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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너머톡_01

Neon Fossel 2020. 5. 29. 19:24

(대화체 프레임을 이것 저것 써 보는데, 따옴표는 가장 예쁘고 정석이면서도 귀찮다. 특히 앞뒤에 열고 닫는다는게 직업적 트라우마까지 불러일으켜서 더욱 극혐. ‘-‘로 회귀하자. 아_ 노드랑 SQL은 어느 세월에 하지.)

- 오늘은 내가 궁금한 게 있어.
- 올, 뭔데?
- 여자들 안쪽 느낌은 어때?
- 그건 내가 여자니까 모르지 바보야. 넌 니꺼 바깥쪽이 상대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지 항상 느껴지면서 살아?
- 오, 그러네. 저번에 영화에서 보니까, 따뜻한 지렁이 오백마리가 꼬추를 감싸는 느낌이라던데. 근데 지렁이면 좀 징그럽지 않나.
- 그게 징그러우면, 그렇게 좋다고 맨날 끼우고 싶어서 안달나겠냐. 좋을거야 아마. ...궁금해?
- 응.
- 그래, 궁금해해라.

점심시간이면 진이는 양아치들이랑 시큰둥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휘적휘적 복도를 걸어다녔다. 나는 주로 복도 끝 계단 층계에서 반 상관없이 몰려앉은 남자애들 열댓이랑 있었다. 왜, 어쩌다가 모이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공부나 운동 둘중에 하나를 어중간한 것 이상 하고, 덩치가 좀 크다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애들이랑 습관처럼 꼭 복덕방 할배들처럼 모여서 게임이나 운동 얘기 혹은 다른 잡담을 했었다. 그 양아치들이랑 우리랑 딱히 척진 건 없었다. 각각 반에서 그냥 서로 적당히 알고 지내거나, 농담 몇마디 섞을 정도의 친분은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뭉텅이로 지나가면서 마주치면 기류가 좀 묘하긴 했다. 양아치들도 다른 비실비실한 애들을 괴롭히거나 장난치듯 하는 걸 우리에게 똑같이 하진 못했고, 우리도 그닥 시비 걸고 싶진 않은데 눈앞에서 거슬리니까 어색하고.

그 와중에 요즘 이 이상하고도 재밌는 얘기를 해오던 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차피 교실 옆자리에서 매일 보긴 하지만(사실 거의 등을 보이고 잠을 자고, 난 잘 재우는 게 다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그룹에 섞인채로 떨어져서 보는 건 왠지 느낌이 낯설고 새롭다.

한동안 눈이 꽤 오래 마주쳤다. 이상하다. 서로 아랫도리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멀리서 보는데도 서로 옷을 안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혹은 남들은 다 모르겠지만, 뭐라도 되는양 친밀한 느낌도 조금씩 들고. 그렇게 서로를 스윽 오래 보다가 말았다.

오후 수업이 지나고, 청소시간이 됐다. 오늘은 또 무슨 기상천외한 질문이나 대답을 할 지 모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랑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목소리다.

- 근데, 나 궁금한거 있어.
- 매일 궁금하잖아. 새삼. 뭔데?
- 너, 나 보면 한심하지 않아...? 공부 안 하고 잠만 자고, 노는 애들이랑 어울리고.
- 별로 그렇게 생각해본적 없는데. 공부를 하고 안 하는 건, 흥미랑 의지의 차이니까 그걸 굳이 안 하기로 선택했다고 해서 나쁘거나 한심하다고 할 수 없지. 그 대신 다른데 관심이 있거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심심하니까 그냥 열심히 놀거나 하는거라고 생각했어. 다만 그 놀 때, 나같은 반장들을 귀찮거나 난감하게 하지만 않으면, 뭐 어때.
- 그렇구나. 노는 애들이랑 어울리는 건?
- 썩 예쁜 그림은 아닌데, 어차피 나 걔네랑도 따로따로는 친해. 원래 그런 애들이 은근 생각이 열려있고 어른스러워서 재밌거든. 물론 인간성이 애초에 글러먹은 새끼는 한 둘 있는데, 그거야 뭐 잘 알거고. 그닥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어.
- 그렇구나.
- 근데 그건 왜?
- 아니 그냥, 저번에 애들끼리 마주쳤을 때, 엄청 멀게 느껴지면서도 가깝고,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확 먼 것 같아서.
- 별 걱정을 다 한다. 내가 애초에 그런 꽉 막힌 스타일이었으면, 너한테 이렇게 성의있게 대꾸도 안하고 상대 안하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 그러게. 이따 학교 끝나고 뭐해? 또 베이스 치러 가?
- 뭐, 별 일 없으면 그렇긴 해. 어차피 낼부터 주말이라 숙제가 급할 것도 없으니까.
- 오늘은 안 가도 돼? 혹시?
- 왜, 뭐 할려고.
- 이따 끝나고 집에 같이가.
- 이젠 전화가 아니라 대면 과외냐
- 같이 가.
- 어. 오늘 하루 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