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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_03

Neon Fossel 2020. 5. 20. 15:48

화요일, ‘화’요일. 왠지 그 발음이나 월요일 다음이라는 게, 그냥 예쁜 날이다. 아직 그 주의 싱그러움은 남아있는 채로, 첫날인 월요일의 거친 느낌은 가신. 상쾌하고 밝은 느낌의 요일이다. 물론, 주말휴무를 기준으로 일주일의 행복도를 재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직 충분히 ‘최악’이겠지만. 사무직 직장인으로 일할 때나, 프리로 일할 때나, 사실상 주말은 딱히 의미가 없었다. 주말이 아예 없을만큼 바쁘거나, 혹은 주말 주중 구분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급하게 필요해진 랩탑 하나가 왠만한 중고 경차 값이라니 어이가 없다. 허브랑 악세까지 하면 진짜 차값이다. 밤부터 아침까지 찾아보니 중고 매물은 스펙이 맞는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일어나자마자 사무실 근처의 판매처를 찾아서 전화로 신품을 예약했다. 

명동은 한산하다. 중국인들이 아예 오질 못하니, 한국인만 있는 명동은 낯설면서도 차분하다. 매장에 들어갔다. ‘아까 노트북 예약한 사람인데요…’라면서 예약한 이름과 연락처를 대려고 하는데, 대뜸 ‘아?! 그분이요?’라면서 직원들 서너명의 눈빛이 이상하게 바뀌더니 갑자기 영업 의전모드로 바뀐다. 뭐야,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있는 매장인데, 그 노트북 구매 예약한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가. 누구의 어떤 건줄 알고 가져 온다는 거지. 그리고 얘네는 왜이러는 거야. 그냥 컴퓨터 하나 사는 건데. 마치 내가 가구 팔 때 한 번에 아예 모든 가구 세트와 주방이나 인테리어까지 다 해서, 천 만원 부터 칠천 만원 까지 블랙이나 플래티넘 카드로 긁는 사람들 상대하는 거랑 비슷하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불편하다. 나는 돈이 남아 돌아서 돈지랄 하러 온게 아닌데.

자리에 앉히고 커피도 내려오더니 할부랑 보증은 어떻고, 주의사항은 어떻고 설명을 한다. 뒤늦게 합류한 직원이 뭣도 모르고 이런저런 허브랑 악세를 추천하는데, ‘아 네, 그것도 이미 제일 비싼거로 다 결제했어요 ㅎ…’ 이더넷이랑 SD카드 리더까지 욕심을 내니 하필 제일 비싼 브랜드의 그것 밖에 없어서 한숨이 나왔더랬지. 당장 오늘부터 달려야 될 스케줄이라 마음이 급한 나는, 할부랑 보증 단계 이후엔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이자 할부를 12개월이나 해준다는데도, 한도 때문에 평소에 안 쓰던 카드를 가져왔더니, 이상하게 할부가 안 되는 카드라 냅다 일시불로 질렀다. 편곡 정산이 이틀만 늦었어도 못 했을 짓이다. 아. 아아아. 플렉스하니까 플렉서블하게 여기저기가 다 속쓰려.

직전에 먼저 해보고 최근에 필드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아마 꽤 빡빡하게 해야 빠른 시일 내에 웜업을 끝낼 수 있을거라고 조심스럽게 말해준다. 마치 내가 겁먹고 부담스러워 할까봐 조심하는 눈치이다. 대강 어제부터 하루 이틀 이사람들 하는 걸 지켜보면서 스스로 어젠다를 짰다. 의외이기도 하고, 다행이다. 당신들은 내가 CFA 준비할 때나, 재무정보 일 할 때를 짐작도 못하겠지. 진짜 리터럴리 자는 시간 빼고 다 들이박을 거라고 생각 못하나보다. 본인들은 그렇게 한다는데, 잘 거 다 자고 점심에야 어슬렁 어슬렁 나와서 대강 열 시 남짓에 들어가는 건 솔직히 좀 헐렁해 보인다. 그건 쉴 거 다 쉬고, 놀 거 다 놀면서 하는 건데. 어쨌든 앞에 했던 사람들의 타임테이블을 참고해봤는데,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고, 사실 스스로 멍때리지 않고 일부러 열심히 집중하고 머리를 쓰면 저 시간을 80퍼 수준까지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갖고 싶은 시간이 있다. 노래를 듣고, 멍을 때리고,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어떤식으로든 대화를 하고,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이라도.

근데 그러기엔 이번주에 대책없이 잡아놓은 저녁약속이 벌써 두 개나 지났고, 두 개가 떡하니 있다. 주말을 쓰기 싫어서 평일로 몰아놨는데, 일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레이드는 또 왜 잡아놔서는 참. 그나마도 약속이든 레이드든 쳐낼 거 다 쳐내고 상대의 용건이 확실하게 있으며 미루기 어려운 필수적인 것만 남은 게 저건데. 어쩔 수 없다. 그 외 시간에 최대한 절대 시간 대비 실질 집중상태의 길이를 늘려야 한다.

출판 업계에서 일하는 지인 두 명이 똑같은 공모전을 동시에 추천해줬다. 이거 너 쓰면 될 거 같다고. 하필, 지금. 쓰고 싶다. 하루에 30분씩만 쪼개면 되지 않을까 라는 욕심을 부려본다. ‘음식’. 주제가 너무 상투적이라, 사실 상투를 보편으로, 변칙을 참신함으로 다듬는 노력이 다분히 필요한 작업이다. 별다른 자체 필터링 없이 술술 써내려가는 에세이랑은 다를 것이다. 하고 싶다. 모든 걸 제대로 잘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저기에 욕심이 많다는 건 때로는 아주 귀찮은 스트레스이다.

 

마음을 쓰고싶다. 마음을 사용하고 싶다. 이미 쓰고 있는 마음을 스스로에게도 출력하고 싶다. 아 답답해. 짜증나 진짜. 바빠진 건 문제 축에도 못 낀다. 내가 멍청하지 않게 시간을 쓰면 되니까. 나 하기 나름이며, 이미 여러번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건 문제가 아닌데, 그냥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