹고, 자고, 하고'. 예전에 이런 제목으로 된 노래를 추천받은 기억이 나는데.

섹스도, '먹고자고하고'도, 싫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섹스를 제외한 게 중요한 그만큼 똑같이 섹스도 중요하다. 오히려 가끔은 그렇게 서로에게 완전히 집중한채로 흠뻑 취하듯 푹 빠져서 먹고 자고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다만 다른 것도 할 수 있는데 선택적으로 먹고자고하고 만 하는 것과, 그것밖에 할 게 없이 제한된 환경은 좀 다르다. 그런데 섹스라는 경험은 그것 때문에 걸러지지 않았을 경우엔 다른 어떤 계기보다 관계에 굉장한 가속을 붙인다. 그래서 오히려 자면서 연애를 시작했다가 그게 얼마 안 가서, 혹은 결혼까지 쾌속으로 진행됐다가도 뒤늦게 결정을 재고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 솔루션 비슷한 결론은 결국 그럴수록 나머지 부분들을 알아갈 노력을 기존의 연애와 결혼에 비해 백방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 다소 뻔한 것이었다.

나는 연애를 자고 시작하든,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 자든 별로 상관없다. 그냥 각각의 장단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성욕이 매우 왕성하긴 해도, 섹스를 빨리 안 하면 답답해서 못 만나는 타입은 아니라서. 너무 일찍 섹스에 도달하면 여자들은 진도를 다 털려서 남자가 흥미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동물적으로, 동물의 심리 측면에서는 일견 일리있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동물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난 오히려 몸을 섞고, 작든 크든 미래에 대한 약속이 한둘 쌓일수록 더욱 확신을 갖고 몰입하는 편이다. 간혹 무슨 20대 초반 애들도 아니고 섹스를 보상이나 무기삼아 유치하게 강아지 훈련시키듯 하는 여자들을 꽤 나이먹고도 만난적이 더러 있는데, 그런 경우는 좀 어이가 없고 상대하기에 웃겨서 기가 찼었다. 그래서 그런 경우엔 빠르게 능지 높여서 쫑을 낸다. 그냥 각각의 상황에 맞게 더 필요한 걸 찾아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애 내에서 1인칭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할 게 아니라, 때때로 내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도 메타적으로 한 레벨 위(혹은 밖)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었다.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노력중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