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n Fossel 2022. 10. 26. 03:15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의 관계다. ‘할 수 있을 수 없음Nicht-Konnen-Konnen’이 에로스에 핵심적인 부정 조동사다. 다르다는 것의 부정성, 즉 할 수 있음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잇는 타자의 아토피아가 에로스적 경험의 본질적 성분을 이룬다. “타자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질성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이질성을 절대적으로 원초적인 에로스의 관계 속에서, 즉 할 수 있음으로 번영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찾으려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음의 절대화는 바로 타자를 파괴한다.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는 일종의 실패로 여겨진다.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에로스의 이러한 관계를 실패로 규정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답은 그렇다이다. 만약 우리가 흔히 에로스의 묘사에 사용되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에로스적인 것을 ‘붙잡다’ ‘가지다’ ‘알다’와 같은ㅇ 말로 규정하려 한다면 말이다. 에로스 속에 그런 것은 전혀 없다. 혹은 에로스는 그 모든 것의 실패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붙잡고 알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다. ‘가지다’ ‘알다’ ‘붙잡다’는 모두 할 수 있음의 동의어다.”


코로나가 왔다.

몇몇 꿀빠는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물경제에서 소비가, 즉 수요가 강제로 작살났다. 그리고 결국 그 수요자로부터 돈을 버는 개인과 법인사업자의 이익 역시 줄었고, 대부분 그들에게 고용되었거나 다양한 형태로 관계된 수요자들의 구매력도 다시 내려갔다. 거칠게 치환한 단계의 양 끝을 이어붙이면 ‘수요가 줄어서 수요가 줄어든다’는 다소 기괴한 문장이 된다.

and so on.

코로나라는 뜬금포에 직격을 맞아버린 각국 정부는 저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부턴가 개입해서 끊어야 했다(필요할 때 그런 역할을 똑바로 하라고 각 개인이 무력과 재산의 일부를 떼다 준 거니까).

그리고, 돈을 찍어내서 뿌렸다.

하지만 나가서 쓰질 못하니 실물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 돈이 소비를 통해 돌고 돌아 다시 소득이 되어야했지만, 일단 소비 자체를 할 수가 없다는 극악한 상황 탓에 그 순환을 어거지로 돌리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동맥경화처럼 꽉 막혀버린 그 사이클의 단계를 건너뛰어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직접 돈을 꽂았다. 그래도 역시나 실물경제 기준으로는 돈을 쓰는 사람도, 돈을 버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들고있는 돈이라도 흔해지자 돈의 가치인 이자율(대출, 예금금리 모두)은 0%에 근접했고, 그때까진 아직 낮긴 했던 물가상승률이지만 그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대에 진입했다.

이자율이 3%라는 건, 맡기고 일정 기간(주로 연단위)동안 남이 내 돈을 대신 굴린 사용료를 내가 '받는'거다. 반대로 그 이자율이 -3%라는 건, 마치 물품보관함이나 금고 이용료를 내듯, 돈을 '내고' 돈을 맡기는 거다. 쉽게 말해 돈을 돈인 상태로 두면, 그걸 누구에게 맡겨서 돌리든(예금, 적금) 무조건 손해라는 말이다. 아주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금리의 시그널.

넘치게 찍어내서 시장에 들이부은 돈이 갈데가 없으니 진짜로 흘러넘쳤다. 그래서 그 돈들은 돈이 아닌 어떤 것, 즉 자산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눈먼 경로로 흘러들어갔다. 일단 어떤 식으로라도, 어떤 자산으로라도 변신해야 한다. 돈 그 자체로 남는 순간 매시간 매 초마다 앉은 채로 상대적인 벼락거지가 되는 거다.

신기했다.

운 좋은 사람이나 먹고사는 게 별다르지 않은 정도고, 그게 아닌 다수는 먹고살기도 빡빡했는데도 부동산, 주식, 코인은 미친듯이 올랐다. 직전만큼은 풍요롭게 못 먹고 못 입고 못 써도 빚내서 부동산이랑 주식, 코인은 샀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가난해진 다수가 빚까지 내서 자산 가격을 너도나도 밀어 올리는 것.

