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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얼터에 항상 담궈져서 그게 왜 인디/얼터인지 모르는 이슈

Neon Fossel 2025. 3. 5. 00:15

요즘 스포티파이 데이리스트를 뒤늦게 알게돼서 세네시간마다 신나게 탐험중이다. 내가 그 요일, 그 시간대에 들었던 노래를 기반으로 추천해주며, 플리 제목과 상세 설명에 그 특징을 담은 제목과 태그들을 붙여준다. 매일 하나에 2-3시간 짜리 6-8개의 플리를 항상 다 들을순 없으니, 그럴땐 자동으로 생성된 플리 제목과 설명 그대로 일단 통째로 저장해두고 나중에 듣기도 한다. 시간 지나면 펑이고 바로 다음 추천플리가 도착해버리거든. 설명에 붙은 태그까지 자동으로 끌려오진 않아서 직접 적어야 한다. 그 태그들을 보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들었던 노래들이 어떤 분류로 불리는지, 흡사 성격테스트 하듯 결과를 보는 느낌이라 재밌다. 음악 스트리밍 단독으로만 만 원 돈이 넘게 구독세(...)를 갈취해가지만, 이정도의 높은 알고리즘 퀄리티와 넘치는 양이라면 더 비싸도 쓸만큼 직접 와닿는 만족감을 준다. 발더스게이트 다음으로 '돈을 더 줘야 하나' 싶은, 몇 안 되는 소비다. 예전의 스포티파이는 이정도까진 아니었고.

 

그렇게 성격테스트처럼 받아든 플리의 제목과 태그들엔 굉장히 일관적인 수식어들이 보인다.

 

Indie, Indie sleaze(뭔 말인지 몰라서 검색해보니 스타일 이름이기도 하다. 내 20-30대 초반까지의 주요 서식지에선 거의 항상 다들 저렇게 입고 다녀서 그냥 다 저렇게 입고 다니는 줄 알았다), Alternative, Alternative hipster(...또스터; 이쯤이면 설마 진짜 힙스터는 아닐지라도 힙스터 호소인 혹은 샤이 힙스터 지망생 쯤은 되는건지 진지하게 의심해볼 부분)

 

사실 이런 진단을 받은 게 처음도 아니고 여러번이다. 그리고 종종 잊고 살지만 엄연히 따지면 인디밴드를 락페 오프닝 데뷔까지 짧지 않게 했던 것도 맞고. 근데도 아직까지 나 혹은 나의 취향이 '인디', '얼터너티브' 라고 불리는 게 낯설다. 나도 웬만한 글로벌 팝이나 케이팝 아이돌도 다 듣고, 국힙 아이유(...)도 듣고, 남들 다 듣는 그런 플리도 대충 걸어놓고 하는데. 그런데도 왜 꼭 빼박 데이터로 검증하면 '너는 인디놈이다. 너는 얼터야.' 라고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귀신같이 감지하는 걸까.

 

인디.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프로듀싱에 의한 것이 아닌, '독립적'으로 제작과정 전반을 직접 수행하는 뮤지션 혹은 장르 전반을 일컫는 말' 정도로 일단 내멋대로 정의하고 사는 중이다. 얼터너티브. 주로 락 장르에서의 비주류를 칭한다고 알고 있다. '락' 하면 남들이 줄줄 읊는 그런 기라성 같은 밴드들이 하는 거 말고, 뭔가 때로는 신박하고 기이하게 혹은 예쁘고 음침하게 이상한 짓을 하는 애들.

 

공통점은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류를 딱히 싫어하거나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주류가 뭘 하든 말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듣고 싶은 거 듣는 것. 내가 인디,얼터,힙스터 라는 정체성을 낯설어하거나 쉽게 인정하지 않는 건 바로 이 중요한 핵심이 딱히 의식적으론 동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힙스터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의지적으로 혼자 튀려고 발악하는 애들이거든. 그런데 난 항상 내가 상식이나 주류와 혹시 얼마나 멀어져있나, 통계적으론 편차(Deviant), 사회적으론 멀어진 정도(Deviancy)를 빈번하게 신경쓴다. 그리고 주류에 대해 너무 모르거나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충전할 때 잠깐씩 철저히 혼자인 게 필요한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에 인정욕구 넘치는 관종이라 어쩔수 없거든.

 

인지적이고 의지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근데 그냥 별생각 없이 스스로가 손 가는대로 풀어놓으면 그 결과는 죄다 저렇다. 주류와 끈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하면서도, 좋아하는 걸 쫓다보면 그 모든 건 주류와 반대의 것들만 용케도 잘 골라서 한움큼 손에 쥐고 있는 상태. 그 둘의 괴리가 이해도 납득도 안되지만 그냥 좀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고 재밌다.

 

의지와 본성의 괴리 말고도 추정 가능한 다른 요인은 바로 제목에 있는 그것이다. 음악을 배우고, 듣고, 직접 하면서부터 나한테 '인디'는 딱히 '힙'하기 위해 선택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주어진 자리였다. 물론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고 진로를 어떻게 정하냐에 따라 수천 가지의 다른, 오래된 미래가 있었겠지만. 클래식-유학-교향악단-교수, 실음과-기획사PD, 실음과(혹은 비전공)-프리랜서 기술직 등등. 그런데 내가 음악을 시작하고 진행한 길은 저랬다. 어딘가에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만 수천번씩 듣고 죽어라 따라 치다가, 자기만의 궁(...)도 만들어보고 놀다가. 그런 애들이 동네와 대학에서 '너 뭐 됨? 그럼 같이 이거 좀 비벼봐봐. 와 이게 되네. 쭉 보자' 이런식으로 뭉쳤다. 그냥 그렇게 하다보니 그게 인디란다. 그리고 그런 노래를 하다보니 알게된 다른 모든 동료밴드도 당연히 다 인디였고.

 

그런 음악을 하다보니 당연히 들을 때도 동종업계 동향(...)을 파악하듯 '와 얘넨 이걸 이렇게 비틀었네, 저 악기를 저기다 갖다붙였네'라는 걸 들으려 하고 재밌어 한다. 그러니 듣는 것도 인디, 얼터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아이돌의 댄스와 소몰이 창법, 전설적인 팝스타와 락스타들의 익숙한 장르들은 당연히 나도 좋아하고 멋있다. 다만 그런 노래들은 저런 요소들이 주의를 뺏으면 안되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거나 아예 침묵하고 있어서 오히려 심심하다. 애국가보다 살짝 덜 지루한 정도.

 

그래서 아마도 주류 노래들은 잠깐씩 동향파악 정도만 하고 결국은 인디, 얼터 음악을 나도 모르는새 계속 달고 사나보다. 그래서 낯설다. 난 이게 소수, 인디, 얼터'라서' 듣는게 아닌데. 나한텐 이게 주류인데. 그걸 가다 한번씩 '그거 비주류야, 신기하네'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인디/얼터에 처음부터 너무 푹 담궈져 있어서 그게 인디/얼터인줄 모르는 웃픈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