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of Perfection
와우 격전의 아제로스 때의 시즌 파워 요소 중엔 '아제로스의 심장'이라는 목걸이에 정수를 박아 넣는 놀이가 있었다. 그중에는 '완벽의 환영(Vision of Perfection)'도 있었다. 스킬을 쓰다 보면 일정 확률로 쿨기 버프가 제멋대로 터지는 로또 요소였다.
당시는 내 자캐에 가까운 조드가 레이드든 쐐기든 최악인 시즌이었다. 레이드 가면 다른 딜러의 70 퍼쯤 되는 딜밖에 안 나오고, 쐐기를 가면 날을 바짝 세워서 쳐봐야, 아무 생각 없이 서있는 탱한테서 꽁으로 나가는 회오리 따위에 딜이 따이고. 광딜에서도 차라리 단일딜을 치는 게 더 나을 만큼 광딜이 구리고. 그래서 전혀 좋을 추억이 아닌데. 요즘따라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머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테이블에 불려 오는 단어이다. 떠오르거나 내가 속으로 읽는 걸 들을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스친다.
'Vision of Perfection'
완벽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상일 수도 있는지, 그리고 그 완벽에 도달할 수 있다는 호기로운 객기가 얼마나 오만하며 허황된 것인지.
그럼에도 그것을 추구한다는 자체의 비장미, 숭고미. 그 과정에서 티끌만큼이라도 진일보한다는 그 느낌.
스스로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점근선'과 닮아있다.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그것. 절대 닿을 수 없지만 무한히 가까워지는 그것. 뒤집은 후자가 더 낫군.
그런데 해당 시즌 말, 조드 월드 로그 중에 화제가 된 건이 하나 있었다. 원래 3분 동안 30초만 켜지는 쿨기 버프인데, 저 환영 로또가 계속 터지는 바람에 3분 전투 동안 3분 내내 쿨기 버프가 켜진 채 혼자 다음 확팩 딜을 했던 사건. 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건가. 저런 완벽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그런 요소라서. 그럼 점근선은 아니네. 그래도 재밌다. 어딘가에 원전이 있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표현을 와우에 집어넣을 생각을 했다니 대단할 따름. 칭찬해.
완벽은 환영이지만
모든 환영이 허상은 아닐 수도 있다
무한히 가까워지다 보면
언젠간 닿을 수도
완벽의 환영,
Vision of Perf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