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sd] 나비처럼, 고래처럼, 훨훨
강화 본가에 몇년 전부터 길고양이(아마 들고양이가 더 맞겠지만)가 들어앉았다. 아빠가 제멋대로 '나비'라고 불러서 그냥 나비가 됐다. 엄마는 동물을 무서워해서 눈에만 보이면 이리저리 쫓아내기 바빴고, 아빠는 어쩌다 눈에 보이면 엄마 몰래(이제는 대놓고) 먹이를 주면서 놀아준다. 난 그냥 나비가 보이면 아는척 해주고, 놀아달라고 붙으면 바쁘다고 배에 발을 스윽 넣어서 옆으로 밀어놓는다. 일 다 끝났을 때면 옆에 붙어도 그냥 냅두고 같이 해 지는거나 보면서 은행나무 밑 대리석 평상에 같이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나도 처음엔 아빠한테 '먹을거 아무거나 주면 쟤네 탈난다, 자꾸 주면 버릇돼서 안 나간다'라면서 면박을 줬었다. 근데 가끔 일 너무 힘든날 밖에서 저녁에 반주 한잔 하고 같이 들어오면, 나비랑 얘기하면서 노는 아빠를 몇번 봤다. 내가 아무리 딸같은 아들로 평생을 살았어도 아들은 아들이라, 적적한 중년의 저 아저씨한텐 쟤라도 있는게 낫겠다 싶어서 말리는 걸 관두었다. 그냥 먹을거 줄때만 너무 달고 짠건 아예 주지 말거나 하다못해 물로 헹궈서라도 주라고. 그랬더니 짬타이거들은 원래부터 알아서 가려먹는다는 기가막힌 대답을 하질 않나. 그래도 본게 있어서 반박은 못했다. 군대나 공장에서 강하게 길러지며 대부분 직원의 근속년수보다 훨씬 장수하는 짬타이거들은 정말로 그렇긴 하니까. 그래도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는둥 해도 언젠가부턴 엄마도 나서서 먹을걸 가려서 주거나, 너무 짬같은건 차라리 버려버리지 안 준다. 뭐야 이 아줌마도 그냥 츤츤이었나.
집안에 들이는 건 셋다 별로라 나비는 밖에서 알아서 자기 패거리들끼리 논다. 그리고 이미 지붕 속에 자기 집이 있다(;). 그 덕에 예전엔 가끔 오래된 지붕 사이를 우두두둑 뛰어다니던 쥐 소리가 싹 사라졌다. 그렇게 길들인 것도 길들이지 않은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벌써 5-6년이 되어가나 보다. 그동안 나비는 새끼를 서너번을 낳았고, 어떨땐 며칠이나 한두주씩 안보이다가도 새끼가 들어서면 항상 와서 집고양이 코스프레를 했다. 그동안 나비의 새끼도 새끼를 낳았고, 나비의 새끼의 새끼도 새끼를 낳았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스무마리씩 몰려다니는 건 아니라 다행인 게, 대충 다른 집이든 야생이든 어디로든 다 분가를 해서 나가고 항상 나비 혼자만 온다. 그러다 최근 2-3년 사이엔 도대체 언놈이랑 그렇게 새끼를 낳는지, 그 출처인 '언놈'도 슬슬 얼굴을 드러내서 알게됐다. 엄마가 얼룩덜룩한게 꼴보기 싫다고 '코탱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또 그냥 그렇게 불리게 됐다. 이 아줌마는 나이먹으면서 츤츤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게 우리 셋은 가끔 내가 일 도우러 본가에 가면, 셋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라, 너무 면박주지 마라' 양쪽으로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는 잔소리를 해대며 길들이는것도 길들이지 않는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나비랑 지내고 있다. 고양이는 원래 천성이 깔끔하다는데, 그래도 길고양이들은 지저분하거나 병든 애도 종종 보긴 했었다. 근데 얘는 무슨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처럼 먼지 한톨도 안 묻고 매끈한 상태로 돌아다닌다. 새끼들이 걸을때가 되면 데리고 내려와서 같이 밥 먹다가 발각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동물에 무덤덤하려는 내가 보기에도 새끼 고양이는 좀 치명적으로 귀엽긴 했다.
끼니때마다 일하다가 밥 먹으러 집으로 들어오면, 동물을 끼고 살지 않다보니 전혀 생각을 안하던 위치에 나비가 우두커니 있는걸 뒤늦게 발견하고 '어우씨' 하고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마당 턱이나 대문 구석에 자기 집인것처럼 꼿꼿하게 앉아서 '밥을 내와라 휴먼' 이러고 쳐다보는데, 그게 아예 움직이질 않고 그러고 있어서 바쁘게 훅 지나가면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최근엔 갈비집 같은데서 칼로 대충 살을 발라낸 뼈를 아빠가 따로 싸오기도 하고, 너무 추운 날은 고구마 수확하는 플라스틱 박스에 담요를 넣어서 지붕에 대충 올려놓기도 한다. 가끔 부모님이 통으로 강화 집을 비우고 내 일산 집이나 다른데를 가게 되면, 옆집에 전화해서 혹시 마당에 나비 돌아다니나 봐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차피 부모님이 집을 아예 비우면 알아서 옆집 가서 밥 얻어먹는다고 전화가 온단다. 얼마전엔 내가 일 끝나고 평상 의자에 반쯤 녹아내려서 땀이랑 물을 줄줄 쏟고 있는데, 나비가 의자 밑으로 오더니 꼬리로 내 다리를 스윽 건드린다. 심심하다 이거다. 아으 간지럽고 물컹한게 이상한데. (골프 근처도 안가본)아빠가 예능용으로 집앞 마당 잔디에 골프 홀을 하나 파놓고 골프공을 몇개 넣어놨길래, 그걸 던져주고 놀았다. 그러다 또 자기 새끼들이랑 코탱이랑 우르르 몰려서 하우스 사이로, 수로나 수풀 사이로 놀러갔다. 밥때 되면 오겠지 뭐.