별일 없는 시절이었으면 그게 다 투기수요라고 했겠지만(물론 지금 투기수요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30의 '부동산'에 한정하면 실수요도 적잖게 있었다. 한발 늦을수록 미친듯이 치솟는 집값 때문에 주택 매입이라도 먼저 당겨서 하거나, 아니면 결혼 자체를 당겨버렸다는 사람들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또는 앞서 언급한 투기에 연봉의 절반 혹은 몇배가 넘는 돈을 박았다가 1/8토막, 1/10 토막난 사례가 심심찮게 들리고 보였다. 

어떤 세상에서는 돈을 돈으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런 투기를 하자니 정보력과 담력이 없어서 너무나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Yolo와 Flex라며 '어차피 놔두면 본전도 못 치고 썩을 거, 다 써버리자’는 호기로운 발작증세를 보였다. 예전 같으면 좀 부유한 평균인 대기업 기준으로도(사실 대한민국 인구 10% 이하의 일상이 평균이라고 인식되는 건 인지부조화일 가능성이 다분하나) 명퇴 직전의 차부장급 아저씨들이 끌었을 정도의 국산차 최종 라인이 사회에 진출한 지 아직 만 10년이 되지도 않은 우리 나이대에도 흔해졌다. 예전 같으면 아저씨들이 회사 돈으로나 간간히 치던 골프가 우리 나이대에도 자기 돈을 장비에 몇백, 한 번 라운딩에 몇십씩 박으면서 흔해졌다. 그게 결혼을 앞뒀거나, 결혼 직후의 몇몇으로부터도 들렸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불황 때 오히려 립스틱과 언더웨어의 소비가 증가한다’는 경제학의 오래된 유머 비슷한 불문율이 있다(무려 통계적으로도 사실이긴 하다). 현실 혹은 가상의 재난이나 전쟁 등 개인의 생명이나 자유가 극단적으로 제한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것은 섹스였다. 말하는 순서와 방향에 따라 좀 다르게 읽히긴 하지만, 역방향으로 먼저 적자면 배부르고 등 따시고 머리에 든 게 많아질수록 출산율은 떨어진다. 자손들의 미래에 베팅하자고 희생하기엔 당사자의 현재가 더 가치 있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소득수준과 보건 및 교육, 사회적/정치적 안정성 등의 여건이 열악할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출산율이 몇 배나 높다. 낳으면 못 입고 못 먹고 못 배울 가능성이 크지만 그럴수록 더 낳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인간의 발작증세는 소비와 섹스인가. '어쩌면'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주장한 허술하고 거친 메세지가 모두 다 뻘소리는 아니었고 부분적으로는 맞는 걸 수도 있다니 흥미롭다. ’현실이 시궁창(혹은 당장 끝장날 위기)이면 -> 난 이미 글렀어 -> 그러니 유전적으로 다음턴(?)을 보자’ 뭐 이런 건가. 인류는 종족 보존을 위한 행동지침의 위계가 본능이라는 형태로 굉장히 잘 코딩된 종일 수도 있겠다.

이즈음 중국과 호주, 나아가 중국과 거의 모든 서방과의 관계가 파탄났다. 중국은 서방이 경기불황과 자산 가격 상승(그로 인한 국가적 재정건전성 악화)에 허우적거릴 그때야말로 목을 조르고 막타를 치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 무드를 계기로 전 세계가 중국에 의지하던 에너지, 원자재, 각종 산업의 중간재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냥 안 팔리기만 해도 죽을 맛이었던 기업들은 이제 원가 압박에 깔려 죽을 걱정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효과가 있는 수단은 사업 축소, 즉 인원감축이었다. 물론 나와 내 주변을 비롯한 어떤 다른 세상에서는 재택 비율이 줄거나 재택이 끝나가니까 짜증 난다고 징징대던 때였다.

