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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코

Neon Fossel 2025. 4. 20. 10:47

한 달 반쯤 전 생각했던 대로 이번 시즌은 다시 좀 잘하고 싶었다. 시즌 초반엔, 전시즌에 주차만 하면서도 이미 다 졸업까지 키워놓은 부캐들로 낮은 난이도인 일반쯤만 돌려도 골드가 쏠쏠하게 벌리는 재미에 한눈을 좀 팔았다. 어차피 다 처음이라 로그도 안 보고 그냥 스펙만으로 입장이 되는 골드 꿀통. 한 300 벌고, 200 쓰고, 100 정도 남았다. 어차피 인게임 화폐가 현실 기준으로는 아무런 의미나 환금 가능성도 없는 게임이지만 그냥 돈 벌고 노는 그 자체가 재미의 한 축이 될 수도 있기도 하다는 걸, 오랜만에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느껴봤다.

 

그렇다고 본캐급들을 대충 한 건 아니지만 뭔가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인지하기를 거부한 채 의식의 장막 바깥쪽으로 밀어보지만 소용없다.

 

그러다 따끔하고 뜨끔하게, 피할 수 없게 그것을 직시하는 순간이 온다. 모든 변명(쫄파이를 뺏겨서, 그때 뭐가 걸려서, 파티 딜이 들쭉날쭉이라 패턴 타이밍이 꼬여서, 쫄때문에 레이드 인스 렉이 심해서 등등)이 깔끔하게 제거된 네임드. 깡단일로 처음부터 끝까지 쿨기 설계도 필요 없이 닥딜하는 네임드. 전체 로그는 70-80점대밖에 안 되는 캐릭이라 ‘아직 템렙이랑 스탯 같은 스펙 때문이겠거니’ 했던 캐릭이었다.

 

그런데 그런 캐릭이 저런 깡단일 노설계 닥딜 네임드에서 95나 99가 찍혀버린다면.

 

모든 변인이 하나씩 다 지워진 거다. 템렙이나 스탯 등 스펙이 부족했나? ㄴ / 캐릭 자체를 굴리는 휴먼 헤키리, 즉 머리와 손이 아직 모자란 건가? ㄴ

 

처음 잠깐은 어떤 면에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본캐 혹은 본캐급이라고 성의 있게 키웠는데, 잘 큰 거구나. 그리고 그걸 굴리는 내 머리의 어떤 부분과 손은 틀리지 않았구나. 그런데 저렇게 변인통제 방식으로 모든 경우의 수가 지워지고 나면 딱 한 가지가 남는다. 상위권 정답 로그를 가져다 머리에 때려 넣는 능지 혹은 성의의 문제.

 

게임을 라이트하게 하려 한다는 미명하에 언젠가부터 신경을 끄고 살았었다. 근데 사실 정확하게 짚자면 ‘무지성 암기과목 시험범위가 잔뜩 쌓여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싫었던 거였다. 난 그냥 각각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제시될 때, 누가 거기에 얼마나 빠르게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가 더 자신 있고 좋은데. 그게 더 실력이자 숙련인 것 같고.

 

그런 레이드가 딱 로아식 레이드다. 찍먹을 약 3트쯤 해봤지만 로어-프렌들리 하지 못한 그 빤딱빤딱한 그림체와,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수많은 성장요소에 질려버렸다. 그래서인지 항상 엔드 컨텐츠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폐사해 버렸던 그 게임. 요즘 재화 가치 폭락으로 게임(성장)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득인 구조라 좀 불타고 있던데.

 

그저께쯤 잠시 시간이 나길래 원격으로 와우를 켜서 4신 트라이 공대 지원을 해놨다. 구인하는 파티장의 세부사항에 ‘3넴 감전 디버프 확인하고 초대드립니다’라고 써 있었다. 공대원 대부분이 돌아가며 충전탑을 눌러서 도트뎀을 받는 대신 게이지를 빼는 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네임드다. 그나마 저번주에 잡을 때, 공장이 2호차에서도 ‘님은 알아서 잘 커버해주니까 굳이 특임 배정 안 할게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누르고 다니긴 했는데. 다행인 건가. 근데 또 킬한 로그에는 거의 안 누른 채로 잡혔으면 어떡하지. 굳이 트라이 로그까지 다 봐주려나. ‘잠시만요’라는 귓이 오고 나서 30초쯤 뒤에 ‘달초 드렸습니다’가 나왔다. 오, 합격 목걸이. 이걸로 주말을 마무리하면 뿌듯하겠다. 예전엔 개콘 엔딩 브금 나오면 주말 끝났다는 밈이 있었는데, 요즘은 슈카 라방 끝나면 주말이 끝난 기분이었거든(…).

 

사실 일상에선 격변의 시기를 지나면 이런 느낄 일이 별로 없다. 가족, 여타 관계, 모두 일단은 ‘무탈’하기 위해 그렇게도 아득바득 난리를 치는 거니까. 물론 그렇게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란 것도, 꽤나 빈번하게 깨서 전화기를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간담이 서늘하긴 하지만. 무튼 그런 일상을 사는 와중에 와우는 나한테 스포츠 같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인 체육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혹은 생활체육이 보급된 나라들은 직장인들이 2주씩 휴가 내고 올림픽에 나오기도 하는 . 와우가 나한텐 그런 측면도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 알고 있는가, 그리고 아는 대로 실행할 있는가’ 라는 경기에 출전하는 느낌. 거기에 글로벌을 유랑하다가 마주치는 웃긴 채팅과 컨셉러들, 힐링이 되는 하늘과 달도 있으니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