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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Neon Fossel 2020. 1. 21. 06:11

자식 혹은 멘티에게 남기는 꿀팁_2

 

어릴 때, 돈이 뭔지 잘 모르고 그냥 집에 굴러다니던 만원짜리를 들고 아장아장 동네 가게에 갔다가,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연락으로 엄마에게 적발된 적이 있었다. 이건 기억에 없는 거기도 하고, 적당한 예는 아니니 제끼면, 내 첫 거짓말은 초등학교 4-5학년 때, 수학 과목에서였다. 아직도 정확히 기억나는, ‘괄호의 체계’를 처음 배우는 단원이었다. 소괄호 먼저, 그다음은 중괄호 대괄호 순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학창시절 내내 부모는 성적에 대한 목표나 기대치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나는 그것에 비하면 필요 이상으로 쓸만한 성적을 받아오는 편이었다. 공부가 딱히 어렵다고 느낀적은, 대학 3학년때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파생상품(선물, 옵션) 계산을 할 때 말고는 딱히 없었다. 저때도 딱히 내용이 어렵다고 느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딴짓하고 노느라 수업을 안 들은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상하게 머리에 입력되지 않고 튕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중학교로 넘어갈 무렵, 역시나 수학 과목에서 처음으로 ‘변수, 미지수’가 등장할 때였다. 모르는 숫자를 그냥 x,y로 놓는다는데, 그걸 가지고 ‘알지도 못하는 걸’ 곱하고 더하고 빼고 막 뭉쳐쓴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_거짓말에 손을 대는 동기

1)_ 안 걸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

2)_ 이번 것만 넘어가는 게, 전체에 크게 지장이 없을거라는 기대

대강 이 두가지 느낌이 혼재하며 처음으로 거짓말에 손을 댄다. 거의 항상 친구들에게 필기나 숙제를 보여주던 입장에서, 처음으로 아예 풀이과정이나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채로 배껴쓰기만 했다. 어차피 한 단원은 길어야 1-2주, 숙제 두세번이니까, 이렇게 대충 몇번만 넘어가면 안 걸릴거다. 그리고 별로 안 중요해보이니까 여기 하나쯤은 날려도 다음 단원부터 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 그러다 학교 수업시간에 하필이면 나와서 문제를 풀어보라는 순서에 걸렸다가, 손도 못대고 바보모드인채로 속절없이 털렸다. 집에서도 숙제하는 시간이 갑자기 줄고, 문제를 푼 흔적은 없는데 계속 완성만 되니 이상하다는 낌새를 챘는지, 한 주를 못 가고 결국은 걸렸다. 학교에서, 집에서 각각 해당 단원의 아무 문제나 찍어주고는 다시 풀어보라는데, 그 앞에서 고장난 로보트처럼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 끔찍하고 살벌한 순간이 기억난다. 살면서 이런 역할은 해본적도,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도 없었는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쓸모없고 쪽팔리는 인간이 되었는지 아찔했다. 그렇다. 추락이었다.

 

첫 째, ‘안 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애초에 갖지 않는 게 좋다. 거짓의 기술이 매우 정교해지는 어른의 세계에서도, 대부분의 거짓말은 공들인 정도에 따라 적발되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 언젠가는 걸린다. 어른끼리의 거짓은 그게 거짓인지 몰라서 넘어가는게 아니라, 그렇게 거짓까지 써야하는 상대의 입장이나 의지를 읽고 알고도 넘어가주는 거다. 하물며 그보다 어리고 서툴때의 거짓말은, 그 순간에나 안 들키면 다행이다. 게다가 학교에서의, 특히 성적과 관련된 거짓말은, 언젠가 ‘평가’라는 잣대에 무조건 노출되기 때문에 안 걸릴수가 없다. 하기싫고, 하고 싶어도 어려워서 못하겠으면 그냥 낮은 점수를 받거나 숙제를 못해라.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고, 그에 따른 결과를 그대로 드러내는 건 괜찮다. 끝까지 쭉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고, 하고는 싶은데 어려우면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다만 ‘안 하거나 못 하는건데’, 결과만을 별 탈 없이 잘 도출하도록 거짓말로 때우지 마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걸린다. 안 하는 건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면 되고, 못 하는건 부끄러운게 사실이지만 그때라도 배우는 게 낫다. 거짓말이 까발려지는 순간은 남들에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장 쪽팔린다. 특히 성적이나 공부에 대한 거짓은, 스스로의 명석한 두뇌에 대한 모욕이다.