그러다 푸틴이 냅다 우크라이나를 밟았다.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 핵전쟁, 에너지 수출입관계 등의 이유로 강대국들이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불구경을 하는 사이 수천수만의 민간인과 군인이 죽어나갔다. 덩달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이 세계에서 적잖이 담당하던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가격도 폭등했다. 러시아 입장에선 서방 국가의 연합인 NATO가 러시아 방향으로 동맹을 확장하며 동진하는 것에 대한 대응, ‘원래’ 본인들과 같은 나라고 스스로 여겼던 우크라이나를 ‘해방’한다는 명분이었다. 누가 봐도 겉치레인 걸 알았다. 80이 넘은 나이, 지지율 하락, 서방 전체가 코로나에 휘청거리며 빈틈을 보이는 기회, 천연가스와 광물 등 러시아가 우위에 있는 자원 무역 - 이 모든 걸 합치면, ‘내부 규합과 지지율 상승을 위해 외부의 적이 필요한 시점에, 마침 그 외부의 적이 약해져 있고, 우리는 저들을 쥐고 흔들 자원이라는 무기가 있다’는 결과로 귀결된다. 나라가 구닥다리라서 그런지 단순한 수법이나 계산방식이 90년대 스타일에서 단 한 발짝도 진일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멍청한 미치광이들은 코로나로 전 세계가 입은 타격을 덜지는 못할망정 더 얹는, 전 지구적 민폐라는 선택을 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 주요 국가의 물가상승률이 6%, 8%를 넘어서 10%에 육박했다. 갈곳없이 많이 풀려버린 돈의 양 때문이기도 했고, 원자재를 쥔 중국과 기름을 깔고 앉아있는 중동이 미국에게 개기다가 사이가 틀어진 통에 원자재, 에너지 원가상승 부담이 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품목에 따라서는 15%를 넘는 물가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 모든 국가의 경기는 침체국면이었다. 경기침체(stagnation)와 물가상승(inflation)이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평소에도 경기의 일상적인 부침에 따라 작은 규모로는 무수히 발생하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큰 규모의 스태그플레이션은 1920-30년대 미국 대공황, 1970년대 오일쇼크, 2008-2012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에서 앞선 사례들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예측이 미래를 바꾸는’ 현상이다. 정확히는 빚을 내서라도 자산 가격 거품에 서로 뛰어들다가, 코로나가 대확산 이후 진정국면을 보이자 모두의 마음속에 어떤 불안감이 싹트던 그 시점. (부동산, 주식, 코인 한정으로) 자산 가격 상승과 몇몇 기형적인 소비의 축제가 언젠가 끝나고 멀쩡한 정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느낌. 

코로나 초중반에 정부가 돈을 찍어내고 뿌릴때는 이자율이 계속 내려갔다. 누구든지 돈을 쉽고 싸게 빌려서 돌아가게 만들었어야 하니까. 이때는 당연히 흔해진 돈이 부동산, 주식, 코인으로 흘러들어 가서 그 자산들의 가격을 올린다. 이런 양적완화는 마치 응급상황에서 한정적으로 쓰는 에피네프린, 아드레날린, 스테로이드 등과 같다. 급할 때 일단 잠깐은 꼭 필요하지만, 그걸 계속 쓰면 몸이 무너진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수요와 생산을 동시에 박살 내는 코로나에 대응하려 쓴 극약처방을 언젠가는 끝내야 했다. 양적완화와 항상 짝지어진 예정된 결말, 테이퍼링(Tapering).

그리고 그것이 (당연히) 실제로 일어났다.

역시나 이번에도 결국 단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금리였다. 경제를 기준으로는 거의 모든 일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 것. 모든 나라가 불안을 감지하고 스멀스멀 먼저 수군거리긴 했었다.

’미국이 금리를 언제 올릴까’

그러면서 주가, 부동산의 상승세가 먼저 주춤했다. 상투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정말로 가열차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1년에 0.5퍼센트 오르내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3개월에 0.75퍼센트씩 서너 번을 들어 올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미국 대통령,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재무부 장관은 2023년 중순-말까지 계속 이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쟤네 셋이 사이좋은 일이 은근 드문 편인데. 무려 10%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을 무조건 잡겠다는 거다.