이런식으로 지들이 알아서 길든게 벌써 참새팸(자꾸 드나들길래 아빠가 빨래걸이 위에 손바닥만한 나무집도 지어줬다), 팔뚝보다 작은 하얀 똥강아지들, 그리고 나비네까지 벌써 세식구다. 강아지들은 일할때 자꾸 움직이는 기계 옆에 와서 활짝 웃으며 같이 뛰어다니는게 영 위험해서, 옆집의 지인들한테 따로따로 다 분양했다. 가두거나 묶어서 키울 바에야 그냥 아예 도시로 가라. 도시 맛좀 봐라 이녀석들. 근데 애초에 우리 강아지도 아닌데 분양을 왜 우리가 한 거지.
짐 캐리가 출연한 영화 <에반 올마이티>에 보면, 현대판 노아의 방주 사태가 벌어지면서 주인공 주변으로 동물들이 미친듯이 몰려드는 웃긴 장면들이 나온다. 요 몇년 한달에 한번꼴로 강화에 갈때마다 그런 느낌이었다. 우린 모집한 적이 없는데 갈때마다 자꾸 입주민이 스멀스멀 늘어간다. 다른 집들은 주인들이 동물들을 좋아하고, 이미 아예 키우는 집들도 많은데. 동물에게 아마 제일 츤츤거리는 집이 우리 집일거다. 근데 왜 다 여기로 와. 이러다간 뒷산에 고구마랑 깨 털어먹고 튀는 고라니도 슬그머니 알아서 길들어버릴 기세다.
동물을 엄청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충분히 가족의 일원이 될수도 있다. 다만 사람과의 격은 확실하게 다르고, 상황이 가능하다면 가급적 그들만의 놀거리, 생활, 공간이 있는 게 행복해보인다. 그냥 이정도다. 가끔 뉴스에서 동물을 괴롭히거나 막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화가 났다. 굳이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괴롭힘 당하고 다치는 건 싫다. 동물 친구들이 알아서 꼬이는 집의 아들내미 치고는 너무 무미건조한 건가 싶지만, 어쩔수 없다. 가감없는 느낌은 그냥 이렇다.
이런 자발적 입주민들이 등장했던 몇년전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관계에서도, 그래서 어쩌면 자의든 타의든 힘을 뺀채로 지낸 관계들이 오히려 무난히 무탈했던 건가. 한 사람과의 관계든, 어떤 집단이든 내가 열망하는 어떤걸 향해 경주했던 관계는 그만큼 좋은 추억과 기억이 많았지만 그 끝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적도 더러 있었다. 반대로 내가 뭘 어쩔수 없거나,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치우는 것 자체도 수고라서 그냥 내버려둔 관계들은 끈질기고 심지어는 너무나도 원활하게 잘 굴러간다. 혹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냥 일이 바쁘고, 몸이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무한정 있지는 않아서 할수있는 만큼만 하는 관계 역시도 그렇다.
그다지 바라지 않던 건 넘쳐나고, 열망했던 건 가다 한번씩 크게 잃는 악순환. 자의든 타의든 그걸 어느정도 끊어낸 건, 버퍼를 둘수밖에 없던 스스로와 그런 상황이었다. 시간과 여유의 문제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남에게 요구하는 그런 일관성, 성실함, 정의로움, 지성, 감성, 품격이라는 걸 나역시도 겉으로 보이거나 떠드는 것 만큼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걸 더욱 뼈져리게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매크로처럼 따라붙이는 겸손이 아닌, 자괴의 깊은 바닥을 세게 치는 일들을 겪으며 부서지고 느슨해진 느낌.
나와 남 모두에게 기대하며 밀어부쳤던 어떤 지향. 내가 나를 몰아세우다가 종종 지치는 건 그렇다 치고, 내가 가까운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밀어부칠 어떤 자격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남에게 여유를 주고, 어느정도는 있는 그대로 놔두는게 되길 바랬지만, 선결조건은 내 스스로가 먼저 부서지는 거였다. 나는 무언가를 지향하고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요구할 뿐, 아직 그정도에 도달한 사람은 당연히 아니었다. 나 스스로를 이미 그 지향점에 도착한 인간으로 착각한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때론 반대로 가혹해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남에게는 버퍼나 룸을 주지 않고 같은 느낌으로 밀어부치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자만했을 순간의 나에 대해선 뻔뻔해서 우습고, 어쩌다 그 잣대로 스스로 채찍질하다 지쳤을 나 자신을 돌아보자니 미련했다.
그리고 종종 개인적인 거리 이내에서 그 롤러코스터와 갑갑함을 겪었을 몇몇 남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언젠가는 한번쯤
했던 말, 했던 생각, 하고싶은 것, 이제는 반쪽이라도 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Be the way you are
Love the way you are
It's your life
The rest of it was just on me
나비처럼
고래처럼
그렇게 편했으면, 나도, 당신들도
훨훨
나비랑 무심한듯 등을 맞대고 석양을 봤던 평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