 

둘 째, ‘이것 하나 정도는 그냥 패스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아무때나 하는 게 아니다. 물론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들 중에서는 아예 버렸다가 특정 시점에 몰아쳐서도 따라잡을 수 있는 과목들이 있다. 암기과목 대부분과 언어(국어)쪽이 그렇다. 이런 과목들도 이왕이면 중간에 안 때려치고 쭉 하는게, 갑자기 몰아치는 것보다 낫다는 건 당연하지만. 각 과목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와, 그 정보를 나름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조직하는 버르장머리가 연습이 된 사람과 안 된 사람은 효율과 속도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그래도, 일단 나중에라도 돌이킬 수는 있다. 반면 대표적으로 영어와 수학은 그게 힘들다(그놈의 영수영수영수영수). 영어는 언어이긴 하지만, 모국어가 아닐테니 문법이나 단어를 계속 위로 쌓아가면서 확장하는 방식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로 계산이나 논리의 틀을 쉬운 것부터 쌓아서 개념을 확장하거나 가지를 치는 방식이다. ‘영수영수’ 소리가 듣기 싫은건, 내가 지구에서 제일 싫어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유가 저렇다. 그래서 영어와 수학은 다른 암기과목처럼 갑자기 몰아친다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다른 과목들은, 예를 들어 마음을 다시 잡은 시기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고등학교 2학년의 단어 수준과 머리 굴리는 속도로, 그 때의 시험에 필요한 내용에만 갑자기 합류해서 머리에 우겨넣으면 된다. 그런데 영어와 수학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하려면, 그 과목들을 버렸을 때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머리에 따라 속도차이는 날 수는 있어도 지름길이나 꼼수는 없다. 확실히. 내 과외생 중에 한 명은 그렇게 갱생을 시켜보기도 했고, 내 지인들 중에도 둘셋은 그렇게 복귀가 성공하는 걸 보기도 했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살면서 본 예가 저 몇 명 밖에 없다는 것은, 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돌이키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어렵다.

 

다만 이 과목들을 ‘싫어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엄청 빠른데, 그 나이엔 대부분 저 과목들이 왜 돌이킬 수 없는지, 그리고 자기의 미래에 저 과목들을 싫더라도 해야할지 아닌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른(꼰대)들이 영수영수 하는 소리를 그냥 잘 듣고 찌그러져서 하라는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디가 왜 싫은지, 어떻게 머리에 안 들어오고 무슨소리인지 모르겠는지를 말해라. 그리고 나중에 뭘 하고싶거나 무슨 공부를 하고싶은지를 물어봐라. 그럼 그냥 아예 때려쳐도 상관없을지, 적당히 중간이나 따라가주면 될지, 해결을 해서 잘 해야될지 알려줄 거다. 주변에 그냥 영수영수만 외치는 꼰대가 있다면, 그리고 혹시나 내가 그런 아재나 영감쟁이가 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라. 근데 난 최소한 ‘왜 그런지’는 설명할 부지런함이 있거나, 앞으로의 진로상 정말로 할 필요가 없으면 시원하게 제끼라고 말해주거나, 진심으로 싫어서 미치겠다면 그걸 좋게 만들어주거나 아님 그냥 잠시 닥달하지 않고 쉴 시간을 주는 어른은 되어 있을거다. 일단은 나한테라도 꼭 얘기하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꼰대가 되어있다면, 이 글을 나에게 다시 보여줘라. 내가 쓴 글을 들이대면서 허언증이냐며 거품 물고 따지면 내가 정신을 차릴 거다.

 

아마 내 자식이거나 내가 멘티를 삼을 정도로 흥미있는 녀석이라면, 수재 소리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아도, 딱히 사는 데 불편함은 없을 수준일 거다. 네 머리는 전반적으로 멍청하지는 않다. 어쩌다 한두개는 못 할 수도 있는거고, 그게 적당히 인간미 있고 괜찮다. 그 한 두가지를 영영 못한다고, 혹은 나중엔 잘 하게 됐지만 중간에 잠깐 삐끗했다고 해서 '전반적으로 멍청한'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아마 피가 섞였든 안 섞였든, 나랑 비슷한 인간이라면 스스로가 바보같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아니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멍청한 거 아니니까 괜찮아. 거짓으로 숨겼다가 까발려지는건 스스로에게 정말 쪽팔린 일이고, 혼.난.다. 미리 말하면 알아서 잘 A/S해줄 것. 안 잡아먹으니까 꼭 얘기하길. 내 부모도 나에게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