미국 달러는 흔히 기축통화라고 한다. 기축통화에는 기타 경제대국들의 화폐도 몇가지 더 있지만, 사실상 그중 가장 강하며 실질적으로 유효하고 유일한 ‘기준통화’는 달러이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 정치-군사-외교적인 커버리지와 힘을 모두 고려했을 때, 어떤 국가의 화폐도 절대로 달러를 무시한 채 별개로 돌아갈 수 없다. 국가 간-기업 간-개인 간 거래에서 2-3단계 안에 달러를 거치지 않고는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아프리카나 남미의 몇몇 국가처럼 독재 혹은 정치적 불안 등의 이유로 화폐가 달러와 별개로 돌아갈 경우엔, 화폐가 종잇장이 되는 기적이 벌어진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코로나 시국에 뿌렸던 달러를 빨아들였고, 그래서 달러의 가치는 올라갔다. 그 말은 미국 외의 다른나라(우리나라 포함)들은 1달러로 바꾸기 위해 각국 화폐를 더 많이 지불해야 된다는 말이다. 환율 상승.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수입량은 줄고, 반대로 수출 가격은 외국에서 보기에 내려가기에 수출량은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어렴풋이 아직도 ‘수출대국’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렇게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값싼 제품들의 수출만 줄기차게 하며 외화벌이를 하던 시대는 이미 80년대에 끝났다. 우리는 소비재뿐 아니라 에너지와 원자재(혹은 중간재)를 수입해서, 그것을 고차적 산업으로 가공하고 되파는 식의 장사를 하는 나라다. 그래서 수입물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소비재뿐만 아니라, 기업 생산에 직결되는 에너지와 원자재에 미치는 효과가 더 크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수출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출량 증가 효과도 희석되거나, (+)/(-) 효과를 퉁쳐보면 오히려 환율이 상승했는데도 수출이 더 줄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환율은 어느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지만, 환율 상승이 환율 하락보다 대부분의 경우 더욱 치명적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미국이 금리인상을 치고나가면, 다른 나라들은 금리를 따라서 올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아프리카 독재국가처럼 화폐가 휴지가 되고 싶지 않다면, 각국의 화폐도 달러 대비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 금리와 세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빨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미국 등 경제력이 센 나라들은 금리를 폭발적으로 올리면서 실물시장이나 금융시장, 기업활동이 위축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버퍼가 두텁다. 반대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은 금리가 1%만 올라가도 주가 폭락을 기업들이 버티기 어렵고, 소득 수준이 강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국민들이 대출이자를 견디기 어려워서 소비와 투자가 몇 배로 더 위축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현상이다.

‘9만전자라도 제발, 카카오 97층에 사람 있어요’라고 배부른 소리를 하던 사람들은 지금 그 반값도 안 되는 주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주가는 단순히 ‘현재의 기분이나 기대’가 아니다. 그걸 들고 있을 때 미래에 어떤 꼴이 날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그 미래는 주가 기준으로 어둡고, 그래서 현재에 던지고, 그래서 내려가고, 그 현재 때문에 미래가 더 어두워지고, 그래서 또 던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현재를 규정하고, 그 현재 때문에 다시 미래는 어두워진다.

and so on.

영끌을 할 수밖에 없어서 정말로 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서 예전 기준으로는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몇억 소리’ 나는 대출을 펑펑 끼고 집을 샀던 2030도 주택 구매를 멈추거나, 있던 집도 다시 던지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은 서울이어도 반타작은 우스울 정도로 흔하다. 기껏 산 집은 최소 2년간 점점 깡통이 되어가는 와중에 별로 늘지 않은 소득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대출이자를 버티던가, 그게 아니면 집을 좁히고 직장과의 거리를 벌려가며 밀려나야 된다. 한동안 계속 이럴 게 확실하기 때문에, 주식과 비슷하게 부동산도 그나마 일찍 손절해야 추락의 데미지를 줄일 수라도 있게 됐다. 그래서 가격은 또 내려가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물론 ‘그나마’ 빠른 거겠지만.

