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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ism

Neon Fossel 2020. 6. 20. 18:44

종종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대치가 바닥을 쳐서 갈 때까지 갔을 때 쓰는 표현이다. 프로페셔널리즘. 본체의 상황이나 감정, 상태와는 관계 없이 계약에 따라 돈을 받는 만큼 뽑아줘야 하는 최소한의 퍼포먼스.

재무정보 일을 할 때는 남에게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항상 오버 퍼포먼스, 오버 히트, 오버 캐파를 견디며 뽑아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전사에서 퇴근이 가장 늦은, 불이 가장 늦게까지 켜있는 지옥의 9층이었으니까. 오히려 내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는 말이었다. 한달에 400, 일당으로 환산하면 대강 13만원 쯤. 8시 출근해서 12시나 그 이후 퇴근이니까, 대강 시급은 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앉아있기만 해도 그 돈을 받는데, 나는 그정도의 가치를 생성하고 있는가. 처음 며칠 가만히 앉아있는게 힘들어서 그랬고, 그게 지나고 전화랑 엑셀, SAP 결재, 회의, 수시감사에 깔려죽을것 같을 때도 다른 의미로 그런 생각을 했다.

작편곡 일을 할 때는 남에게 최후에 들이대는 칼이었다. 외주 컨설팅으로 고용된 나보다도 책임감이 없이 형편없는 퀄을 뽑아내며, 징징만 늘어가는 그들이 한심해보여서. 이제 다음주면 원격공연으로 티켓팅을 시작한단다. 후임자에게 인수인계 하고도 약 세 번이나 못 하겠다고 나자빠져서, 감독과의 친분을 봐서 몇 번 들여다봐줬는데. 한참 지나서 그저께 연락이 왔다. 고마웠다고. 다 끝났다고. 프로페셔널리즘이 가장 필요한 직종에서, 그게 가장 부족한 인간들이었다. 술 먹자는 거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 하는 일은 다시 스스로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을 들이대야 한다. 내 포폴이랑 스킬은 시간과 집단이 보장해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만큼. 이게 마약 같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달리게 되는 게 좀 문제긴 하다. 여기선 오히려 나와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워라밸을 어디까지 잘 잡을 것인가가 역으로 문제다. 지금도, 앞으로도. 근데, 대표님, 나한테 징징거리지 마세요 제발. 친구는 밖에서 찾으란 말이야.

릴레이로 글 쓰는 커뮤에서는 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컨텐츠는 찍어내지도 않으면서 그냥 컨셉잡고 관종짓이나 꼰대질을 하려는, 꽤 다수의 허수는 제외하더라도. 하드커버 출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료를 받고 웹소설 플랫폼 여기저기에 연재하는 작가들이 의외로 꽤 있었다. 거기서 컨셉질하고 히히덕거리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퀘돌리듯 매일의 제시어로 시를 쓰거나 에세이를 쓰는 컨텐츠, 그리고 릴레이 소설에 하루 한 번 정도 글을 쓰고 있다. 뉴비인데 며칠만에 컨텐츠 참여랑 퀄이 좋다고 평이 후했다. 원래 있던사람처럼 존재감이 뿜뿜한다나. 기대한 건 이런게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그나마 좀 건질만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익숙해진 몇에게 수소문해서, 커뮤 멤버중 연재경험이 있거나 연재중인 사람들의 작품을 봤다.

결과는 좀 충격적이었다. 기본적인 맞춤법이나 문법적 수식 오류 및 개별 표현의 오용 등이 여기저기서 춤을 춘다. 그런데 저걸, 무려 돈을 주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저들은 그걸로 돈을 벌고 있다. 물론 입이 떡 벌어질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미 치고는 돈이 좀 되네’ 정도인데, 당신들 그거 전업이라며. 그거보단 나은 최소한의 퀄을 뽑고, 그거보단 나은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닐까.

서로 익명인 커뮤 멤버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그 커뮤를 운영하는 우두머리이자 작가이고, 친한 대학 선배인 형한테 마침 몇주만에 안부인사 전화가 왔다. 지내보니 어떠냐고. 애들이 너 많이 좋아하던데. ‘글을 안 멈추고 뭐라도 쓰게 하는 건 좋은데, 솔직히 퀄리티 컨트롤이라던가, 글을 소재로 하는 유익한 피드백의 빈도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을 요지로 두시간 동안 팩폭을 했다. 아마 그 형은 멘탈의 갈비뼈가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사람의 능력과 눈높이는 peer group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여기는 여기까지다.

다른 의미로 글에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면 매우 힘들고 슬플 것이다. 기분이 주로 별로인데, 때때로 예쁜 글을 써야하는게 처음엔 힘들었다. 근데 사실 반대의 경우가 더 끔찍하다는 걸 알았다. 별로인 기분이 드러나버릴 정도로 암울한 분위기와 주제를 써야할 상황엔, 스스로에게도 꺼내보이고 싶지 않던 무드와 사고의 과정이 서슬퍼렇게 글에 드러나버린다. 내상이 심했다. 그래서, 글로 밥을 벌어먹는다는 프로페셔널리즘은 불가능하거나, 가능해도 매우 힘들고 슬플 것이다. 아마도.