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캐나다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중에, 소문난 뽕쟁이(...)가 있었다. 제 딴에는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이대에 파티나 클럽 가면 다 하는 정도만 한다는데, 너놈이 일주일 중에 sober한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잘 모르겠는 걸. 그게 뭐가 그리 좋냐고 물었다. 소리가 만져지고, 조명에서 맛이 난다고 한다. 감각의 입출력 포트 사이에 전환이 일어난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다 사우디에서 온 친구가 수업시간에 내가 콜오브듀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 걸 듣고는, 자기네 집에 플스랑 콜옵 최신판(어드밴스드 워페어)을 사놨다고 놀러오란다. 주로 작문시간에 아랍어도 알파벳도 아닌 이상한 글씨체로 쓴 초안을 나한테 들이밀면서 첨삭해달라고 징징대는 녀석이었다. 역시 기름나라에서 온 놈들은 다 돈이 많은 건가. 꼴랑 1년 남짓 오면서 콘도를 큰 걸 빌리고 플스에 차까지 사다니. 그 집에서 콜옵을 좀 하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딘가 방에서 친구 두 녀석이 신나게 부시럭거리더니 나온다. 떨(대마)을 말아온 거였다. 한 번 해볼 거냐고 묻는다. 일단 거절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원칙회로를 되짚어 봤다.
_마약, 상해, 도박, 인신매매 및 기타 범죄를 제외한 모든 걸 다 경험해보자_
어떤 경험이나 컨텐츠에서 서투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저걸 원칙으로 삼고, 어떤 음식이든 액티비티든 웬만하면 빼지 않고 해본다. 저 카테고리에 포함되지만 않으면. 대신 저 카테고리 어디에라도 포함되면 기계적으로 멈추고, 그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워버린다.
_마약인가 : 의료용 대마초를 처방받아서 피우는 사람도 있다. 애초에 담배랑 다르게 중독성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금하는 이유는 그저 과세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 마약 아님.
_범죄인가 : 유통은 범죄지만, 사용은 범죄가 아님.
오케이. 한 모금을 빨았다. 빨간 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소파 내부로 몸이 흡수되어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어지럽진 않은데 나른하다. 낯선 느낌에 위험을 느꼈다. 벽을 보니 아랍놈들 집이라고 그 둥근 아랍의 칼 모형이 붙어있는 시계가 있다. 그걸 보는 순간 '어, 나 이거 잘못 했다간 어딘가로 끌려가거나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웃기고 불안한 상상이 엄습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I gotta go. I just forgot a plan with homestay family.'라고 둘러대고 황급히 신발을 신었다. 눈이 많이 오던 때라 끈을 여러번 묶어야 하는 스노우 부츠를 신고 왔는데, 대충 발만 끼우고 끈은 발목에 아무렇게나 우겨넣고 집을 탈출했다. 지하철을 탔다.
가끔 지하철에 근육돼지같은 백형 경찰들이 돌아다니는데, 앞에서 대놓고 술을 마시거나 대마를 피우지 않는 이상은 안 건드린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그래도 뭔가 캥겨서 사람이 몇 없는 열차에서도 가장 구석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열차가 선로를 타고 가면서 가볍게 덜컹거린다. 평소 같았으면 그 상태에서도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잘 잤을 거다. 근데 이거 완전 다르다. 한 번 덜컹 할때마다 머리와 온 몸에 진동이 전달되며, 그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천둥이 치는 것 같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데, 갈색 봉지에 몰래 와인인지 위스키인지를 감싸고 숨겨서 홀짝홀짝 마시던(캐나다는 노상 까는게 불법이라 이렇게들 한다. Brown bagging.) 주정뱅이가 재수없게 말을 건다. 정신이 너무 없어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시아놈이 상태 안좋게 헤롱거리니까 취한김에 시비를 거는 것 같다. 마지막 온 정신의 힘을 끌어모아, 매우 정성스럽게 'fuck off' 한 방 먹여주고 내렸다.
혀랑 입에 느껴지는 감각이 뭔가 둔하고 낯설면서도 묘하게 예민하다. 치과 마취가 덜 풀린 느낌이랑 비슷하다. 그 때 문득 이 상태에선 음식도 엄청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났다. 폭식은 하지 말아야지 정말. 그렇게 간신히 집까지 걸어왔다. 집 앞에서 눈을 치우던 캐나다 엄마(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친구집에 놀러간다면서 왜이리 일찍 왔냐고 묻는 인사를 들은체 만체 하고 내 방이 있는 별채로 갔다. 쓰러져 자고 일어나니 새벽이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신기한데 위험하다.
사실 하려고 했던 얘기는 이거다. 어떤 악기 하나라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은, 마약을 안 해도 된다. 연주 영상을 보면서 연주하듯 몰입하면, 실제로 연주하는 사람과 같은 뇌파를 보인단다. 실제로 글렌체크의 디스코 엘리베이터를 볼 때 그랬다. 매번 정체불명의 전자음만 들리던 장르의 노래가,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이니까 그 소리와 흐름 하나하나가 만져지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