기이한 발작행동으로 나이와 소득에 비해 비싸고 늙수그레한 차들을 샀던 사람들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한 달에 몇십-거의 돈 일이백은 우습게 잡아먹는 할부와 유지비를 못 견디고 차를 아예 팔거나 싼 차로 바꿔 탄다.

1-2년 사이 나이/업종을 막론하고 ‘그냥 취미’로도 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던 골프도 이젠 골프채를 거꾸로 판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and so on.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술 개발과 생산 모두를 틀어막으려 작정을 했다. 설비와 기술, 인력이 절대 중국에 닿지 않도록 사실상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한국, 일본, 대만에게도 입장 정리 확실히 하고 붙으라며 반도체 동맹까지도 제시했다. 반도체를 위해서라면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미군의 전개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 와중에 미국은 포괄적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다른 모든 나라의 화폐가치를 박살 내더라도 금리인상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등 전방위적인 수단을 써서 한동안 이 기조를 쭉 밀어붙이겠다는 일종의 포괄적 까방권을 미국 정부(대통령)가 의회로부터 얻은 것이다. (미국) 나부터 살자, Make America Great Again. 어, 이거 직전 미국 대통령이자 주병진 닮은 어떤 백인 금발 돼지 노친네가 했던 얘긴데. 당신들 정권 교체된 거 아니었어?

그러더니 우리 남한의 따스한 큰 형님인 미국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즈려 밟기 시작했다.
삼성한테 미국 공장 투자를 수백조 약속받고, 현차한테 냅다 캐시로 1조를 직접 받고도 뒤돌자마자 등에 칼을 박았다. 삼성전자한테는 중국에서 돌리던 공장마저 접고, 당장 매출이 박살 나도 중국에 반도체를 팔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현차에게는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전기차에 관세 폭탄을 때리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삼성과 현대는 대통령과 재경부, 외교부를 다급하게 쳐다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조문 일정도 펑크 내는 통에 그런 게 2주 혹은 한 달 전에 보고됐어도 미리 대응책을 준비했을리 만무했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애초에 우리 대통령을 정식 일정으로 상종해주지도 않았다. 우리 대통령은 둘 모두에게 어거지로 엄한 일정에 쫓아가서 얼굴이라도 비볐다. 그런데 이런 기어도 모자를 판에 우리 대통령은 거기다 대고 ‘이새키들, 바이든이, 쪽팔리겠지’ 라며 외신들에 대문짝만하게 실릴만한 실언을 했다. 이미 늦어버린 경제문제에 대한 대응은 커녕, 자신들에게 눈감고 동의하는 자들을 제외한 전국민의 78%를 청력이상으로 몰아부치는쪽을 선택해서 옥신각신하는데에 그 중요한 한달 남짓을 날렸다.

혹시라도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아직 정권에 로비를 하는 중이라면, 당신들의 행정부는 수신료의 가치를 저따위로 실현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은 반도체를 지킨다는 명분도 있겠다, 원래 ‘하나의 중국’이라며 대외적/대내적으로 줄기차게 주장했던 빌드업의 결실을 따면서 ‘안보’ 버튼만 누르면 올라가는 지지율도 챙길 겸, 사실상 대만이랑 전쟁 무드를 조성했다.

시진핑의 연임 때문이었다.

미국도 일단 나만 살자는 식으로 앞서 서술한 모두 밟기를 시전했다.

바이든의 연임과 미국 민주당의 총선이 코앞이기 때문이었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독일까지 유럽 내 유력 국가들에서 극단적인 보수(우파)가 득세하고, 그런 총리나 수상이 뽑혔다. ‘러시아랑 우크라이나랑 싸운대, 미국이랑 중국이랑 대만 두고 싸울지도 모른대’ = 안보,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 = 불황. 안보와 불황이라는 쿨기에 불이 들어오면, 그건 곧 보수가 놓치면 안 되는 딜각이다. 저 두 발작버튼이 눌리는 순간,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도에 있던 국민들마저 일단 나부터(우리부터) 살자는 식으로 보수에 표가 쏠린다. 그게 적당히 말이 통하는 온건한 보수였다면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만한 선택이나, 안보와 불황이라는 발작버튼을 써서 그제서야 득세하는 보수는 보수 중에서도 인간의 자연어로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극우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진핑의 연임이 확정됐다. 직전 2연임까지는 겉치레라도 다른 경쟁세력까지 주요 직무에 배치했었지만, 이제 아예 대놓고 본인 측근 말고는 모두 숙청한 채 3연임을 이뤘다. 임기 제한도 헌법을 바꿔서 없애버렸다. 누구도 시진핑에게 대놓고 욕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장 실질적인 의지가 드러나는 서방 외국인들의 돈은 중국과 홍콩 주식시장으로부터 조용히 다 도망쳤다.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중국과 홍콩 증시는 하루에 6-8%까지 박살 났다. 통상적으로 하루에 1-2%만 움직여도 굉장히 큰 양이다. 그것의 세 배 - 다섯 배 정도의 충격이다.

