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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쫌 안한다고

Neon Fossel 2022. 9. 20. 07:40

 

채무의 탕감도, 보상도 모두 타자를 전제한다. 따라서 타자와의 유대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보상의 위기와 채무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초월적 조건을 이룬다. 이러한 위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널리 퍼져 있는 견해(예컨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견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종교일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죄(채무)와 죄사함(채무 면제)의 매커니즘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죄(채무)를 만들기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에는 속죄의 가능성, 채무자를 채무에서 해방시켜줄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속죄할 수 없다는 것은 성과주체를 우울증에 빠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소진증후군과 더불어 할 수 있음이 초래하는 구제할 수 없는 좌절이며, 다시 말해 심리적 파산 상태를 드러내는 질병이다. 파산Insolvenz이란 말 그대로 채무 상환solvere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인형이가 JTBC 뉴스 인터뷰를 따였단다. 너 도대체 뭐하고 다니길래 이제 그런데도 나오냐고 캐물었다. 그냥 업계인들만 보는 신문의 짧은 칼럼을 자기네 팀에서 맡아서 돌려쓰고 있는데, 기자가 그걸 보고 연락한 것 같다고 했다.

 

2-3년 전쯤, 그때도 물론 좀 다른 성격의 기사로 뉴스에 종종 잘 나오긴 하던 쪽이었지만 돈까지 많이 주고 출세까지 보장된 다른 곳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그런 회사를 걷어차더니 연봉을 거꾸로 내려가며 공익사건에 무료변론을 해주는 지금 회사로 옮긴 녀석이었다. 그때 한번 우스갯소리로 물었었다. '어째 하는짓이 어떤 대통령 젊을 때랑 와꾸가 비슷한데, 비례대표라도 받으려고 그러냐.'

 

썼다는 글을 대충 보니 이런 거였다. 정황상 개인이 상업용 폰트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폰트 저작권자(혹은 저작권을 소유한 회사)가 그걸 몇년쯤 묵히다가 나중에 갑자기 발목잡는식으로 뒤통수쳐서 배상을 뜯어내는 판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가 폰트를 사용할 당시에는 상업용 폰트가 아니었거나, 상업용이어도 저작권이나 이용범위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거나, 그 개인이 그닥 상업 목적으로 쓰지도 않았다던가, 설령 상업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도 그로 인한 이익이 굉장히 적거나 거의 없는 경우에도 기계적으로 저작권자의 손을 무조건 들어주는 결과가 기존에는 많았다고. 그러다 최근 그것을 뒤집는 판례가 나왔고, 그것을 근거로 삼아 '저작물에 대한 권리의 보호도 중요하지만, 그 권리가 공격적이며 악의적으로 사용될 때, 법이 반대편의 약자를 보호할만한 최소한의 [실질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뻔한 대답이 올 걸 알면서도 다시 묻게 됐다.

 

, 정치 하려는 거 맞네. 다음 비례대표 시즌이 언제였지? ㅋㅋ

 

그랬더니 자기처럼 물러터지고 꽉 막힌 닝겐은 정치를 하고 싶어도 잘 하지 못할 것이며, 전혀 하고 싶지도 않다고 극구 손사레를 친다. 그러다 갑자기 요상한 얘기를 시작한다.

 

자기 회사에 권석천이라는 아저씨가 고문으로 있는데, 글쟁이란다. 본래 중앙일보 데스크에 있다가, 손석희한테 이끌려 JTBC로 갔었고, 그러다 다시 중앙일보로 돌아왔더니 거기서 다시 글을 쓰는 게 너무 갑갑해서 인형이네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피양 비슷하게 왔다는. 글을 굉장히 힘들게 쓰는데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의 롤모델같은 아저씨라고.

 

저번에 인형이가 그 아저씨와 술먹다 듣기로(이게 이제 회식이라는 거겠지 낄낄) 현재 민주당 의원인 이탄희가 아직 정치를 하기 전에 그 아저씨와 아는 사이였단다. 그리고 둘은 우리와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고. '정치 할 거지? - 안 한다니까 진짜'

 

, 굳이 그런 불량한 예를 드는 이유는 뭐냐. 

  지금은 안 한다고 말하지만, 언젠가는 하게 될 거라는 걸 암시하는거?

, 아어 안 한다고

, ㅇㅋ;

 

얘기를 들은지 한참이 지나서 얼마 전에 권석천의 글을 접했다. 최근 인형이네 팀이 칼럼을 쓰는 그 업계 신문에 다른 칼럼을 혼자 연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근데 그건 너무 행복즐겜글쓰기였다. 눈치보느라 같은 글을 세 가지 버전으로 쓰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던 중앙일보 논설위원 시절 글을 일부러 찾아봤다. 작두타기보다도 더 아슬아슬하게 글이 쓰여있다. 아재 고생 좀 하셨겠네여.

 

보기 드물게 차가운 머리에 뜨뜻한 심장을 가진 아저씨였다.

 

'진보는 까도 내가 깐다. 이미 또다른 기득권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차라리 겸허하게 인정해라. 그리고 그 기득권으로서의 힘을, 썩은 떡을 나누는 데 쓰지 말고 똑바로 해라.'

'법률가가 마치 검투사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법이면 삶의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법은 최후의, 최소한의 소명과 판단이라는 수단이자 과정이어야한다.'

 

뭐 대략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얘기를 뜨끈하고 날카롭게 하는 아저씨다. 흥미롭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61075?utm#home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179537&utm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180661&u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