영국의 총리도 상당히 강경한 보수 여성이 됐’었’다. 서술하는 시점 기준으로 44일 만에 사퇴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중 여왕의 장례 기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양상추 유통기한보다도 짧은 임기였다. 작년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어서 옷도 비슷하게 입고, 말도 비슷하게 했던 어떤 미국 여자가 10조짜리 사기를 치다가 걸려서 인생이 망한 일이 있었다. 이 총리도 마가렛 대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옷, 비슷한 구도의 사진, 비슷한 말 - 까지는 그럭저럭 귀엽게 봐줄만했다. 문제는 ‘비슷한 정책’이 ‘비슷하지 않은 시점’에 따라서 배치된 것이었다. ‘부자 감세’.

영국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 풀린 돈을 빨아들여야 달러 대비 파운드화의 가치를 방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정부가 쓰는 돈은 줄이고 세금은 ‘늘려서’ 정부의 재정 안정성도 확보할 겸 돈을 빨아들인다. 그것에 정확히 ‘거꾸로’된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물가 역시 잡히질 않았고,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는 우리 원화만큼이나 박살 나서 환율이 폭등했다. 영국에 투자했던 외국인들, 심지어 자국 기업과 자국민들도 파운드화를 달러화로 바꿔서 도망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영국의 국가 채권 문제도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하마터면 2008-2012년 글로벌 금융위기 비슷한 걸 초래할 뻔했다. 물론 그 문제도 이미 6개월 전부터 다른 나라들은 다 대비를 하던 거였다. 도미노처럼 사고가 터질 때마다 본인이 지명한 내각 관료들을 한두 명 희생시키거나 혹은 그들이 자진 사퇴했다. 그러다 결국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마가렛 대처 빠의 양상추보다 짧은 쇼는 그렇게 끝났다.

일주일 뒤, 전 정권의 재무장관 출신이자 그나마 맨 정신으로 말이 좀 통하는 인물이 다행히도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그러자 파운드화 가치는 귀신같이 방어되기 시작했고, 영국 증시도 소폭 올랐다. 어떤 말보다도 돈의 탈출과 복귀는 빨랐다.

 

일본도 영국의 상추 총리와 비슷하게, 하지만 더 일관적으로 '거꾸로' 가는 정책을 선택했다. '엔저 정책'.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에 의해 일본은 이미 근 30년째 엔저 정책을 유지해왔다. 엔화의 가치가 낮아야, 국민은 아니지만 국가라도 부유해질 수 있다는 희한한 셈법이자 조건 때문이다. 코로나로 돈이 풀리며 그 일본 돈의 가치도 더더욱 낮아졌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엔저'라는 기조를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까지는 세계 5대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억지로 유지할순 있었고, 일본 대기업 직장인들은 요즘 마트에서 데이트를 한다.


코로나가 다시 유행할지 모른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모르는 새 벌써 7차 대유행이란다. 대부분 해외 정세나 돈의 흐름으로 본 지금까지의 최근은 이랬다.

나한텐 긍정이 필요할 거다. 꽤 많이.

좋은 생각 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고, 잠깐씩이라도 소중하게 즐거운 순간들을 만들며 살자. 약자인 내가 약자를 밟거나 혐오하지 말고, 비겁하지 않게, 그리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